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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두 명의 점소이가 다가와 향긋한 차와 함께 반해철(拌海蜇)과 파리백채(耙離白菜)를 내놓기 시작했다. 반해철은 해파리에 몇 가지 해산물을 섞어 무친 것이고 파리백채는 세 가지 채소를 살짝 데쳐 양념을 친 전채(前菜)다.
“네가 시켰냐?”
구양휘는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 판에 음식이 나오자 입맛을 다시며 모용수에게 물었다.
“소제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드셔도 될 것 같소. 아마 대형을 대접하기 위한 걸게요.”
“그렇군.”
이미 구양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말한 바 있었다. 일행은 모용수를 보는 순간 그가 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구양휘의 태도로 보아 이 음식을 시켜 준 사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시켜 놓았던 간에….”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음식에 손을 댄 것은 광도였다. 그의 손에 들린 젓가락은 벌써 요리를 집어가고 있었다.
“상관할 바가 뭐 있어? 일단 먹고 보는거야. 쩝… 쩝….”
“광도 말이 맞다. 모두들 마음 놓고 먹어.”
구양휘 역시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체구는 다른 사람에 비해 거의 배다. 그런 그들이 소면 한 그릇씩으로 점심을 해결했으니 걸신이 들린 듯 음식을 먹어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 너무들 하시네. 천의형 빨리 드시오. 너희도 빨리 먹어. 자칫하면 한 점도 얻어 먹기 힘들어.”
팽악은 구양휘와 광도가 먹는 모습을 보며 다른 일행을 재촉했다. 그의 말대로 잠시 한 눈을 팔면 한 젓가락 먹기도 힘들 판이다. 팽악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담천의를 비롯해 세 명도 얼른 젓가락을 들었다.
일행에 제일 늦게 합류한 혜청도 이들과 어울린지 벌써 닷새째다. 구양휘와 광도의 식성이 어떠한지 이미 수없이 당해본 터다.
“쩝…!”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세 접시의 전채요리가 한두 젓가락 남은 상태다. 구양휘와 광도는 아쉬운 듯 젓가락을 놓지 않은 채 남궁산산을 바라 보았다. 아직 산산은 젓가락조차 들지 못했다. 면사 안에서 쏘아지는 그녀의 눈길을 모를 구양휘와 광도가 아니다.
“너무 했나…? 쩝… 너 먹어.”
구양휘가 멋쩍은 듯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으며 시선을 다른데로 돌렸다.
“세상에 도저히 못말릴 사람들이야… 다 먹고 난 찌꺼기나 먹으라고 하는 거예요!”
말꼬리가 올라간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해도 너무했다. 일곱 사내는 슬그머니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자기 앞에 놓인 접시는 괜히 놓아 두었나요? 좀 덜어먹으면 누가 때려요!”
“때리긴… 음식 덜 시간이면 두 사람이 다 먹어 버리니 그게 문제지.”
팽악이 무안한 듯 기껏하는 변명이다. 변명치고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쩌랴. 아마 이들을 보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구양휘 일행이 기이하게 생각될 것이다. 그들은 어디가나 대접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집안도 한 성을 사고도 남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가문의 후손들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유희였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스스럼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형제와 같은 정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미 담천의와 갈인규, 혜청이 그들과 같이 호형호제하며 어울리게 된 것도 사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이런 허물없는 행동 때문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더구나 보이건 보이지 않건 주위의 이목을 애써 무시하는 그들은 장안루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느낌이 거북한 묘한 긴장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곧 바로 이미 두 명의 점소이가 양손 가득 들고 음식을 날라 왔다. 나온 요리는 장안지방의 명물로 꼽히는 우양육(牛羊肉), 진진피자(秦鎭皮子), 호로두(葫蘆頭)다. 더구나 곁들여 나온 술은 붉으레한 색깔과 향기로 이름 난 여아홍(女兒紅)이다.
“어… 이거 대단한데….”
색깔뿐 아니라 향기를 피어 올리는 음식을 본 구양휘와 광도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미 구양휘의 손과 젓가락은 김을 모락모락 피어 올리고 있는 우양육(牛羊肉)을 향하고 있다. 그에 따라 광도를 비롯한 일행은 순식간에 음식으로 집중되었다.
“구양오라버니…!”
아마 남궁산산의 뾰쪽한 부름이 아니었다면 차려진 음식도 순식간에 사라졌을 터였다. 구양휘는 고기를 잘라내다 말고 그녀의 목소리에 과장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그래… 네가 먹을 만치 먼저 가져가렴. 흠… 흠…”
“아주 눈물나도록 고맙군요.”
그녀는 말과 함께 앞에 놓인 접시에 음식을 덜어 담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 역시 허기져 있었다. 그나마 덜어 놓지 못하면 그것마저도 못 얻어먹을 판이었다.
남궁산산이 음식을 모두 덜어낸 것 같자 나머지 일행은 모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구양휘와 모용수의 눈이 마주치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것을 놓칠 일행들이 아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구양휘의 의미심장한 말에 모용수는 고개를 끄떡였다. 모용수 역시 음식을 씹으며 대답을 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소.”
모용수가 눈짓으로 가르킨 곳에는 기이한 두 사람이 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다. 오십대 초반의 도사복장을 한 장년인과 삼십대 초반의 흑의 무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도사복장에 약간 찌그러진 도관(道冠)까지 쓰고 있고, 피부에 주름살 하나 없는 청수한 모습의 도인(道人)이었다.
탁자 위에는 빨간색의 바탕에 '신복(神卜)'이란 하얀색 글씨가 새겨진 삼각소기(少旗)가 놓여 있었다.
“통천신복(通天神卜) 구거사(具居士)…?”
팽악이 나직히 뇌까리자 모용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무림에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인물인데 이곳에 나타났군. 확실히 일이 커지겠군.”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도 아닌 애매한 말과 함께 모용수의 입가엔 기이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만박거사(萬博居士)라 불리기도 하는 통천신복 구효기가 장안의 장안루에 나타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더구나 무림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시점에 그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공교로왔다.
여하간 그가 모습을 보였을 때 그냥 내버려 둘 무림인은 거의 없었다. 그는 무림인이 아니면 점을 봐주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점을 보는 첫 번째 원칙이었다.
무림인도 사람이다. 더구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칼부림 속에 사는 것이 무림인이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자신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초연할 사람은 없다. 그것이 맞던 틀리던 간에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고자 하는게 인간의 습성(習性)이다.
구효기의 뒤쪽 탁자에 앉아 있던 부유한 상인처럼 보이는 사십대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세상 걱정이 없는 태평하게 보이는 인물이고, 누구하고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넉넉한 인심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외모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외모는 사실 그 사람의 본성(本性)을 오해하기 쉽게 만드는 결정적인 도구다.
장안루의 분위기는 기이했다. 장안루 안에 있는 식객들은 먹고 마시며 떠들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묘하게 흐르는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도 와 닿았다. 군중 속에서 자신은 나타내지 않으면서 좌중의 인물들을 살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통천신복의 앞으로 가는 중년인의 움직임은 모든 인물들의 주시를 받을만했다.
“안녕하시오? 당신이 하늘마저 탄복케 한다는 구거사(具居士)요?”
중년인의 목소리에는 타인으로 하여금 편한 느낌을 들게 했다. 또한 친근한 느낌을 갖게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얼굴에 한줄기 불안한 기색이 어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릇을 들어 국물까지 마셔버린 통천신복이 고개를 들어 앞에 나타난 인물을 바라 보았다.
“당신이 호면귀(好面鬼) 사량(嗣諒)인 것과 같소.”
호면귀 사량은 천하제일의 사기꾼이다. 저러한 외모에 남을 믿게 하는 목소리를 가진 자가 천하제일의 사기꾼인 호면귀라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그에게 걸려든 사람은 여지없이 빈털터리가 된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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