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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패 모두골의 '방랑시인 김삿갓' 공연
ⓒ 정희경
겨울들판을 지키는 짚가리 사이로 광대 깃발이 일렁이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 풍물소리로 들떠 있는 신명난 공간이 있었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밥굿'으로 잘 알려진 광대패 '모두골'이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에 '이달의 꿈'이라는 예술극장을 개관하고 18∼19일 개관기념 잔치굿을 열었다.

이달의 꿈?

손곡 이달(蓀谷 李達)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학문은 높으나 서출이라 과거 시험에도 응시를 못한 그가 이 곳에서 시나 읊다가 이 세상을 가겠다며 이 깊은 산중에 살았다 한다. 그의 제자 허균이 스승인 이달을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이 '홍길동'이라는 설도 있다. 이달의 호 '손곡'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 지금의 손곡리다. 그래서 '이달의 꿈' 예술극장인 것이다.

▲ 또랑광대 익살꾼 김명자씨 창작풍자 판소리 '백수 시대'
ⓒ 정희경
모두골 광대패와 부론 청소년 풍물패의 열림굿을 시작으로 마을 축제는 시작됐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외지 사람들로 객석에는 열기가 넘쳐났다. 질펀한 또랑광대들의 창작 판소리부터 민중가수 손병휘씨의 노래, 모두골의 김삿갓 공연, 극단열림터의 1인극, 성남우리마당 풍물굿, 영화 상영 등 이틀동안 볼거리가 풍성했다.

인근 개구쟁이와 청소년들도 신이 났다. 문막에서 친구들과 함께 찾아온 박주희(부론중 1)양은 "광대패랑 마을 주민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같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며 함께 온 친구들과 자진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 마을 창고를 개조한 극장
ⓒ 정희경
공연 중간 중간에 예측 못한 방해꾼들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한잔 얼큰하게 걸치신 어르신네가 나와서 배우들에게 기웃거리며 말을 걸기도 한다. 개구쟁이들은 신기해 하며 조명을 만지려고 자꾸 무대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열연하는 배우도 관객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다. 배우들의 재치로 방해꾼들조차 웃음과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 구실을 톡톡히 해줬다.

자식들은 도회지로 나가 혼자 살고 계시는 김광희(70) 할머니는 "이런 촌구석에 극장이 들어와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정말 재미있었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 극단 열림터 유순웅씨의 1인극 '염쟁이 유씨'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어르신들의 진지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 정희경
'이달의 꿈'의 공간에서는 웃음과 감동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은 물론이고 구경온 외지인들에게 식사 대접과 막걸리, 떡, 고구마 등 시골 농가의 인심도 풍성했다. 1박 2일 동안 이 마을 부녀회에서는 주민들과 외지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선사했다.

"이렇게 축제를 여니까 시골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신다. 내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한테 어떻게 대충 해서 보낼 수 있겠냐"는 부녀회 김용순(50)씨의 표현에, 맛깔스런 음식만큼 넉넉했던 우리의 시골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곡리에 위치한 '이달의 꿈' 예술전용극장은 문화관광부에서 공모한 '생활친화적 문화공간조성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손곡리 주민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마을 사람들이 동네 공동창고를 광대들에게 내놓아 지금의 극장을 꾸린 것이다.

농자재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소극장은 50평 남짓한 공간에 객석이 150여석이 있다. 또 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잘 갖추어진 음향 시설과 조명기기, 분장실이 있다. 소극장 밖으로는 300석 규모의 접이식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 배우들의 열연에 중간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 정희경
토박이 농꾼으로 현재 이장을 맡고 있는 송치호(48)씨는 "농업이 살고 농촌이 살 수 있으려면 농업인의 힘만으로는 못 풀어나간다. 농촌에서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광대들에게 무대가 있어야 하겠고, 우리 농사꾼들도 뭔가 대안이 필요했다. 복합적인 문화 공간 조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때, 매년 열렸던 모두골 광대들의 공연에 대한 어르신네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며 마을 공동창고를 예술공간으로 선뜻 내주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광대패 모두골'이 부론면에 터를 잡은 것은 2년 전인데, 그동안 이 지역에서 남한강 해맞이굿, 대보름 달맞이굿, 풍류 난장굿 등 지역문화 활성화와 공동체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광대의 길을 20여년간 묵묵히 걸어온 모두골 이바우 대표는 "광대패 모두골이 세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인 지 11년이다. '이달의 꿈'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의 꽃을 피우는 싹이 되고 싶다"라는 소망과 함께 공동창고를 내어준 동네 어르신들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손곡리는 고려 공민왕, 손곡 이달, 허균이 공부하였던 곳이며, 임경업의 전설이나 유적이 있다. 또한 폐교된 손곡 초등학교에는 도예 체험실과 단청 전시실도 있어, 역사와 문화의 체험을 함께 맛볼 수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너른 들판. 밤이면 흐르는 냇가로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손곡리.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 원주에서 20여분의 거리에 있는 문화의 공간 손곡리에 와서 '이달의 꿈'을 함께 꾸어 보심이 어떨지?

▲ 볼거리 만큼이나 먹거리도 풍성했던 잔치. 공연을 보러 온 학생들이 숯불 삼겹살을 먹고 있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 정희경

▲ '공연내용 보다 항상 뒷풀이가 더 알차다'는 모두골 관계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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