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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풍운지변(風雲之變)

분명 섭장천이란 인물은 무언가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성(姓)은 물론 자신에 대해 알아 본 사람은 전혀 없었다. 허나 그가 자신이 담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왜 초혼령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것이다.

“섭노 선배께서는 이 담모(曇某)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겠소이까?”

담천의는 이곳에 들어 온 이후로 처음으로 예의를 차리며 물었다. 어쩌면 자신이 저 노인과 어떤 관계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섭장천은 오독공자를 바라보더니 다시 담천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 물은 내용이라면 그의 말대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네. 다만 노부는 그 초혼령과 관계가 있고, 자네가 담씨라면 자네 것임이 분명하네. 필요하긴 하지만 노부는 굳이 자네에게 달라지 않겠네.”

초혼령이 담천의의 것임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그의 말에 관왕묘에 있던 모든 인물들의 얼굴에 경악스런 표정이 확연하게 떠올랐다. 어찌 저 초혼령이 담씨라는 젊은 청년의 것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성하검 섭장천은 허튼 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었다. 담천의에게 고정된 그들의 시선에는 경악에서 짙은 의혹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 보다 더욱 궁금한 사람은 담천의 본인이었다. 그는 단지 몇 시진 전에야 비로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초혼령임을 알았다. 더구나 초혼령이 무엇인지 며칠 전에 소림사의 방장인 광허선사로부터 들었다. 헌데 초혼령이 자신의 것이라니…?

“어찌 초혼령이 제 것이라 확신하시오?”

그의 물음에 섭장천의 눈에 처음으로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그것을 어찌 노부에게 묻는 것인가?”

그러더니 그는 담천의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 아이는 정말로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왜 가지고 있어야 했는지 그 사연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 자네 역시 왜 가지고 있었어야 했는지 모를 수 있겠지. 그렇다면 노부도 더 이상 대답해 줄 수 없네.”

섭장천의 단호한 대답에 담천의는 얼굴을 굳혔다. 알지 못할 차가운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어찌하면 노선배께서 말씀해 주시겠소?”

담천의의 이 말은 사실 그들 일행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말을 해 주지 않으면 무력이라도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은연 중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섭장천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나직이 말했다.

“자네의 그 기백과 굴강함은 한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군. 하지만 자네가 그 어떠한 행동을 해도 노부는 말해 줄 것이 없네. 다만 자네가 왜 초혼령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그 초혼령을 준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그들 일행들이 보기에 섭장천의 태도에는 모호한 점이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섭장천은 저렇듯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저 자는 사실 무례해 보이기까지 했다. 섭장천이 입을 다문다면 오독공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요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존경하는 섭장천은 저 청년에게 은근히 대접을 해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혹여 그 초혼령을 준 사람이 죽어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네는 우연히 그것을 얻은 것인가?”

섭장천의 질문에 담천의는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에 대해 무언가 알고자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모호한 태도에서도 그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섭장천은 담천의와 초혼령의 관계는 알고 있었지만 중요한 실마리를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실마리는 담천의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꼭 알고 싶은 것이었다. 담천의는 섭장천의 얼굴에서 그가 묻는 의미를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눈은 여전히 무심해서 어떠한 의미도 찾아낼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그는 자신이 어떻게 초혼령을 얻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고, 자신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분명하게 결정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비껴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노선배께서 소생의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지 아니하셨으니 소생도 그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드리지 않겠소.”

그 말에 그들 일행들의 얼굴에 불쾌함과 참을 수 없는 노기가 어렸다. 급기야는 청의를 입고 눈에 푸른 기운을 가진 오십대 인물이 으스스한 살기를 느끼게 하는 목소리로 딱딱하게 말을 뱉었다. 그가 화를 내자 그의 전신에는 섬뜩한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

“네 놈은 화를 자초하고 있구나. 정말로 죽고 싶은게냐?”

그의 전신에서 점차 푸른빛이 짙어지고 있었다. 입고 있는 청의 때문은 분명 아니었지만 눈과 머리카락은 입고 있는 의복의 색깔을 닮아가고 있었다. 특히 그의 양 손은 이미 푸른색으로 변해있고 금속처럼 광택이 흘러 마치 금속으로 만든 의수(義手) 같았다.

“당신은 나를 죽일만한 자격이 없소.”

말을 하는 담천의는 고개도 돌리지도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행동은 청의를 입은 자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언제 청의인이 이런 무시를 받아 보았던가? 하지만 담천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섭장천의 입에서 약간의 노기가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호광(湖廣). 아직 노부의 말은 끝나지 않았네.”

그 말에 노기를 터트리며 손을 쓰려던 청의인은 멈칫하는가 싶더니 섭장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태도에는 섭장천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섭노야(葉老爺). 저놈이 노야께 너무 버릇없이 굴기에...”
“알겠네.”

청의인의 말을 끊은 그의 시선은 담천의에게 가 있어 떨어질 줄 몰랐다. 동시에 담천의의 시선도 섭장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상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담천의는 상대를 격동시켜 반응을 보고자 한 것인데 이미 그의 의도를 짐작한 듯 변화가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묻는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담천의는 순순히 대답했다.

“담천의요.”

“좋은 이름이군. 만나서 반가웠네. 이제 검을 치우고 자네는 떠나주었으면 하네. 밖에 자네의 일행도 기다리는 것 같으니 말이네.”

그리고는 남화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 담씨 친구에게 초혼령을 돌려주고 해약(解藥)을 주게.”

“섭노야! 어찌 이 자를….”

억울한 듯 오독공자 남화우가 입을 열자 섭장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노부는 같은 말을 두 번 하고 싶지 않네.”

“죄송합니다. 노야.”

오독공자 남화우는 얼굴색이 변하며 급히 사과했다. 그의 태도는 청의인과 똑같았다. 섭장천의 말에 불만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는다. 남화우가 담천의에게 시선을 돌리자 이미 자신의 손목과 심장을 노리고 있었던 검은 치워져 있었다.

“젊은 친구가 무척이나 빠르군. 하지만 본 공자는 진 빚을 잊지 않지.”

그는 말과 함께 초혼령을 건네주고 유지에 싼 조그만 단약 한 알을 담천의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손목과 가슴에서 피가 배어나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목에서 배어나오는 핏물을 입으로 쭉 빨아 삼켰다.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 나왔다. 그가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담천의는 섭장천을 비롯 그의 일행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남화우를 바라보면서 포권을 끝냈다.

“죽은 정말 맛있었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몸을 돌려 나가다가 문득 오독공자가 준 해약을 거지노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관왕묘를 나섰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 해도 그가 얻을 것은 없었다. 섭장천이란 인물은 뭔가 더 알고 있겠지만 그런 인물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죽는다 해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그를 강요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었다. 아니 그의 일행 하나하나가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담천의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섭장천은 구석에 앉아 담천의가 준 해약을 바라보고 있던 거지노인에게 말했다.

“홍칠공(洪七公)! 당신도 이만 자리를 비켜 주시겠소?”

홍칠공(洪七公) 노육(盧陸)

개방 전임장로로 사람들은 주독이 들어 빨갛게 변한 그의 코 때문에 홍비개(紅鼻 )라고도 부른다. 개방의 비전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과 취리건곤보(醉裏乾坤步)를 극성까지 익혔다고 알려진 그는 개방도( 幇徒) 답지 않게 무림에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더구나 장로의 자리에서 물러난 당금에서야 더욱 그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허… 섭형(葉兄). 사실 이 관왕묘에 먼저 들어 온 사람은 이 노개요. 헌데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을 가라하니 섭섭하기 짝이 없구려.”

노육의 말에 섭장천은 처음으로 미세한 살기를 흘렸다. 그러자 갑자기 관왕묘 내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만큼 따라 다니고 보았으면 이제 알기 싫을 만큼 알게 되지 않았소? 사람들은 간혹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운을 믿고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소.”

섭장천의 말과 태도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경고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노련한 노육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이미 보름 동안 이들과 어울리다시피 쫓아 다녔다. 그들의 이해되지 않은 행동은 여러 가지 추측을 가능하게 했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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