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정월 엿새날, 민주노동당이 천지신명께 간절히 비옵나이다.
13층 아파트에서 세 아이를 던지고 함께 죽은 인천의 주부 귀신, 수천만원대 카드빚을 갚으려 강도짓을 하다 절망하여 자살한 부산의 총각귀신, 이 억울한 원혼들이 구천을 떠돌지 않도록 비옵나이다. 파산하면 호적에 빨간 줄이 그이고 자식 장래에 불이익이 간다고 얼러대는 채권자와 이들을 비호하는 학자귀신, 관료 귀신들이 이 땅에서 행세하지 못하게 비옵나이다."
6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주노동당 중앙당사 앞에서는 9인승 승합차를 놓고 아주 특별한 고사가 열렸다. 고사상에는 돼지머리와 시루떡, 신용회복 관련 책자가 놓였다. 김혜경 대표와 김창현 사무총장 등 최고위원들과 심상정 의원,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이선근 본부장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돼지 입과 귀에 만원권 지폐를 꽂았다. 신용카드를 꽂는 당직자도 있었다.
이선근 본부장은 "카드귀신, 사채귀신, 고금리귀신과 이들 금융귀신 비호 경제관료가 그 진로를 가로막고자 하더라도 이 차가 무탈하게 운행될 수 있기를 천지신명께 비옵나이다"라고 제문을 읽은 뒤 이를 활활 태웠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승합차에는 민주노동당 로고와 함께 '빚더미 가계 살리기 119'라는 글귀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신용회복 119' 차량은 그동안 길거리 상담에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해온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자문 변호사들 15명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9월부터 채무조정법 안내를 위한 길거리 상담을 진행해왔다. 이 차량은 당 대표 차, 미니버스에 이어 민주노동당이 보유한 세 번째 차량이기도 하다.
이날의 고사는 '2005 가계부채 SOS운동' 발대식을 겸한 것이었다. 발대식에 참석한 김혜경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모두 흰 국화꽃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전날 밤 부산에서 카드빚 문제로 자살한 70대 노모와 40대 아들에 대한 추모의 뜻이었다.
김 대표는 "정부가 희망적인 경제지표를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비판하며 "(채무자들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차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만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상정 의원은 "모든 정당과 전문가들이 카드를 경기부양책에 이용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데도 정부가 신용불량자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직접 상담을 맡고 있는 김인수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상임위원은 "가난한 사람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며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 강조하는 정부가 서민들을 사람으로 보는 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버스 기증에 참여한 오명근 변호사는 "아직은 버스 1대지만 군단위로 버스를 두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고, 권정순 변호사는 "길거리 상담을 하면서 변호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SOS운동은 길거리상담과 공개강좌, 회생신청 서류작성법 안내 등 단계별 채무자 구제활동과 소비자 파산제도 개선 등 제도개선운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올 한해 사업기조를 '빈곤과의 전쟁'으로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