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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 장 중추지감(仲秋之感)
타-다---닥!
펑---펑---! 푸시시----
어둠이 지기 시작하자 담 밖에서는 온통 폭죽(爆竹)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1년 중 가장 큰 명절의 하나인 중추절(仲秋節)의 놀이 중 하나인 폭죽은 어느 시기부터인지 모르지만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화약(火藥)이 신선(神仙)이 되고자 하는 도사(道士)들의 연단술(煉丹術)에서 기원(起源)했다는 사실은 기이하고 흥미롭다.
소(消, 초석)와 류(流, 유황), 그리고 탄(炭, 목탄)을 섞어 연단하면 금(金)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더구나 다른 것과는 달리 불을 가까이 하면 맹렬하게 연소되는 것을 보고 금이나 은이 생성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수은이나 다른 약재 등을 섞어 제조한 영단이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영단(靈丹)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단순히 연소되는 것이 아닌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화약으로 개발되었다.
당나라부터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던 화약은 대명 초기에 더욱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었고 놀랄 정도의 진전이 있었다. 화기를 다루는 연구도 급진전되어 현 영락제는 군(軍)에 화기부대인 신기영(神機營)을 창건하기도 했고 그 효과도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군에서 이용되는 화약과 일반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화약은 아예 달랐고, 특별히 관에서도 금(禁)하는 바 없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폭죽놀이는 큰 명절 때마다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어서 오너라. 사매 얼굴을 보니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구나.”
언제 만나도 가장 먼저 반겨주는 사람은 셋째 사형이었다.
“두 분 사형께서 술을 드시는 모습을 뵈는 것도 오랜만이로군요.”
정원을 가로 질러 걸어오는 사람은 당새아(唐璽兒)가 말을 대신하는 운령(蕓玲)이라 불리던 여인이었다. 말을 못하나 그녀의 보석처럼 영롱한 두 눈은 전 중원을 꿰뚫어 보고, 지모(智謀)는 제갈량을 능가한다는 하는 여인.
“그래도 오늘은 중추절이 아니더냐. 방사형(方師兄)께서 오늘따라 감흥이 나신 모양이다.”
웃으며 또한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은 오랜만에 이곳으로 돌아온 여섯째 사형이다. 운남(雲南)과 남만(南蠻)의 더운 기후 때문이었는지 원래 검은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 더욱 검어졌다.
“안주라도 변변한 것을 내오라 하시지 어찌 그리 마시고 계십니까?”
속상하다는 기색이고, 반쯤은 아래 사람들에 대한 질책일 것이다. 정원 한쪽에 있는 정자에 걸터앉자 그들이 마시는 술은 민가(民家)에서 흔히 마시는 백주(白酒)요, 안주 역시 한 접시의 낙화생(落花生:땅콩)뿐이다.
“하하, 운령이 속이 상하는가 보구나. 허나 옛날 생각이 나서 이리 달라 했다.”
아마 셋째 사형인 방백린(方伯麟)은 어릴 적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중추절이 되면 즐거워했던 그 때. 그의 부친은 술독을 끌어안고 술을 먹을 줄 아는 분이셨으니 이런 모습을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소녀도 한잔 주실래요?”
운령은 이내 속상한 기색을 지우고 생글거렸다. 어차피 이런 중추절 같은 때에는 아무리 마음을 모질게 먹어도 고향과 잃어버린 가족들이 떠오른다. 어찌 서로의 생각을 모르랴.
“그러려무나. 오늘 같은 날엔 취해서 고함도 쳐 보고 하늘보고 원망을 해도 용서되겠지.”
그는 술잔을 운령에게 건네며 술을 따라 준다. 운령은 술을 못한다. 조금만 먹어도 숨이 차오르고 얼굴이 빨개진다. 하지만 그녀는 단숨에 한잔을 비웠다. 그리고 낙화생 몇 알을 집어 얼른 입안에 털어 넣는다. 아마 백주의 시큼한 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째 사형의 연락이 왔어요. 일이 잘 되었다 하더군요.”
그녀는 기침을 참아가며 낙화생을 씹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비운 술잔을 사형에게 돌려주며 술을 따른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여 주겠다는 것이냐?”
“움직이면 오히려 그들이 당할 거예요.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신경만 건들면서 기다리다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조금씩 타격을 입히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천하의 민심이 변하게 만들어야 하지요.”
“네 말이 맞겠지. 하지만 이 우형은 그들과의 야합(野合)이 싫다. 그래서 얻는 명분 없는 대의(大義)가 얼마나 설득이 있을려구.”
그 말과 함께 그는 훌쩍 술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러한 마음을 운령이 어찌 모르랴! 사형제 중에서 성격이 가장 담백하고 인간적인 셋째사형이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분에 벗어난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잠시 만이예요. 천하를 얻는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민심이에요. 이번 일은 민심(民心)이 동(動)하고 천변(天變)의 기운을 얻기 위한 계기가 필요한 것 뿐이에요.”
그녀는 다소 사정하는 듯 설득했다. 대사형과 둘째사형이 있다고는 하나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인물은 셋째사형이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전 조직이 마비된다. 그녀의 어린 말에 그는 못이기는 체 고개를 끄떡였다. 이미 자신도 동의해 진행된 일이다.
“백가촌(百家村)의 일은?”
“설득 중인가 봐요.”
“노인네들 고집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들은 우리와 달리 잊으려 하는 거겠죠. 어차피 돌아 올 고향도 없으니까요.”
말이 끊겼다. 그들 역시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중추절의 만월이 어느새 중천(中天)을 향하고 있다. 달은 언제나 같지만 자신들은 변해 있다. 이것이 세월 탓만은 아니다.
그러다 문득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운령은 입을 열었다.
“아, 사형이 알아보라던 그 인물, 사형은 반드시 죽여야 했어야 할 인물이라 그러셨죠?”
그녀의 말에 여섯째사형인 등자후(鄧玆厚)가 의외라는 듯 시선을 돌려 사형을 바라보았다.
“죽여야 할 인물이라니, 그렇게 마음먹은 인물을 사형이 죽이지 못한 인물도 있었소?”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자신이 아는 셋째사형은 좀처럼 결정을 쉽게 하지 않지만 결정을 하면 반드시 실행한다. 그리고 그런 사형이 실패한 적이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사형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대신 운령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담천의(曇天義), 나이는 이십 오륙 세 정도. 성장할 때까지의 생활은 파악 불가. 삼년사개월 전 강소성(江蘇省) 양주현(揚州懸)에 있는 만물표국 표사로 들어가 십삼회에 걸친 표행(驃行). 그와 친했던 인물은 없으며 그와 같은 방을 사용했던 표사도 이번 출행에서 사망.”
“표사였어?”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등자후가 묻자 운령은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만 이번 강남서가가 맡긴 표물을 운반하는데 있어 반드시 그 인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전언이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냈어요. 그래서 이상했죠.”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표물을 맡기는 물주(物主)는 무공이 고강한 대주를 선택하거나 표사 중에 이름난 자를 지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름도 없는 표사 한명만을 반드시 그 대열에 합류시키라고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생각해 보았어요. 강남에 있는 표국 만도 오백여 개가 넘어요. 강소성에 있는 것 역시 이름난 표국만 수십 개는 되죠. 헌데 만물표국은 강남에서 서열 1백위에도 끼지 못하는 작은 표국이거든요. 송하령이 가진 해금령이나 서가화가 가진 적멸안을 운송시킬만한 표국은 절대 아니에요.”
“…!”
“더구나 강남서가가 딸려 보낸 황금 만냥만 해도 만물표국이 운반하기 벅찬 것이죠. 또한 한 번도 강남서가는 만물표국을 이용한 적도 없고 관계가 있었던 적도 없어요.”
“무슨 뜻이냐? 그럼 그자 때문에 만물표국에 표물을 맡겼다는 말이냐?”
방백린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운령은 발그레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바로 그거예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는 삼년씩이나 만물표국에 표사로 틀어박혀 있었어요. 헌데 이번 표물 운송으로 인하여 강호에 처음 모습을 보인 거죠. 더구나 천관의 부탁을 받은 풍운삼절이 그로 인해 강호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된 거예요.”
여섯째 사형인 등자후 역시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말은 들었다만 그 혼자 풍운삼절을 그렇게 만든 거냐?”
“물론이에요. 그는 검을 사용했어요. 헌데 기이하게도 무당의 유학이라는 태극산수(太極散手)도 익혔음이 조사되었어요.”
방백린의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어렸다. 그 표정의 의미를 모를 운령이 아니다.
“해금령을 공표하라고 지시할 곳은 한군데 밖에 없죠. 그리고 그 만물표국을 이용하라고 강남서가에 지시할 곳도 오직 한군데죠. 더 나아가 풍운삼절을 요절낼만한 검법과 태극산수를 가르쳐 줄 곳도 오직 한군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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