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유럽에 대한 관심은 터키공화국의 수립과 연원을 같이 한다. 1923년,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케말 무스타파는 터키의 현대화를 추진하며 유럽 사회의 모델을 적극 지향했다. 케말주의로 불린 이러한 터키의 '유럽화'는 서유럽 체제 도입을 통한 현대화로 요약된다.
2차 대전 이후 터키는 유럽과 더욱 긴밀한 연결고리를 희망하며 전후 국제정세 속에서 계속 서방의 편에 섰는데 주로 문화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연결에 중점을 두었다.
유럽연합은 정치적, 문화적 차이 등을 이유로 들며 유럽연합에 터키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계속 주저했지만 터키에게 유럽연합 가입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였다.
이에 대해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짜이퉁>은 12월 12일자에서 "근동의 이슬람국가 그룹에 소속되기보다 유럽의 일부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를 원했던 터키는 유럽연합에 포함됨으로써 유럽의 범주에 묶이고 이와 함께 유럽연합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EU가입을 위한 터키의 노력은 멀리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국가로는 유일하게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 된 터키는 1963년 유럽경제공동체와 교류 협약을 맺음으로써 EU 회원국이 될 수 있는 최초의 단서를 마련했다.
그러나 1980년 터키에서 일어난 군부쿠데타, 인권 문제 등을 비롯한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터키와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WG)간에 합의된 교류 조약의 효력이 1986년까지 유예되는 등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1987년 처음으로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후 1996년 EU-터키 간의 관세협정이 발효된 후 1999년 헬싱키에서 열린 EU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정식 가입신청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어 2002년 12월 코펜하겐 EU정상회담에서 2004년에 터키의 협상시작 승인여부를 결정짓겠다고 명시함으로써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터키는 2002년 8월, 사형제도 폐지 등을 비롯한 대규모 개혁 조치를 취했으며 2003년 6월에는 인권문제를 대폭 개선, 의사표현의 자유 제한을 폐지했고 쿠르드족의 자치방송을 허가하기도 했다. 또한 2003년, 군 세력이 정치 사회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이후 2004년 8월에는 군세력에 속해 있던 국가안보회의의 주도권을 민간에 이양했다.
가입협상 시작이 승인됨에 따라 터키는 EU가 제시하는 민주주의 정치, 법, 경제 체제를 단계적으로 수용해가는 본격적인 EU 가입 협상과정을 밟게 된다. 유럽연합측은 협상완료까지 10~15년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터키는 가입협상 시작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EU와 합의한 EU 회원국 키프로스의 외교적 인정문제를 가입협상 시작 전까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회원국들의 찬반 "EU 기준에 못 미쳐"... "이슬람-유럽 교량역할 기대"
터키에 대한 최종결정을 앞둔 17일, 유럽연합 내에서는 터키의 가입협상 시작이 승인될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일부 회원국 국민들은 부정적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독일의 뉴스전문 채널 <엔티비(N-TV)> 16일자에 따르면 유럽연합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정부는 터키의 가입협상에 대해 찬성입장을 보이는 반면, 양 국민의 상당수는 "터키가 아직 EU의 기준에 부합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14일 <디벨트>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에서 각각 67%, 55%의 국민이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했다.
또 독일시사 주간지 <포쿠스> 15일자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와 덴마크는 협상 시작에는 동의하면서도 협상이 실패할 경우 터키에게 특수지위를 부여한다는 내용의 대안을 첨가할 것을 주장, 여전히 터키의 EU가입에 대한 반대의 여운을 남겼다.
특히 지난 5월 EU 정식회원국이 된 키프로스는 터키가 키프로스를 외교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최종 결정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선언하며 터키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리스계 인구 80만이 살고 있는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는 지난 1974년 이후 2만5천명의 터키병력이 섬의 북쪽 부분에 주둔하면서 지금까지 나라가 나누어진 상태에 있고 섬의 남쪽 부분만 지난 5월, EU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대체로 유럽연합의 크리스트교 정체성을 강조하는 보수우파 진영들은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EU 가입에 거부, 터키의 EU 가입협상 시작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는 독일의 기민당 대표 메르켈은 지난 16일 터키의 가입협상 건에 관한 연방의회 토론에서 "터키의 가입협상 승인은 EU에게 커다란 위험을 가져올 것"이라며 터키에게 정식가입이 아닌 특수지위를 부여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독일 보수야당연합은 "2006년 연방의회 선거를 통해 집권당이 되면 터키의 EU가입을 적극 저지할 것"이라며 터키문제를 2006년 연방의회선거 의제로 삼을 것이라고 선언, 집권여당으로부터 터키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강한 비판을 사기도 했다.
반면, 터키의 가입협상 시작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독일외무장관 피셔는 최근 <쥐트도이체 짜이퉁>을 통해 "터키의 EU 가입을 통해 이슬람권과 유럽간에 교량이 놓이게 되며 이를 통해 테러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터키의 가입협상 시작을 권고한 유럽연합이사회는 터키가 EU에 포함됨으로써 유럽연합은 중동지역과 카우카수스 지역으로 국경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들 지역의 안정을 위해 터키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터키 "쉽지 않은 길... 그러나 EU 속에 있어야 민주주의 가능"
터키의 가입협상 시작이 승인된 후 EU 이사회 의장 발케넨데는 "우리는 오늘 새로운 역사의 장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EU 정상들은 17일 회담에서 '가입협상 시작이 자동적인 가입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과 '협상과정에서 터키는 모든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터키 내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침해 상황이 발생하거나 1/3의 회원국의 요구가 있을 경우 협상이 중단된다.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은 "터키의 EU 가입문제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가입협상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는 가입협상 승인이 나기 전부터 터키 안에서도 흘러나왔다.
터키 수상 에르도간과 슈레더 독일 총리의 만남에 배석하기도 했던 독일-터키 무역협회 회장 데미렌은 지난 11월26일 <쥐트도이체 짜이퉁>과의 인터뷰에서 "환경보호에서부터 식품안전 기준에 이르기까지 터키의 체제를 EU 기준에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많은 터키인은 터키 앞에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터키 정부의 개혁정책 관련 주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터키의 제약회사 경영자 엑자시바시 또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의 EU 가입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터키는 이미 시작된 서유럽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계속 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유럽정상 회담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터키의 에르도간 수상 또한 EU 가입협상 시작 자축행사에서 "우리 앞에는 쉽지 않은 길이 놓여 있다"라고 앞으로의 상황을 전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게스슈피겔> 16일자에 따르면, 지난 12월 터키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30% 이하의 응답자만이 '현재 터키가 유럽연합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30%는 부분적으로, 나머지 응답자는 EU 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터키 내에서는 가입협상 시작을 통한 외부의 압력이 없이는 민주주의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때문에 대다수가 "즉시 가입협상이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
에르도간 수상이 EU 가입협상이 시작되지 않더라도 개혁은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가입협상이 시작되지 않을 경우 개혁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터키의 여러 인권운동 단체들도 가입협상이 조속히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 속의 터키-터키 품은 EU, 영향력 세질까
지난 5월, 10개국의 동유럽 회원국을 맞이한 데 이어 2007년에 불가리아, 루마니아 2개국의 정식가입이 예상되는 EU에 터키가 새로 가입하면 이란과 이라크를 인접국으로 두게 되는 등 근동지역까지 경계를 확장, 영향력이 확장될 것으로 EU는 평가하고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짜이트>는 16일자에서 "무엇보다 EU는 이러한 근동지역을 잘 알고 있고 해당 지역국과 종교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유럽이슬람' 터키가 이 지역에서 EU의 일원으로 영향력을 행사, 이 지역의 안정을 가져오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아직은 유럽연합 전체 경제규모의 2%에 불과하지만 매년 5%P 가량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터키는 기존 유럽연합의 잠재시장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EU는 인구 7천만의 '거대국'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협상 시작, 나아가 EU 가입이 EU에 가져올 충격에 대해서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지난 5월에 가입한 동유럽 10개국의 총 인구는 7500만).
다른 후보국들의 경우, EU협상 시작과 함께 타 회원국으로의 노동인력의 유입이 자유로웠으나 터키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한규정을 둔 것. 반면 지난 10월 유럽연합이사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터키의 대규모 인력유입이 젊은 노동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유럽 노동시장에 장점으로 작용할 거라는 전망을 내렸다.
어찌됐든 터키는 이제 유럽연합 안에 첫발을 디뎠다. 이슬람과 크리스트, 유럽과 중동을 잇는 이슬람민주주의 국가 터키가 향한 발걸음이 터키와 유럽연합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 | 유럽연합 정식 가입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 | | | |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국가들은 먼저 1993년 6월 코펜하겐 EU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세 가지 기본 가입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세 가지 기준은 첫째,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존중, 소수민족의 존중 및 보호를 위한 안정된 제도를 마련할 것, 둘째, 유럽연합 내에서 경쟁 압력과 시장의 힘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제 기능을 하는 시장 경제가 존재할 것, 셋째, 정치, 경제, 통화 동맹의 목적을 따르며, 회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 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가입절차의 첫 단계에서 후보국들과 유럽연합은 개별 및 다자간의 지속적 협상을 갖는다.
이때 EU집행위원회는 총 10만 페이지에 달하는 유럽연합 조약, 법제 및 관행 모음집을 제시하고 후보국이 이러한 법체계를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지 평가하는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한다.
이후 유럽연합위원회는 각 후보국이 유럽연합의 법제를 실제로 적용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평가하며 유럽연합 법체제가 후보국의 국내법에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는지 평가한다.
이와 동시에 유럽연합은 가입후보국의 가입 준비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데 후보국은 유럽연합으로부터 재정 및 기술 협력을 지원받게 된다.
이러한 지원은 후보국의 중앙 및 지방 행정부, 규제감독기구가 유럽연합의 목적과 절차에 적응하는 것을 지원하는 제도수립 지원과 산업 및 주요 인프라를 유럽연합의 기준으로 높이는 데 필요한 투자를 제공하는 재정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입신청국이 회원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될 때 유럽연합은 정식회원국 자격을 부여하며 모든 신회원국은 가입과 동시에 유럽연합의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지난 5월에 가입한 동유럽의 10개국 또한 회원국이 되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밟았는데,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니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6개국은 1998년에,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말타,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의 6개국은 2000년에 각각 협상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2개국은 2007년 정식회원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주한 유럽연합 대표위원회 홈페이지 내용 참고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