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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준비한 아시아 각국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주노동자들은 쉼터를 지키기 위해 음식을 직접 마련해 한국인들에게 선보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준비한 아시아 각국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주노동자들은 쉼터를 지키기 위해 음식을 직접 마련해 한국인들에게 선보였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바리뚜' '파빠람' '넴'...'롬삐아' '모로꼰'....

스리랑카·베트남·필리핀·방글라데시아·인도네시아..., 낯선 이름의 요리들이 '만찬상'을 가득 채웠다.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들은 저마다 생소한 '다국적' 음식을 한 젓가락씩 떠 입으로 갖다댔다.

'아시아인'들은 음식으로 하나가 됐다. 이곳에선 국적도·나이도·불법체류자란 '딱지'도 의미가 없었다.

지난 12일 오후 5시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쉼터(소장 김경태 목사·대명 3동 소재)로 다양한 피부색깔의 이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날은 뜻 깊은 행사가 열리는 날. 아시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아시아 음식 박람회'가 열렸다.

아시아 음식 박람회는 대구지역의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먹는 음식을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행사로 준비됐다. 각 국의 공동체 소속 이주노동자들은 20~30여명씩 짝을 이뤄 음식 재료를 사고 다듬고 정성스레 음식을 마련했다.

이날 음식 박람회는 그동안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이들에게 자기 나라의 음식을 소개하고 따뜻하게 대접한다는 의미도 있다.

아시안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의 음식을 나눴다.
아시안들이 한데 모여 아시아의 음식을 나눴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손수 음식 박람회를 준비한 것은 '썩' 흔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이날 음식 박람회는 그동안 자신들의 안식처가 돼 왔던 '쉼터'가 없어질 처지에 놓여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해왔던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가 문을 연 것은 지난 96년 2월의 일이다. 특히 대명동 쉼터는 지난 7년여 동안 수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거쳐간 곳으로 지역의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제2의 '고향'이자 '집'이었다.

고용주에게 얻어맞고, 돈까지 떼인 이주노동자들이 쉼터의 문을 두드렸고, 공장에서 다친 이들의 치료를 받는 곳으로 쉼터가 이용되기도 했다.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혀 오갈 곳이 없을 때도 대명동 쉼터는 '해방구' 노릇을 했다. 사실상 7년여 대명동 쉼터는 3만 5천명 대구지역 이주노동자의 역사와 괘를 같이해왔다.

대명동 쉼터가 내년 5월이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 외국인 선교사가 대구지역 3개 교구에게 소유권을 넘겨줬고, 지난 7년동안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가 쉼터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내년 5월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교구에서 사실상 매각을 결정했다고 한다. 김경태 소장은 "사실상 내년 5월에는 교구에서 매각을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제3자에게 매각을 하게 되면 쉼터는 없어지게 되거나 다른 곳에서 쉼터를 마련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음식 맛이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음식 맛이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김 소장은 "교구에서도 상담소쪽으로 넘겨줄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제3자에게 매각을 하게 되면 7년동안 이주노동자들의 공간이었던 대명동 쉼터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구외국인상담소도 나름대로 중장기안을 마련해 현재 쉼터의 땅을 사들여 대구 각 곳으로 흩어져 있는 쉼터를 묶을 계획이다. 이곳에 기독교근로자센터를 설립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쉼터와 인권문화센터 등을 갖춘다는 안이다.

하지만 문제는 땅 값만 4억여원이 드는 이 프로젝트에는 많은 돈이 든다는 것. 대구외국인상담소의 자체 모금과 주변 지인들이 도움을 받을 요량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들을 지켜줬던 이주노동자 쉼터와 상담소를 위해 자신들의 작은 힘을 보태겠다는 것.

고향으로 부치면 생활하기도 빠듯하지만 그들은 쪼개고 쪼갠 월급을 상담소로 맡겼다. 1만원부터 20여만원까지, 그것도 부족해서 일품까지 팔며 이번 아시아 음식 박람회를 마련했다. 다음은 상담소 김동현 목사의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적극성은 우리들도 놀라고 있어요. 처음엔 돈을 조금씩 보태더니 이제는 직접 나서서 박람회를 열고 후원금을 받을 계획도 세웠어요. 하지만 단지 자신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자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자신들의 후배나 가족들이 또 한국에서 쉼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시아 음식 박람회가 점차 무르익자 필리핀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가 필리핀 대중가요와 캐롤송 등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
아시아 음식 박람회가 점차 무르익자 필리핀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된 밴드가 필리핀 대중가요와 캐롤송 등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주노동자들의 정성이 모여서 인지 12일 열린 아시아 음식 박람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과 대구시민들이 모여 들어 서로의 '정'을 나눴다.

박람회를 준비한 베트남 공동체 회장인 웬빙하이(34)씨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할 뿐"이라면서 "음식을 함께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더 큰 쉼터를 지을 수 있다는 마음에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박람회가 단순히 음식만을 소개하고 후원을 받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박람회를 찾은 한국인들에겐 이주노동자들을 좀더 가깝게 다가오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음식 박람회를 찾은 박혜경(40)씨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다 보니 멀리서만 보던 이주노동자들과는 달리 가까운 느낌"이라면서 "정부에선 불법체류자로 분류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쉼터를 방문한 최향자(54)씨도 "생소하기만 했던 이주노동자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계기가 됐다"면서 "음식이라는 매개로 하나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시아 음식 박람회는 필리핀 공동체의 노래공연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필리핀 대중가요와 함께 캐롤송이 쉼터를 새어나오고 아시아인들은 다같이 박수를 치며 하나가 됐다. 깊어가는 겨울 밤,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좀더 아늑하고 넉넉한 이주노동자들의 '쉼터'가 자라나고 있었다.

대구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로 활용돼왔던 쉼터...내년 5월 존폐기로에 선 이 쉼터에도 밤은 또다시 찾아왔다.
대구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로 활용돼왔던 쉼터...내년 5월 존폐기로에 선 이 쉼터에도 밤은 또다시 찾아왔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월급 못받고 아플 때도 쉼터가 우릴 지켜줘"
[일문일답] 아시아 음식 박람회 준비한 줄피까(27·방글라데시아)씨

-아시아 음식 박람회를 마련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쉼터가 없어질 수도 있고, 지금 쉼터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찾아오긴 작은 공간이다. 각 나라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팔면 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박람회를 준비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이곳 쉼터는 어떤 곳인가?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문제가 있어 이곳 쉼터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일자리가 없거나 아플 때도 쉼터는 우리를 도와줬다."

-음식은 어떻게 준비했나?
"오늘 새벽부터 준비했다. 각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직접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가?
"현재 FRP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다니기가 조심스러워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도움을 주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쉼터는 꼭 필요하다."

-바람이 있다면.
"이주노동자나 한국인이나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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