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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삼총사 언니들
자원봉사 삼총사 언니들 ⓒ 우리안양
안양시 부흥동 노인복지회관으로 향하는 길목, 나목 사이로 다 떨구어내지 못한 가랑잎의 바스락거림조차 정겹게 느껴지는 포근한 아침. '할머니 삼총사들이 자원 봉사로 신나는 인생의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제보를 따라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미용실을 찾았다.

아담한 공간, 미용실의 아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손자도 봐야 하고 할아버지 점심도 챙겨야 하고 요가도 배워야 하는 바쁜 할머니들이 오전에 몰리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허연 머리를 커트하며, 파마를 마는 분주한 손길을 보며 주인공임을 직감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정영란(37) 원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을 막는다. "여기는 언니들만 있지. 할머니는 계시지 않아요. 할머니란 말은 절대 용납을 못하는 곳이거든요. 할머니들도 늙은 새댁이라야 좋아해요"라며 재빨리 귀띔한다.

양띠 동갑내기 언니들, 미용실을 접수하다

국가 유공자나 생활보호 대상자는 무료지만, 하루 커트(1500원)와 파마(4000원) 손님을 각각 10명씩 미리 접수받기에 이용 고객이 20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미용 자원 봉사로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김순보·고광자·김신자씨는 양띠(62) 동갑내기들이다.

요일별로 미용사 한 명과 자원봉사자 두 명에 의해 운영되는 미용실이기에 언니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정 원장은 "아가씨부터 언니(할머니)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자원 봉사자가 있지만 책임감 확실하고, 노인들 마음 다독이는 데는 언니들만한 봉사자가 또 있겠어요"라며 극찬을 한다.

삼총사 언니들은 간혹, 몸이 불편해서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오게 된다고. 항상 '내가 먼저 기다리는 자세'이기 때문에 지각이나 결근도 적고,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진 삼총사. 봉사자의 귀감이며 본보기로도 손색이 없다.

미용실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다. 자녀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나 나름대로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때로는 그 상처가 피해 의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사소한 문제로 마음 상하거나 빨리 머리를 깎아 달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작은 일에 상처 받고, 작은 일에 감동 받는 할머니들을 보듬고 토닥이는 일도 언니들의 몫이다.

삼총사들은 "어쩌면, 이 봉사가 우리에겐 안성맞춤이란 생각을 해요. 여기서 인생 공부를 철저히 하거든요"라며 입을 모은다. "누가 미용실을 '수다방'이라고 했는지. 어쩌면 딱 맞는 말 같아요"라며 까르르 웃는다.

이곳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만 하는 게 아니다. 어디 가면 뭘 싸게 사고, 고추장, 된장 맛나게 담그는 방법 등등의 정보 교환이나 때로는 자녀의 언어 폭력으로 받은 상처를 눈물로 풀어내고 위로 받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아픈 맘을 보듬는 곳

가엾을 정도로 몸이 왜소한 할머니는 "저녁밥을 먹는데 밥이 좀 모자랐어. 밥을 달게 먹는 손자가 이뻐서 내 밥을 덜어줬더니 며느리가 눈을 허옇게 떠. 하도 속이 상해서 나가라고 그랬어"라며 혼자 살게 된 속내를 털어 놓는다.

곁에 있던 할머니는 "아들이 나가고 나면 며느리랑 달랑 둘이 남거든. 한 번은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초대 받게 되었거든. 집에 혼자 남은 며느리가 걸려서 음식을 좀 싸왔더니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잖아"라며 분개한다. 그럴 때마다 봉사자들은 '아이구 주여~'라며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탄성과 함께 기도가 터져 나온다.

미용실 입구에는 10여명의 노인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파마 한번 하려면 새벽 기도 갖다 오면서 서둘러야 해. 여기 와서 파마하고 목욕하면 얼마나 개운한지 몰라. 여기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친절한지…"라며 삼총사 언니들을 칭찬했다.

지푸라기처럼 머리가 엉성하고 꾸부정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옛날에는 말총 머리였는데 이젠 솜털이야"라는 노인의 머릿결은 가늘고 솜털처럼 보드라웠다. "파마하고 염색 자주 하다 보면 그렇게 돼요"라며 커트를 치는 손놀림이 날렵하다.

이내 몰라보게 말끔하고 산뜻하게 변신한 할머니는 거울을 보며 연신 "수고 많았심더"라며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한다. 봉사자들은 "이 순간이 제일 보람되고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자원봉사 삼총사 언니들과 정영란 원장.
자원봉사 삼총사 언니들과 정영란 원장. ⓒ 우리안양
비산2동에 이점모(77) 할머니는 "커트나 파마가 마음에 드니까 4년째 오지. 미용사 아주머니들이 나이가 든 분들이라서 마음에 쏙 들게 잘해 줘"라며 흡족한 표정이다. 마을 버스 타고 비산3동에서 온 김귀순(82) 할머니는 "잠이 안 오면 손녀가 맥주도 갖다 주고…"라며 가족간의 알콩달콩 훈훈한 이야기에 덩달아 언니들의 마음도 즐거워진다.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누구 심부름 할 사람 없어?"라며 할머니는 고마움을 표하려고 애쓴다. 파마를 말고 파마 종이와 고무줄을 집어 주고 호흡이 척척 잘 맞는 언니들은 이미 환상의 콤비였다.

미용실에서 머리만 하나?

"여긴 산소 마시러 와요. 할머니들은 욕심을 다 버려서 어린아이 같이 너무 착해요. 할머니들을 대하며 인생의 꽃은 두 번 핀다는 것을 알았지요"라는 순보 언니는 손주 여섯을 둔 할머니다.

늦깎이 학생으로 방송통신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반이지만 장학금을 탈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심이다. "대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또 산소를 마신다"며 즐거워한다.

광자 언니는 노인회관에서 배운 실력으로 노인 취미 교실에서 컴퓨터 보조 강사로 봉사했고, 틈틈이 배운 스포츠 댄스며 탁구는 관양동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베테랑이다. 안양7동과 평촌동의 중풍 환자들을 방문, 마음을 위로하며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시설에 자원봉사를 나가면 치매 노인들조차 "천사 언니 왔네"하며 기다릴 정도다. 순수하게 자원봉사를 목적으로 97년 여성회관에서 미용을 배워 취득한 자격증이 자원봉사의 끈이 되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신자 언니는 미용 경력만도 20년이 넘는 베테랑으로 교회 봉사단을 따라 필리핀, 몽골까지 두루 다닌다. 병원이나 시설을 돌며 자원봉사를 하지만, 소홀할 수 없는 것이 집안 살림이다. 서울로 봉사를 떠날 때는 새벽부터 동동대며 빨래며 남편 점심까지 후다닥 챙겨 놓고 아침 7시 30분이면 집을 나선다.

틈틈이 장구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워서 싱가폴의 딸과 메일 교환도 하는 신자 언니 별명은 '방울'이다. "신자 남편은 좋겠네. 방울하고 살아서"라며 까르르 웃는 언니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여학교 동창이다.

양띠 삼총사 할머니의 즐거운 자원봉사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봉사날이 아니더라도 언니들은 범계역 주변만 오면 꼭 미용실에 들린다. 한번 시작한 봉사가 영원한 자원봉사로 뿌리 내리기까지는 나이는 아래지만, 친정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보듬어 주는 정 원장이 있기 때문이다.

미용실은 "이 나이에 봉사할 곳이 있어서 그저 즐겁다"는 삼총사의 웃음꽃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할머니들은 사탕으로 감사를 전하는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훈훈한 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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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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