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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밤 열린 2004년 마지막 촛불문화제 무대에 "국가보안법 기어이 폐지하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31일 밤 열린 2004년 마지막 촛불문화제 무대에 "국가보안법 기어이 폐지하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이민우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 무산이 확실시 된 지난 31일 밤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현장에는 '결코 투쟁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는 의지가 넘쳐 났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단식단 중 거동이 가능한 사람과 시민 등 7백여명이 참여해 새해엔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결의했다. 무대에 붙어 있는 "국가보안법을 기어이 폐지하자"란 현수막은 문화제 참가자들의 다하지 못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민노당 김혜경 대표 "반드시 새해엔 국보법 폐지 이뤄내자"

민노당 김혜경 대표는 "투쟁은 이제 시작"임을 강조했다.
민노당 김혜경 대표는 "투쟁은 이제 시작"임을 강조했다. ⓒ 이민우
촛불문화제에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는 분노와 감격이 뒤섞인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추운 칼바람에 맞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을 든 동지 여러분! 드디어 격동의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반통일, 반민주 악법의 연내 폐지를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며 지내왔습니다."

김혜경 대표는 "비록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오리무중으로 올해 안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주저앉을 순 없다"며 "지금 이 자리의 열정과 결의를 모아 반드시 새해엔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뤄내자"고 호소했다.

"투쟁의 날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 투쟁을 거치며 우리는 승리를 위해선 더 많은 진보 세력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더욱 힘차게 투쟁의 힘을 모아 촛불로 아니 횃불로 조국을 밝히는 새해를 맞이합니다."

민가협 임기란 고문 "언제든 열심히 국민의 행복 위해 싸우자"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임기란 고문은 "마지막 촛불 행사라 기뻐야 하는데, 기쁘지가 않다"며 열변을 토했다.

"우리 민가협 어머니들은 20년간 수많은 좌절과 분노 속에서도 싸워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젊습니다. 그러니 국회의 한가지 동작에 웃고 울지 말아 주세요.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임기란 고문은 "열리우리당이 우리를 기만했는데, 여러분의 힘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뒤, "한나라당은 지구를 떠나든지 방구석에 이불 쓰고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으로 수많은 양심을 죽이고 얻은 부와 권력을 계속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든지 열심히 국민의 행복을 위해 싸웁시다. 투쟁!"

"우리는 56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에 굶주려왔습니다"

여의도 칼바람 속에 촛불을 든 이 어린아이의 따스한 마음을 국회의원들은 헤아릴 수 있을까.
여의도 칼바람 속에 촛불을 든 이 어린아이의 따스한 마음을 국회의원들은 헤아릴 수 있을까. ⓒ 이민우
단식 15일째를 맞는 조효선(춘천)씨는 몹시 쉰 음성으로 "워낙은 목소리가 맑은데, 어제 단식단들이 폭력 경찰한테 연행되는 걸 보며 오열하다 보니 (목소리가)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전 어떻게 이렇게까지 투쟁할 수 있었는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주위에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선전전 나갔을 때, 어떤 아저씨가 '배들이 불렀구만'하는 말을 하던데,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56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에 굶주려 왔습니다."

이어 노래패 '아름다운 청년'의 공연이 진행된 오후 8시 12분께, 극우단체인 '무한전진' 깃발을 든 청년 7명 가량이 행사장에 난입해 큰 소란이 벌어졌다.

극우단체 '무한전진' 깃발든 청년들 무대에 뛰어올라 난동

청년들은 '무한전진' 깃발을 들고 공연 중인 촛불문화제 무대로 뛰어올랐다. 이에 단식단을 비롯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 관계자들이 이들을 끌어내리려 하자 폭력을 휘둘러 김아무개씨가 안경이 부러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

극우단체인 '무한전진' 깃발을 든 청년들이 무대 위에 올라 팔짱 낀 채 앉아 있다.
극우단체인 '무한전진' 깃발을 든 청년들이 무대 위에 올라 팔짱 낀 채 앉아 있다. ⓒ 이민우
이들은 무대에서 끌려 내려오지 않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가 끌려 내려지자 폭력을 휘두르며 달아났으며, 그 중 1명이 국민연대 관계자들에게 붙잡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사람은 "왜 촛불집회장에 난입했느냐"고 묻자, "그냥 지나던 중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기에 반대하는 뜻에서 그랬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무한전진 회원이 아니라고 말한 뒤, "경찰서에 가서 얘기하겠다"고 덧붙였다.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들은 촛불집회에 난입한 우익청년들을 체포하기는커녕 이들을 붙잡으려 하는 국민연대 관계자들을 막고 폭력을 휘둘러 거센 항의를 받았다.

관계자들은 "붙잡힌 청년을 빼내려 다른 청년들 3명이 경찰들 틈에서 국민연대 관계자를 잡아 넘어뜨리는 행동을 했어도 경찰을 이들을 제지하거나 잡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극우세력의 평화적 촛불집회 난입 방조하고 있다"

이에 국민연대 관계자들은 경찰측에 거세게 항의하며, 평화적 집회를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측은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고 다 연행하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약 10여분의 실랑이 끝에 국민연대 관계자들은 이 청년을 경찰에 인계했으며, 경찰은 영등포 경찰서 여의도지구대로 이동해 촛불집회에 난입한 경위와 신원 확인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대의 한 관계자는 "미친 세력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경찰이 평화적인 촛불문화제에 극우 세력이 난입하는 걸 방조해 마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이념 갈등이 심각한 것처럼 조장하려 책동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단식 끝내고 시민들 속에서 투쟁 불길 확산시킨다

철거되는 국회 앞 단식농성단 천막.
철거되는 국회 앞 단식농성단 천막. ⓒ 이민우
한편 국민연대는 이날 밤 9시부터 운영위원들과 각 지역 단식단 대표가 참여한 회의에서 단식농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대는 단식 농성을 접는 것에 대한 성명을 발표해 "우리는 믿기지 않는 겨울 혹한기 단식농성단을 중심으로 우리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강고한 투쟁을 일궈냈다"고 자평한 뒤 "이 투쟁의 기억은 국민 모두에게 선연하게 남아 승리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국민연대는 성명에서 "국회의사당에 모여 당리당략 놀음에 혈안이 된 정치모리배들은 마침내 국가보안법의 생명을 연장하는 반역행위를 공모했고, 그 공모를 실현시켰다"며 "2004년 12월 31일, 오늘을 야합과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의 배신자들을 기억하자"고 선언했다.

국민연대는 또 "이 겨울 우리는 투쟁을 일시적으로 접고 민중들과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국가보안법 폐지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것"이며 "다시 이 자리에 전 민중과 더불어 2005년 마침내 국가보안법, 그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야 말겠다"고 다짐해 결의를 다졌다.

국민연대의 결정 뒤 단식단들은 천막을 철거하고 해산을 준비하고 있다. 각자의 생활 근거지로 돌아가 국가보안법 폐지의 불꽃을 더 크게 지피겠다는 굳은 의지로.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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