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까지 자신의 추적과 조사를 묵인했던 섭장천이 이제는 끝내달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불가피하게 손을 맞대야 한다. 하지만 섭장천은 고사하고 금존불이라 불리는 저 라마승만 해도 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홍칠공 노육은 궁둥이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세를 아는 자가 준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아는 인물이다.
“목숨이 하나인 관계로 오늘 밤은 영락없이 이슬을 맞고 자야겠구나. 섭형의 배려에 감사드리겠소.”
어찌 들으면 자신을 쫒아내는데 대해 비꼬는 말이라고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육의 말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사실 섭장천은 그에게 한계를 긋고 자신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으로 섭장천은 자신에 대한 예의를 보여준 것이다.
노육은 허리춤에 걸려있던 술호로를 들어 한모금 마시더니 숨을 크게 세 번 내쉬었다. 그러더니 마셨던 술을 허공에 대고 안개처럼 내뿜었다. 헌데 기이한 것은 안개처럼 뿜어진 술이 바닥에 떨어지자 고약한 냄새와 함께 조금씩 흑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홍칠공 노육은 항상 세 개의 술호로를 가지고 다니는데 그 중 하나는 만독(萬毒)을 풀어 준다는 피독주(避毒珠)로 만든 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간혹 이렇듯 술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은 그만의 해독법이었다.
노육은 의도적으로 구석에 있는 촌노와 그 며느리로 보이는 두 사람을 한 번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문쪽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당신들은 왜 이리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차지하지도 않을 보물 때문에 수많은 무림인들과 적이 되겠단 말인가?”
중얼거림이었지만 분명 그들 모두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묻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섭장천 일행이 보이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홍칠공 노육이 나가자 그때까지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던 녹의소녀가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담천의라는 그 청년은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지 않은가요. 할아버지?”
“아주 좋은 공부재료가 될 수 있지. 화우의 말대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섭장천은 녹의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어느새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그것과 같았다.
“그는 왜 남숙(南叔)이 준 해약을 홍칠공에게 주었을까요? 그는 분명 두 가지 독에 중독된 상태가 아니었나요?”
그녀의 물음은 이들 일행에게도 궁금한 내용이었다. 일행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린 것을 안 섭장천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청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그가 먹은 죽에는 분명 한가지 독이 들어 있었다. 또한 화우가 그 청년에게서 초혼령을 건네받을 때 또 한 가지를 하독했지. 그는 분명 두 가지 독에 중독되었다.”
“그런데요?”
“이 세상에는 독을 제어하거나 배출시킬 수 있는 상승심법(上乘心法)이 세 가지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자연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상대가 하독한다는 사실을 알고 대비하면 몸에 들어 온 독을 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난 후에 호흡을 하면서 배출하거나 음식물과 같이 토하는 것으로 배출할 수는 있는 것이지.”
“그럼 그가 그런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가 그런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그에게 해독을 시켜줄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이 할애비는 그가 상승심법을 익혔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구나.”
“왜 그렇죠?”
“그는 무섭도록 침착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더구나 순간적인 임기응변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일행은 내심 놀랐다. 섭장천의 입에서 이러한 정도의 칭찬이 나온 인물은 아직 없었다. 다소 뛰어나 보이는 인물이었지만 섭장천이 저 정도까지 칭찬을 할 인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이곳을 들어와서 나갔을 때까지를 생각해 보자. 그는 들어오자마자 추적해 온 저 친구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지.”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너라면 주위의 인물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추적해 온 인물에게 다가갈 수가 있었겠느냐? 대개는 자신이 추적해 온 인물과 동료들일 것이라 생각되는 주위 인물들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하려 들지 않겠느냐?”
도망친 자는 분명 그를 도와줄 동료들에게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있는 자들은 대개 그의 동료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개의치 않은 것은 그들을 제압할 능력이 있는 자거나 아니면 아주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다.
“그는 들어오는 순간 우리를 파악했다. 그래서 저 친구의 검을 취한거야. 그에게는 알아야 할 의혹이 있었고 병기가 필요함을 알았던 거지.”
“그렇다면 그는 우리와 싸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싸우자고 했다면 죽을 태연하게 받아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단 한번의 실수를 자신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 말에 남화우는 섭장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그를 너무 경시한 탓입니다.”
“꼭 자네 탓만은 아니지. 그는 품속에서 오른손으로 초혼령을 꺼내들었음에도 왼손으로 자네에게 주었지. 그는 자네가 초혼령을 취하고자 하는 것을 이미 알았고 그는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판단은 너무도 옳았어.”
일행 중 한명이 제압당했다면 나머지 인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상대와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 동료를 희생시키고 상대를 죽이거나 제압하는 것. 하지만 이들에게는 굳이 동료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상대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결국 섭장천까지 나서 타협하고 돌려보냈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그는 냉철하고도 빠른 판단력을 가졌다. 그는 이 할애비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지 않았어. 그 질문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욕심을 거두고 물러났다.”
“그런 사람과는 정말 적이 되면 안 되겠군요. 헌데 왜 그는 음울한 기운과 슬픈 눈을 가지고 있을까요?”
녹의소녀는 이미 닫힌 관왕묘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아마 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통해 나간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바라 본 섭장천의 얼굴에 기이한 기색이 어렸다.
그의 기질과 감성을 느낀다는 것은 그에게 적이나 동료가 아닌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이성에 대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결정되겠지. 하지만 그는 우리와 친구가 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구나.”
혹여나 자신의 외손녀가 그에게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그 감정의 싹을 자를 필요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 훌륭한 청년이었지만 가는 길이 자신들과는 다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담천의라고 했나요? 할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알고 계시지요?”
그녀가 한 질문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잇는 의혹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돌려 흑모전서와 낭씨형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미적미적하면서 이곳을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막 몸을 일으키는 참이었다.
“호광. 저들은 우리 일에 매우 유용한 사람들 같지 않은가?”
그 말에 안절부절했던 흑모전서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중하게 섭장천에게 포권을 취했다.
“노선배가 계신 줄 모르고.... 후배는..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그는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했어야 옳았다. 최소한 오독공자 일행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는 몸을 돌려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빠른 신법으로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욕심은 그를 망설이게 했고 그것이 그의 생명을 남에게 맡기는 불행을 가져오게 했다.
허나 섭장천은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돌렸다. 대신 호광이라 불리운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들에게 걸어왔다.
툭--툭---
그의 걸음걸이는 자연스러웠지만 돌로 되어있는 바닥에 그의 족적이 깊이 파이고 있었다. 그것을 본 흑모전서 균달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와 함께 낭씨형제 역시 바닥에 주저 앉은 채 고개를 숙였다. 오독공자라면 죽을 힘을 다하여 상대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들 일행은 자신들이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