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한 날 목욕탕에 가다

연초 아이들과 같이 지낼 때는 아래채 온돌방을 썼는데, 단열이 되지 않아서 방바닥은 뜨거웠지만 코끝에는 찬기가 돌았다. 거기다가 벽지나 장판, 창틀 틈새로 새어나온 매운 연기로 눈이 몹시 따가웠다. 어제 딸아이마저 돌아간 뒤 다시 거처를 안채로 옮겼다.

오늘은 24절기로 소한 날이다. 그 이름값을 하는지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집안이 썰렁했다. 온 집을 비닐로 덮다시피 둘러쌌지만 워낙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 제대로 단열이 되지 않아서 몹시 추웠다. 실내에서도 오리털 조끼까지 입은 채 지내고 있다.

창작을 흔히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고 한다.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글이 잘 쓰이지 않을 때의 그 스트레스는 엄청 심하다. 요즘 나는 새 작품을 시작도 못한 채, 그런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으스스 춥기도 하고 괜히 짜증도 난다. 이럴 때는 목욕이 가장 좋다. 그런데 안흥 장터 목욕탕(복지회관)은 장날만 문을 열기에 고개 너머 코레스코 대중탕에 가려면 아무래도 아내와 같이 가야 한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의사를 타진하자 차창에 얼음이나 녹은 뒤에 가자고 한다. 면허증도 없고 핸들도 만질 수 없는 처지라 이럴 때는 늘 아내의 의사를 따를 수밖에 없다. 늦은 아침밥을 먹은 다음, 한껏 늑장을 부리면서 목욕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겨울 햇살이 솜털처럼 따사하게 살갗에 닿았다. 날씨가 추울수록 햇살은 더 좋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은 채 전재를 오르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정말 겨울 하늘이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매화산 전재 고개를 넘자 여태 그늘로 빙판 길이었다. 다행히 모래를 뿌려놓아서 차가 미끄러지지는 않았다.

▲ 지난해 봄, 매화산 전재 고개
ⓒ 박도
아내랑 목욕을 같이 다니면 늘 목욕시간의 차이로 기다리는 지루함이 있다. 아내가 오늘은 느긋하게 하겠다면서 두 시간 뒤에 주차장에서 보자고 하면서 먼저 여탕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어 남탕으로 갔다.

갑자기 일본 아오모리현의 스카유 혼욕탕에 갔을 때가 떠올라 혼자 싱긋 웃었다. 사람도 뜸한 이 강원 산골 목욕탕에 그런 곳이 한 곳쯤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문화란 생각하기 나름이다.

관련
기사
남녀 혼욕탕인 스카유 온천장에 들어가다

이곳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일하는 분들이 이제는 눈에 익었는지 아는 체 인사를 한다. 이곳 대중탕은 시설도 괜찮고 값도 서울보다 싸다(3500원, 안흥 장터 복지회관은 2000원).

하지만 늘 손님이 없고 물이 아주 깨끗해서 좋다(땅속 깊은 지하수라고 함). 탕 안에는 인삼탕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행여 이 좋은 대중탕이 적자로 문을 닫을까 염려스럽다.

어르신, 등을 밀어드릴까요

오늘은 두어 젊은이가 탕 안에서 몸을 닦고 있었다. 나는 늘 하는 대로 샤워를 하고 인삼탕에서 온탕으로 옮겨가며 몸을 담그자 천국이 여긴가 싶었다.

다시 사우나실로 가서 땀을 빼고 나온 뒤 세면장 거울 앞에서 때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활짝 웃으면서 다가와서는 “어르신 등을 밀어드릴까요?” 한다.

얼마 만에 들어본 말인가. 그랬다. 20~30년 전에는 목욕탕에 가면 서로 등을 밀어주는 일이 흔했다. 목욕탕에 들어간 뒤 탐색 끝에 서로 등 밀어주기 제의를 하면 거의 대부분 응해 주었다. 그러던 풍속도가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마도 탕 안에 때를 밀어주는 직종이 생긴 뒤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럽시다. 나도 밀어드릴게”라고 대답하자, “아니에요. 저는 이미 다 닦은 걸요” 한다. 그러고는 나에게로 와서 때 미는 수건을 건네받고는 내 등을 구석구석 샅샅이 닦아주었다. 목욕은 자주 했지만 때 미는 수건으로 샅샅이 등을 밀기는 지난해 6월 중국 연길 연변대학 앞 대중목욕탕에서 닦은 뒤 처음이었다.

등을 다 밀고 난 그 젊은이는 다시 비누칠까지 해 주고는 물뿌리개로 깨끗이 닦아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온몸 구석구석을 시원케 닦았다. 다시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푹 담근 뒤 샤워를 하고 탈의실로 나가자 그 젊은이가 옷을 다 입은 뒤 스킨을 바르고 있었다.

마침 무인 음료수 판매기가 있어서 뭘 마시겠느냐고 하자, 그가 얼른 동전을 꺼내고는 “어르신 뭘 드시겠어요?”라고 한다. 나는 그일 만은 양보치 않자, 그는 "어르신 드는 걸 같이 들겠다"고 했다.

캔 커피 두 개를 산 뒤 둘이서 나눠 마셨다.

“이따금 아버님 같은 어르신을 만나면 등을 밀어드려요.”
“아버님 춘추가 어떻게 되시오?”
“살아계시면 올해 일흔 넷이에요.”
“언제 돌아가셨어요?”
“벌써 10년 됐습니다.”

“어디 사세요?”
“소초면 구룡사 입구인 교항2리에 살아요.”
“성씨는?”
“신아무개(44)예요.”
"오늘 무척 고마웠어요."
"뭘요."

▲ 우천면과 안흥면의 경계인 전재마루
ⓒ 박도
나는 그를 30대 초반으로 봤는데 40대였다. 밖에 나가야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판이라 그를 보내고 뜨끈뜨끈한 탈의실 의자에서 가지고 온 책을 펴들었다.

아내와 약속시간 주차장에 가자 그제까지 나오지 않았다. 10여분 더 기다리자 그제야 아내가 나왔다. 아내도 뜨거운 물에 그 새 쌓인 피로를 깨끔히 풀었는지 행복한 표정이었다. 차는 곧 매화산 전재 고개를 넘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근 뒤끝 탓인지라 오늘 날씨가 춥기는커녕 아주 시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