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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앞에서 필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앞에서 필자 ⓒ 박도
또 5월 25일부터 6월 4일까지 열흘 동안 안동문화방송 특집 팀과 중국 동북지방 항일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지난 8월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방북단 일원으로 휴전선을 넘어서 북쪽의 산하를 밟으려고 했지만 행사가 연기되는 바람에 내년으로 미뤄졌다.

3월에는 <일본기행>이라는 책이, 8월에는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가 출판되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올 한 해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헤아려 보았더니 무려 205꼭지나 되었다. 평균 이틀에 한 편 이상 쓴 셈이다.

항일유적지 답사 중, 백두산에 오르다
항일유적지 답사 중, 백두산에 오르다 ⓒ 권순태(안동MBC)
내가 되새겨 봐도 엄청 바쁘게 살았다. 올 한 해 동안 숱한 일들 가운데 가장 감동했고 아울러 좌절했던 일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갔던 일이었다.

지난해 연말 “내 평생소원은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히는 일”이라는 권중희 선생 인터뷰가 나가자, 전혀 뜻밖에도 1000여 분의 네티즌들이 4천만원이 넘는 성금을 보내주셨다.

NARA의 한 직원이 우리 일행에게 중요서류는 97~98%가 'DESTROYED(파기하다)'하였다고 메모한 메모장
NARA의 한 직원이 우리 일행에게 중요서류는 97~98%가 'DESTROYED(파기하다)'하였다고 메모한 메모장 ⓒ 박도
그래서 한 우국지사의 평생 소원을 들어드릴 때는 더 없이 감동했다. 하지만 막상 미국 현지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가서 동포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문서를 열람하던 중, 중요문서는 9·11 사태 후 미 국무성이나 미 CIA에서 대부분 수거해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없이 좌절했다.

한반도의 분단을 풀어 달라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필자는 겁 없이 미국에게 충고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자유와 평화의 상징 백악관이 이제는 테러의 표적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은, 마치 남의 곳간 양식을 노리다가 내 곳간의 금은보화를 잃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국의 한 작가가 미 지도자에게 정문일침을 가한다.

진정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한다면 남의 주권도 존중해 달라. 당신 나라의 한 주보다 작은 한반도를 ‘결자해지’ 곧 묶은 자가 풀어주듯이, 이제는 지구상의 하나뿐인 한반도의 분단을 풀어주는 게 정녕 대국다운 아량이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이 아닐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무심코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치명상을 입듯이, 강대국들이 자기네 맘대로 그어 놓은 삼팔선, 휴전선 때문에 우리 겨레는 그동안 얼마나 서로 반목, 시기, 갈등, 저주의 나날을 보냈던가. 피를 나눈 형제끼리 한 하늘을 서로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로 살지 않았나?

왜 우리 한반도가 분단되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적도, 패전국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분단돼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되었는데도 여태 분단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우리 겨레는 정말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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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의 상징인 백악관이 이제는 경비가 삼엄하고  상공에는 무장 헬기가 돌고 있다
자유와 평화의 상징인 백악관이 이제는 경비가 삼엄하고 상공에는 무장 헬기가 돌고 있다 ⓒ 박도
시내를 가로지르는 고목이 되고자 함

한 해를 보내며 그때 성원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과 사죄의 말씀을 아울러 드린다. 본의 아니게 여러분의 성금을 헛되이 써서 정말 면목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정말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NARA에 있는 해방 후에서 한국전쟁 휴전까지 사진을 복사해 와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하였고, 공개 뒤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이는 오로지 네티즌의 성원과 미국 동포들의 봉사로 이루어졌기에 거듭 거듭 네티즌 여러분과 자원봉사 동포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지난 4월 1일 서울살림을 접고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으로 내려왔다. 허름한 농가에서 200평 남짓한 텃밭을 가꾸면서 때로는 뒷산에서 나무를 하여 도끼질을 한 뒤 군불을 지피면서 산골생활을 하고 있다. 막상 시골에 와서 보니까 이농문제, 노인문제, 결혼문제, 농가수입 문제 등 많은 점들이 생각 이상이었다.

텃밭의 고구마를 캐고서
텃밭의 고구마를 캐고서 ⓒ 박소현
우리 삶의 뿌리인 농촌이 피폐해지는 것은 우리의 전체가 무너지는 일로, 나는 이런 문제들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글로 여과 없이 보내고 있다.

이 글은 ‘도농불이(都農不二)’ 곧 '도시와 농촌은 하나다'라는 신념으로, 내 스스로 농사꾼들의 삶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오늘의 우리 농촌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이런 사실들을 도시민에게 전함과 아울러, 가능한 그 해법과 대안까지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60회가 나가고 있는데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좋고, 한 출판사에서 출판하고자 하여 내년 봄에 펴낼 예정이다.

몇 해 전, 한 여행지에서 고목이 쓰러져서 시내를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가 되어 뭇 짐승들의 길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때 나는 그것을 보면서 나머지 삶은 그 고목처럼 살고 싶었다.

올 한 해도 무척 바쁘게 살았는데 내년도 바쁠 것 같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도시와 시골을 이어주고 욕심 같아서는 나라와 나라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이는 내 힘만으로도 되는 일이 아니다. 하늘의 도움과 네티즌 여러분의 성원, 그리고 건강이 따라야 한다.

서산으로 지는 해에게 두 손 모아 빌면서 내년에도 내가 일할 일감과 능력, 그리고 건강을 달라고 기도 드린다.

일본 아오모리현 오이라세 계류에 고목이 쓰러져 뭇 짐승들이 건너다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남은 삶을 살고 싶다
일본 아오모리현 오이라세 계류에 고목이 쓰러져 뭇 짐승들이 건너다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남은 삶을 살고 싶다 ⓒ 김자경(j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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