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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단기성에 놀란다. 아무리 큰 죄를 져도 해가 바뀌면 그만이다. 탈세, 분식을 했거나 배임죄를 범했거나 뇌물을 수수했으며 공갈사기를 쳤어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정치에 복귀하거나, 기업의 총수가 되거나 아니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쩌면 연말이 되어 수 없이 벌어지는 수많은 망년회(忘年會)들은 망각이라는 이름의 속죄양을 바치는 제사이기도 한 모양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 법은 지극히 상황논리적이며 임기응변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되는 듯하다. 언론을 여하히 주무르고 분위기를 어떻게 타느냐에 따라 곧잘 ‘어제의 범죄’는 ‘오늘의 십자가’로 반전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법 정신은 사회와 격리되어 진공 속에 떠다니는 헌신짝이 되기도 한다.
이쯤 되고 보니 법의 엄정함과 권위란 실종되고 없는 셈이다. 법을 지키는 것은 맹추고 요리조리 현란하게 빠져 다니면 재주꾼으로 추앙 받기도 한다. 오죽하면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웃지 못할 냉소가 주위에서 회자되고 있을까.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우리의 자본 시장으로 옮겨 보자. IMF 위기 이후 외국 자본들이 본격적으로 국내로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보다 수백년 앞서 기업을 일구고 발전 시켜온 사람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오늘날의 주식회사 제도와 자본 시장을 발전시켜온 장본인들이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니콜라스 버틀러는 주식회사 제도야 말로 근대사의 걸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인류에 기여한 수많은 기술과 진보들이 이 제도의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인정한다면 그렇게 칭송 받던 주식회사 제도에서 어떻게 엔론 추문이 터졌고, 월드컴 회계 조작이 일어나 기업을 파산으로 몰고 갔던 것일까. 최근 이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은 한가지로 모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즉, 부적격한 이사들이 얼굴 없는 주주들의 무관심을 틈타 제 몫 챙기기에 골몰했던 결과라는 것이다. 예컨대, 주인의 금고 열쇠를 맡은 집사가 ‘인 마이 포켓’에 현혹되어 결국 금고를 거덜 내고 만 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주식회사 제도는 근본적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바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담론들이다. 즉, 기업 경영의 장기적이며 근본적 발전의 필수조건은 전체 주주의 이익에 충실한 이사와 그들로 구성된 이사회의 운영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예컨대 신실하고 투명한 집사 감을 찾아 채용하고 또한 그들을 잘 감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최근 SK에 대한 소버린 측 주장의 논거는 아주 간명하고 단순한 것으로 보여진다. 분식회계를 범해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보석으로 나온 사람(현재 항소심 진행 중)에게 자기의 귀중한 돈의 관리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범죄자에게 어떻게 15조원의 자산을 위탁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상황논리적 우리식 항변은 궤변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교조적 북한식 논리가 북한 이외의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거나 인정 받지 못하는 것과 유형적으로 비슷하다. 만일 구차하게라도 그들을 설득하려면 수조원 분식을 해도 주주이익과 무관하거나 범죄 성립 요건에 해당되지 않도록 우리의 법 체계를 아예 바꿔야 할 것이다. 아니면 모든 분식회계는 개발 독재의 과정에서 기업에게 강요된 불가항력적 결과물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기업과 기업주는 일원 한푼의 불법적 이득을 취한 것이 없다고 정확히 규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억지춘향식 설득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범죄자에게 결코 국내 중추 기간산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야말로 보편타당하며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인 것이다. 나라 안에서는 우리의 특수한 경험으로 인해 혹여 용인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라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간다면 그것은 궤변이요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그것은 작게는 해당 기업의 주주에 대한 모독이며 넓게는 국민 모두에 대한 기만 행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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