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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방학 충효교실 개강’이라는 현수막 뒤편 끝자락에 희미하게 기와집을 한 진잠 향교가 보인다.
ⓒ 최장문
겨울방학 충효교실 개강

며칠 전부터 아침에 출근할 때면 눈에 들어오는 현수막이 있었다. “한문, 충효, 예절, 서예 무료지도, - 진잠 향교 -”다. 평소 한문과 지역문화에 관심이 있던 역사 교사이기에 겨울방학을 하면 꼭 한 번 가보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고 오늘 드디어 그곳에 다녀왔다.

대전에서 논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마동-가수원동-관저동을 지난다. 이때 관저동 굴다리 길을 통과하여 롯데마트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진잠향교에 도달한다.

▲ 홍살문(紅―門 : 지난날, 궁전이나 관아 또는 능원 따위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 홍문이라고도 함) 안에 진잠향교가 꽉 들어차 있다. 유난히 눈에 띠는 것은 홍문과 솟을 대문에 그려진 태극마크.
ⓒ 최장문
홍살문

홍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는 향교, 왼쪽에는 양영루(養英樓)라는 건물이 있다. 그 사이에 마당이 있는데 자전거가 꽤 많이 줄지어 있었다. 아마도 한문과 붓글씨를 배우러 아침 일찍 온 학생들 자전거로 생각되었다. 순간 향교안에서 어떤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나 궁금해졌다.

관리사무소에 양해를 구하고 2층 교실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한문 통독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가슴이 뛰었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가니 40여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훈장 어른께 열심히 한문을 배우고 있었다. 심훈의 <상록수>가 생각났다.

▲ 40여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줄지어 앉아 사자소학(四字小學)을 통독하고 있다.
ⓒ 최장문
40여 명의 초등학교 학생들

관리소에 들어가니 시골학교 교장 선생님 같기도 하고, 이장님 같기도 한 분이 계셨다. 전교(典校 - 향교에서 일반 학교의 교장선생님 같은 역할을 하시는 분)인 조하청(70) 선생님이셨다. 충효교실에 대하여 여쭈어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충효교실은 진잠향교가 방학 때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문, 서예, 예절 교육으로 1982년부터 시작하였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자 이후에는 충청도로 확산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향교에서 방학이 되면 충효 교실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982년 당시에는 진잠중·유성중학교 학생들을 초청해서 교육하였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공부했다. 열심히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기는 많이 와도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령층도 낮아져 초등학생들이 많이 온다.”고 말씀하셨다.

▲ 세 선생님께서 오래된 학적부(출석부)를 펼쳐보이며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충효교실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학적부에 5431이라는 이름 연번에서 충효교실을 거쳐간 학생들이 5000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최장문
세 선생님

설명은 향교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교육기관으로서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유학사상을 가르치던 학교이다. 동시에 유학의 시조인 공자와 선현들을 제사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진잠향교는 태종 5년(1405)에 창건되어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향교의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기숙사는 동재와 서재라 부르며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마주보고 있다. 신분의 차이, 학문의 실력에 따라 높은 쪽이 동재에 기숙하였다. 정원은 규모가 큰 고을의 향교는 31명, 작은 고을 향교는 17명 정도였다. 진잠향교는 후자에 속한다.

향교에는 훈도가 1명씩 있었다. 훈도는 국가에서 임명한 교사로 향교의 교육을 담당한다. 그리고 충청도엔 8명의 교수가 있어 각 향교를 순회하며 교육을 도왔다. 교수는 훈도보다 직급이 높다.”

▲ 정면에 보이는 것이 현재 학교의 교실에 해당하는 명륜당이고, 그 좌우에 조금 보이는 것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이다. 동재와 서재에서 8명 정도의 학생들은 긴 겨울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어떤 이야기들을 하며 한방 생활을 하였을까? 또 명륜당에서 공부할 때 춥지는 않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우리학교의 괴짜 녀석들이 생각났다. 당시에도 괴짜녀석들이..?
ⓒ 최장문
명륜당

▲ 대성전 뒤편의 지붕이다. 지붕의 가파름과 기와의 반복됨이 만들어내는 상승감있는 일직선 줄무늬 속에서 긴장감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 및 선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2월과 8월에 제향을 올린다.
ⓒ 최장문
대성전 뒤편의 지붕

세 분으로부터 향교에 대한 친절한 안내 말씀을 듣고 1층으로 내려오다 보니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들려온다. 1층 전통무예관에서 들리는 기합소리였다. 이곳에서는 전통무예인 택견과 기천문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문무겸비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 왼쪽, 윤영철(43) 원장이 기천문의 한 동작을 시범보이고 있다. 오른 쪽은 전통무예관에서 어린이와 어른들이 몸을 푸는 모습.


대전에는 두 개의 향교가 있다. 동쪽의 회덕 향교와 서쪽의 진잠 향교이다. 이 향교를 거쳐 간 선현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많은 선현들이 분명히 이 두 교육기관을 통해서도 성균관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또는 지역에서 많은 의미 있는 일을 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전의 역사와 교육을 상징하는 향교에서 21세기를 짊어질 어린 싹들에게 충효 교육을 한다는 것이 왠지 새롭고, 즐거웠다. 역사는 흔히들 과거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진잠향교의 충효교실과 같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뿌듯했다.

진잠향교 언덕을 내려오며 작은 소망이 하나 꿈틀거렸다. 대전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그 의미를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해주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우리 고장에 대하여 애향심을 갖게 해주는 것!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사람들에 대하여 작은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교사의 아름다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중요 덕목이리라.

진잠향교 앞의 최근 공덕비
▲ 진잠향교 앞에 세워진 최근 공덕비이다. 공덕비의 위치도 그러려니와 그 앞의 <지하식 소화전>이라는 안내판도 진잠향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 최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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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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