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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옥살이', 진실인가 거짓인가

"구청은 허위 공문서를 떼주고 검찰은 공소장을 오기해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이 누명을 벗는 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한 시민이 공공기관과 사법기관의 잇단 실수로 억울한 옥살이에다 가정마저 파탄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하소연이 받아들여져 법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후 '재심'을 벌이고 있다. 올해 마흔 여섯살의 이 아무개(대전시 서구 월평동)씨.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던 그는 현재 이혼과 빚더미에 미래마저 암담한 상황이다.

이씨는 지난 2000년 9월 1심에서 사기죄, 2심에서 사기미수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이씨는 징역형까지 살자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이씨는 자신의 옥살이가 관할 구청의 엉터리 공문서와 검찰의 오기된 공소장, 그리고 소송상대자의 위증과 위증교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뒤늦게 소송상대자 증인들의 위증 사실이 밝혀지자 법원은 재심을 벌이고 있고, 검찰은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재수사를 통해 일부 사건에 대해 종전과 똑같은 수사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재수사 결론을 받아쥔 이씨는 목숨을 끊어서라도 자신의 결백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는 이씨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오마이뉴스>가 5년 간의 수사기록과 법정공방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건 개요]

▲ 5000만원 채권 채무 관계를 적시한 '공정증서 854호' 표지(좌측)와 그 내용
ⓒ 심규상
▲ 전세 보증금과 컴퓨터 비품 외 권리금 일체 없음을 명시한 '인증서 683호' 표지와 그 내용
ⓒ 심규상
1997년 2월 20일. 이씨는 운영하던 컴퓨터 학원(대전시 중구 선화2동 소재)을 서아무개씨에게 7500만원(컴퓨터 56대 포함)에 넘기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이씨는 나머지 잔금 7000만원에 대해서는 학원매도계약서를 작성해 이날 법무법인의 인증을 받았다.(학원매도계약서에는 금액은 명시돼 있지 않음)

이씨는 이와는 별도로 자신이 학원 3층을 증축하면서 투자한 1200만원과 학원수강생 100명에 대한 권리금 1800만원, 서씨에게 빌려준 학원개조비용 2000만원 등 5000만원에 대해서는 같은 날 같은 법무법인에서 채권채무 관계를 분명히 하는 공정증서를 작성했다. 즉 '인증서'는 학원매매대금(7000만원)이고, '공정증서' 5000만원은 권리금과 대여금에 관한 차용증으로 별개의 것이라는 것.

이씨는 이후 서씨가 학원매매 잔금 7000만원만을 변제하고 나머지 5000만원을 갚지 않자 공정증서를 근거로 1999년 4월 서씨 재산을 압류했다.

반면 학원을 매수한 서씨는 학원매매계약 인증서와 채권채무계약서가 별개가 아닌 같은 건이라는 주장이다. 학원매매 잔금 7000만원 중 이날 2000만원을 주고 나머지 잔금 5000만원에 대해 '공정증서'를 작성했고, 이어 더이상의 '권리금 없음'을 증명하는 학원매매계약서를 '인증'했다는 것.

서씨는 같은해 6월까지 나머지 잔금을 모두 변제했는데도 공정증서를 회수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돈을 또 받으려 하고 있다며 이씨를 사기미수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즉 이씨에게 별도로 학원개조비용을 빌리거나 수강생 권리금을 주기로 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다툼에서 검찰과 법원은 서씨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보고 이씨에게 '사기미수' 혐의를 적용, 징역 8개월에 처했다.

[쟁점 1]
3층 건물증축 사실 "없다"(허락 받았다)에서 "몰랐다"(그런 일 없다)로


과연 공증된 5000만원의 내역은 무엇일까. 서씨의 주장처럼 학원매매대금일까. 아니면 이씨의 주장처럼 학원증축비(1200만원)를 포함한 별도의 채권일까?

이와 관련 학원을 인수받은 서씨는 이씨가 '학원 3층을 증축한 사실이 없는데도 학원을 증축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관할 구청인 중구청으로부터 이를 입증하는 서류(건축물관리대장)를 떼서 제출했다(1999년 9월). 서씨는 또 건물주인 A씨로부터 '증축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확보해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씨가 이보다 5개월 전인 1999년 4월 발급 받은 '건축물관리대장'에는 증축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어느 쪽 서류가 잘못된 것일까.

논란이 일자 관할 구청은 '컴퓨터 오류'로 증축사실이 누락된 잘못된 공문서가 발급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씨에게 발급한 쟁송용 문서에 증축사실이 누락된 사실과 다른 건축물대장이 발급됐다는 얘기다.

건축사실이 확인되자 건물주인 A씨는 다시 "건축물 관리대장을 보기 전까지는 증축사실을 몰랐다",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적 없다"고 말을 바꿨다. 증축업자 B씨는 당초 "증축공사 당시 건물주에게 공사허락을 받았다"고 증언했다가 돌연 "허락 받은 사실이 없다"고 번복했다.

그럼에도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뒤바뀐 증언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공정증서 속 5000만원 속에 학원증축비(1200만원)가 포함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이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

변조일까 실수일까 학원 3층 증축사실이 누락된 건축물대장(좌)과 정상발급된 건축물대장(우). 쟁송용 서류만이 허위발급된 이유를 놓고 여전히 의문이 일고 있다.
ⓒ 심규상

이씨는 "유독 서씨가 발급받은 쟁송용 문서에만 증축사실이 누락돼 있는 것도 납득할 수 없지만, 경찰과 검찰이 초동 수사 당시 증축여부에 대한 현장 확인조차 하지 않고 법원이 증축사실을 인정하고도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4년 3월. 대법원은 건물주 A씨와 당시 증축업자 B씨가 처음부터 증축 사실을 알고 있었고 건물주 허락하에 증축이 이루어졌음이 인정된다며 '위증죄'를 확정했다. 건물주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증축업자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형이 내려졌다.

▲ 사건 주요 쟁점별 각 의견
ⓒ 심규상

[쟁점 2] 2000만원 받은 날짜 '20일'에서 '24일'로

이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두 사람이 학원매매대금 1차 중도금 2000만원을 주고받은 날짜가 공정증서를 작성한 20일인가 아니면 24일인 지 여부다. 공정증서 속에 담긴 5000만원의 성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

서씨는 공정증서는 학원매매계약 건으로 이를 작성한 20일 당일, 이씨에게 1차 중도금 2000만원을 지급했고 이미 건넨 계약금 500만원을 뺀 나머지 잔금인 5000만원짜리를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씨는 1차 중도금 2000만원을 처음 받은 날은 24일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공정증서는 학원매매대금이 아닌 별도의 권리금과 대여금에 대한 차용증서라고 강조했다. 실제 학원매매대금이라면 미지급대금을 7000만원으로 하지 않고 5000만원으로 공정증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수표 확인결과 1차 중도금을 주고받은 때는 24일로 밝혀졌다. 그러자 서씨는 다시 "공정증서를 작성한 20일 당시 며칠 뒤 1차 중도금 2000만원을 건네주기로 약속하고 나머지 5000만원에 대해서만 증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뒤바뀐 서씨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미지급대금이 7000만원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4일 뒤에 받을 것을 예상해 5000만원에 대해서만 차용증을 작성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했다.

반면 서씨는 지난 달 열린 재심법정에서 증언을 통해 "이씨가 먼저 공증을 하자고 해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응한 것이고 학원개조비용으로 2000만원을 빌린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쟁점 3]
뒤바뀐 공소기록, 인증서 인용 후 공정증서 오기


검찰은 1999년 이씨에게 사기혐의를 적용하면서 공소장을 통해 '제683호 공정증서'를 근거로 '이씨가 잔금 5000만원 등 매매대금 7500만원을 모두 받았고 별도로 권리금을 받기로 약정하거나 서씨에게 빌려준 돈(2000만원)이 없음에도 재산상 이득을 취하려 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적시한 제683호는 '공정증서'가 아닌 법적 효력이 없고 이씨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인증서'(학원매도계약서, 97년)다. 반면 제854호 공정증서(금전소비대차계약, 97년)에는 이씨가 서씨에게 5000만원의 채권관계가 있는 것으로 돼있다. 그런데도 대전지검은 '제683호' 인증서를 '공정증서'라고 오기해 마치 공정증서(제854호)에 권리금을 받지 않기로 약정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

검찰은 물론 지방법원과 대법원까지 오기된 공소기록을 그대로 적용해 이씨에게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실수로 공소기록이 잘못 기재된 것이나 사소한 것으로 사건의 판결에 영향을 줄만한 내용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한 법무법인사무소 관계자는 "공정증서와 인증서는 법률적 의미와 효력이 크게 다르다"며 "이를 서로 뒤바꾼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증서'와 '인증서', 어떻게 다른가

이씨 사건을 수사한 검찰과 이를 판결한 법원이 '공정증서'와 '인증서'를 놓고 사건기록에 공정증서를 명기하고도 그 내용과 번호는 '인증서'를 차용, 오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논란이 된 '금전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는 5000만원에 대한 채권-채무 관계를 명시해 작성한 것으로, 차후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별도의 재판 없이 강제집행할 수 있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이 사건과 관련 '854 공정증서'(97년 2월 20일 작성)는 이씨가 서씨에게 5000만원의 채권관계가 있음을 공증하는 서류다.

반면 같은 날 같은 법무법인에서 작성된 '학원매도계약 683호인증서'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개인 간 사실관계를 인증한 사서문서에 해당된다.

인증서에는 권리금 등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으나 이와 관련 이씨는 공정증서에 들어 있는 5000만원 속에 학원 증축비와 수강생 권리금 등이 이미 들어 있어 더이상의 권리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작성해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물론 대법원까지 주요 공소내용의 핵심인 '공정증서 854호'를 '공정증서 683호'로 인증서 번호와 인증서에 들어 있는 계약내용을 대입했다.

[쟁점 4] 위증교사 있었나 없었나

"학원매수자와 건물주가 수 차례 찾아와 돈은 필요한대로 줄테니 유리하게 진술해달라고 하고 세 차례 걸쳐 50만원을 직접 건넸습니다. 또 건물주는 시내 주유소 두 개를 운영한다며 기름도 넣으라고 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확실하지 않은 허위증언을 해 자수합니다."

▲ '공정증서 854호'를 공정증서 제683호'로 오기하고 인증서 내용을 기재한 공소장
ⓒ 심규상
증축업자 B씨가 지난해 1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담당 검사에게 자수하고 지검 휴게실에서 작성한 '사실확인서' 내용이다. 한마디로 이씨의 소송상대자인 서씨와 건물주로부터 '위증을 교사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에 앞서 법원은 증축업자인 B씨와 건물주가 건물증축 당시부터 증축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건축주 허락하에 증축이 이루어졌음이 인정된다며 위증죄를 인정했다.

B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씨가 아파트 가압류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해 허위 확인서를 써준 것이라며 또다시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건축주에 대한 위증교사 여부에 대한 재기수사 결론을 통해 "사실확인서는 비교적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인정되나 작성자가 진술을 번복해 증거자료로 삼을 수 없고, 돈을 건넨 것도 인정되나 반드시 위증교사에 대한 대가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와관련 서씨는 지난 달 16일 열린 재심법정에 출석해 “(증축업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거나 돈을 건넨 사실이 없고 따로 만난 일도 없다”고 말했다.

서 씨의 변호인 측은 “여러 정황상 서씨가 위증교사를 하거나 건물주와 증축업자가 거짓말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인증서에 시설비 권리금 등을 일체 인정하지 않기로 약정돼 있는 등으로 볼때 이 사건의 핵심인 공정증서상 5000만원은 학원매매잔금이 분명하고 이는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쟁점 5]
거짓말 탐지기 결과가 다른 증거자료보다 앞설까


이처럼 이씨의 주장이 일관된 반면 소송상대자 측 주장과 증언이 수시로 오락가락 하는데도 이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와 관련 이씨 사건을 담당했던 한 변호사는 "검찰이 거짓말탐지기 결과를 너무 맹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서씨는 1999년 말 검찰 거짓말 탐지기실에서 2000만원의 채권채무 여부에 대한 검사를 받았다.

이 검사에서 이씨가 2000만원을 '빌려줬다'는 답변은 거짓 판정이 나온 반면 서씨는 '빌린 적이 없다'는 답변은 진실 판정을 받았다. 다만 검사자는 "이씨가 수술 직후여서 신체적 상태가 검사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검찰은 최근 서씨와 건물주의 위증교사 고소 건과 건축물대장 변조 고소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리고 현재 서씨에 대한 위증 여부를 수사중에 있다. 다른 한편 대전지방법원 형사 제2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원심 사건에 대한 재심을 벌이고 있다.

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결과와 다른 증거 자료 중 어느 쪽에 신뢰의 눈길을 보낼까. 다음 재심 공판(4차)은 이달 20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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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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