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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 ⓒ 이강훈
그는 인터뷰 약속을 할 당시부터 사진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의 ‘까다로움’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좀 서운했다. “이 부박한 세상에서 나 한 사람이라도 덜 그러고 싶어서”라고, 그는 카메라에 잡히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말했다. 재생용지를 고집하며 만드는 격월간지 <녹색평론>에 일체의 사진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의 원칙이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글로 그의 모습을 그려 내는 것은 내 몫이 된 셈이다.

김종철 교수는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편이고 마른 체형이다. 쉰 중반이 넘은 나이에 어울리게 곱슬머리에는 흰 머리가 더 많아,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식의 수식어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원래부터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이제는 메뉴를 읽으려면 안경을 약간 들어 올려야 했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좀 부루퉁해 보이는 인상이다.

물론 말을 해도 그리 상냥해 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유가 있으면 웃기도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척박하기만 한 시대에 일을 벌여 십 수 년간 한결같은 목소리로 <녹색평론>을 키워 왔으니 웃을 일이 있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그 힘이 주는 신뢰감 때문일까, 다감한 어투는 아니지만 그의 말에서는 정성이 느껴진다.

“대학이 사회보다 한걸음 앞서 황폐해져…”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재건에 이바지’하기 위해 발간한다는 <녹색평론>의 사무실은 대구에 있다. 발행인인 김 교수는 얼마 전부터 서울로 옮겨와 살고 있다. 24년간 영문학을 가르치던 대학은 그만두었다. 그 이유를 ‘재미가 없어서’라는 약간은 상투적인 말로 시작했는데 정말 그는 오래 전부터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녹색평론>
<녹색평론> ⓒ 이강훈
“대학이 사회보다 한걸음 앞서서 황폐해지고 있지요. 인문주의가 죽었다는 말은 그전부터 했지만 대학에 있지 않으면 실감 못합니다. 대학이 취직을 위한 전 단계라 해도, 명색이 학교인데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된 데는 아니잖아요. 전에는 대학이 약자들에 대한 관심도 보이고 했지요. 자기를 좀 들여다보면서 사는 그런 합법적인 공간으로서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던 곳이 대학인데….”

강의시간에 <돌베개>의 장준하를 얘기했더니 학생들이 멍한 표정을 짓더란다. 장준하를 아는 학생이 100명 중에 딱 한 명.
“사람이 역사적인 존재인데 조상이 누군지, 뿌리가 뭔지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고향이나 우리 것에 저절로, 교육받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사랑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유신교육이 망쳤어요. 그 교육 탓에 역사에 대한 감각, 뿌리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 버린 거지요. 교양이라는 것도 급격하게 소멸되었죠. 대학에서 교양인을 만든다는 말을 했지만 지금은 전문가를 키운다는 말로 가버렸잖아요. 교양은 돈이 안 되니까.”

그는 사회건 대학이건 할 것 없이 소비풍조가 만연해 있고, 이는 그 어떤 정치적 독재보다 무섭다고 했다. 그것으로 우리의 정신은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누구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폭력의 전횡이 인간의 창발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죽여 버렸어요. ‘인간답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그런 경향이 없어졌습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인문주의 정신을 가르치기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자기 일은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더불어 그는 변함없이 ‘편치 않은 솔직함’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독려할 것이다. 그는 현대 과학문명의 발전이란 게 역시 인간다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줄기세포 발견은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인권문제이기도 합니다. 환경윤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한스 요나스는 <책임의 윤리학>에서 인간에게는 ‘모를 권리’도 있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인간이 더욱 존엄해질 수 있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어떻게 갈지 예상한 선각자인 그는 현대의 고삐 풀린 기술의 향방을 예견한 거지요.”

그의 얘기는 어느덧 지율 스님으로 옮아갔다.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스님에게 그는 40일이 넘도록 도저히 찾아갈 수가 없었다. “차마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저 양반 마음이 저토록 처절한데…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아서.” 그러나 그는 결국 열흘 동안 스님 곁을 지켰다.

“이기심으로 황폐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보여 주는 보배 같은 분이지요. 스님은 또한 최고의 여성주의 운동방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생태주의는 인문주의를 강화

김 교수는 여성주의 운동은 책이나 문화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더 많은 관심이 지율 스님에게 모아지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눈물겨운 싸움입니다. 순수한 영혼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데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보려는 감각이 없어요.”

ⓒ 이강훈
김 교수는 포클레인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집 근처에서 벌어진 공사를 피해서 이사를 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다. 체코 대통령 하벨은 어릴 적 동네 공장 굴뚝의 연기를 보면서 불길한 느낌에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의 감수성이 ‘너무’ 예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자각, 그 감수성을 일찍부터 터득하게 해주는 것을 생태주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주의 교육은 인문주의 교육을 강화시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두 자연주의자가 되자는 얘기가 아니라 인문주의 교양과 인문적 상상력을 갖춘 시민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들리는 수준까지 확산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생태교육을 해야 한다지만 말로 되는 게 아니지요. 감수성이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키워지지 않아요. 자연을 경험해 봐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해 봐야 사랑할 수 있다’는 그 말을 되뇌는데 그의 등 뒤로 햇살이 번쩍거리며 내 눈을 때렸다. 어릴 적 저녁 들판에서 바라보았던 노을빛이 떠올랐다. 도시 빌딩 유리벽에 부딪힌 무심한 햇빛 속에서… . 우리가 뒹굴던 자연은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큰 힘이라는 사실을 그가 일깨워 준다.

문학 전공자인 그가 처음 환경잡지처럼 보이는 <녹색평론>을 시작했을 때 밝힌 바 있다. 다만 ‘또 다른 형태의 인문적인 노력’이라고. 그의 지난한 노력에 요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응답해 오는지 물었다.

“지금 대부분의 독자는 주부, 농민, 교사, 실업자들이지요. 원래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 위주의 잡지로 만들려고 했지요. 그래서 평론이라고 했는데 지식인들이 안 봐요. 관심이 없는가 봐요. 무슨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두들 환경문제도 뻔하다 생각하는데, 그러면 왜 안 풀리고 있나요? 후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게 지식인들의 몫이 아니고 누구의 일입니까?”

그는 자주 강연하러 다닌다. “시민단체 사람들이 같이 얘기하자고 하니까요. 외로운 사람들, 약자들이지요. 그러나 우리 동지들 많아요. 모두 친구들이지요. 운동이란 거창한 이름 붙일 것 없이 광주, 부산, 대구 여러 지역에서 나날이 빈곤해지고 황폐해지고 공동화하는 지역사회와 지역문화를 조금이나마 인간적으로 만들겠다고 헌신하는 이들이지요. 준비되어 있는 이들과 얘기하는 일은 즐겁지요. 그동안 쇠귀에 경 읽는 기분이었는데.” 2003년 노벨 평화상은 환경운동가가 받았다. 인권과 평화, 생태가 어떤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큰 징표일 것이다.

ⓒ 이강훈
“결국 쓰레기더미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

“인권이란 말을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답게 자유롭게 근엄하게 살 권리를 말하는데, 그렇게 살려면 인간끼리의 평화가 이뤄져야 하고, 또 인간의 생존에 바탕을 둔 생태적인 조건이 건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게 이런 문제와 경제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삶의 총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뭐든지 전문화하려고 하니…. 경제를 환경과 분리해서 보는 한, 환경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참 잠이 안 오지요. 후손들이 어떻게 살 건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싸움질이라니. 내가 볼 때 이 모두 헛싸움질이에요. 본질적인 싸움은 이게 아닌데. 사는 방식을 청산하고 다른 식으로 살 일을 궁리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얘기는 도무지 밝은 기조를 띠지 못하고 내내 심각하기만 했다. 누가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누가 우리의 근심을 덜어줄 수 있을까. 그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방법은 “한 인간으로 정서적 온전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

100여 년 전 인디언 추장 시애틀은 예언했다.
“너희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결국 그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힌 채 죽어갈 것이다.”

그래도 녹색의 사유를 우리 삶 속에 끌어들이고 좀더 소박한 마음으로 모여 산다면, 이 불경의 시대를 자각하기만 해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닐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겨울이 서성거리고 있는 거리에 그가 있었다. 그는 영원한 문학적 정신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실천적 인문학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1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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