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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오후 4시 사당역 근처 빈대떡집.
필자는 선배님과 함께 어르신 한 분을 뵙기로 했다. 비 내리는 사당역 거리는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분주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 4시에 찾아 들어간 빈대떡집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비가 오는 수요일 오후, 사람들은 막걸리를 벗 삼고 있다.
선배님과 나도 막걸리에 빈대떡을 시키고 앉았다. 얼마 후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어르신의 헌혈이야기는 시작됐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참으로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군대 훈련병 시절 거의 강요에 의한 헌혈 기억밖에 없던 필자에게 어르신의 말씀은 감동 그 자체였다.
01-04-143555. 이야기가 끝난 후 필자가 어르신께 부탁 드려서 확인한 헌혈증서 번호다. 더불어 신분증도 부탁 드렸다.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 처음으로 확인해 본 미국 국적의 신고증이었다. 법적으로 어르신은 한국 분이 아니셨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 명의의 날인이 있는 신고증을 보니 더욱 부끄러웠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임을 자부해 온 난 뭐지?
어르신은 헌혈 이야기를 하시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매우 유쾌한 기억이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줬던 헌혈 보조원들을 칭찬하셨고 헌혈차는 명동 2호차였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하셨다. 25일 정도만 늦었어도 헌혈을 못할 뻔 했다는 거다. 만 65세가 되기 전 헌혈을 하게 되어서 천만다행이었단다.
어르신은 헌혈 하고 나신 뒤 무얼 받으셨느냐는 제 물음에 껄껄걸 웃으시며 로션을 받으셨단다. 그리고 3일 간은 술, 담배나 무리한 운동은 금하라고 했다는 보조원의 주의사항을 말씀하시면서 기분 좋게 막걸리를 비워 내셨다. ‘괜찮으세요?’라는 물음에도 어르신은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라서 끄떡없다고 하신다.
적십자가 우리나라에서 헌혈을 시작한 것이 27년 되었다, 만 65세가 헌혈 정년이다, 혈액은 1에서 40까지 등급이 나뉜다, 건강한 성인은 400mg을 뽑는데 자신은 320mg을 뽑았다는 등 여러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어르신은 인생의 마지막 헌혈을 그렇게 끝내셨다. 12월 14일 오후 4시 명동 거리에서 헌혈 정년퇴임을 하셨다. 어르신의 헌혈 정년 퇴임사를 대신 해 본다면 이 쯤 되지 않을까?
“헌혈 정년퇴임 65세입니다. 65세까지 건강한 사람만이 맛 볼 수 있는 헌혈의 기쁨, 이제 함께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