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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기는 공교롭게도 망설임이 없이 담천의가 있는 구양휘 일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세 번째 탁자를 지났을 때 그의 완맥은 갑작스럽게 그곳에 앉아 있던 인물에 의해 제압되어 걸음을 멈춰야 했다.
“흐흐....구거사.... 노부들과 일행이 되는게 어떤가?”
구효기의 완맥을 제압하고 말을 한 인물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알록달록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도복(道服)을 입고 도관(道冠)을 쓰고 있는 세 인물 중 한명이었다. 이들은 복장과 행색이 특이하여 좌중의 사람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스스로는 여산삼선(廬山三仙)이라 칭하고 다니지만 무림에서는 여산삼괴(廬山三怪)라 불리우는 삼형제였다. 그들은 여산 근처에 사는 나무꾼의 자식들이었는데 어렸을 적 도인(道人)으로 추측되는 전대기인의 유학(遺學)을 얻어 무림에 두각을 나타낸 지 삼십여년이 지난 육순이 넘은 노괴(老怪)들이었다.
사실 여산(廬山)은 남북조시대에 남천사도(南天師道)를 성립시킨 육수정(陸修靜)이 은거했던 곳으로 남방 도교(道敎)의 본산이랄 수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 여산에는 많은 도인들이 찾아 들었고 아마 여산삼괴는 운이 좋게 누군가의 유학을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촌스런 행색과는 달리 법술(法術)과 환술(幻術)에 뛰어났고, 무공 역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여서 무림에서도 은근히 상대하기 꺼려하는 인물들이었다. 더구나 정도(正道)라 할 수는 없으나 그리 나무랄 만한 악행(惡行)을 행한 바도 없어 무림인들과도 그리 큰 충돌이 없었던 인물들이었다.
통천신복 구효기는 자신의 완맥을 잡고 있던 여산삼괴의 맏이인 기환풍(奇幻風) 막여균(莫予均)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당신까지도 상당히 위험한 장난을 벌이려 하는구려.”
이미 도영의 도(刀)는 기환풍 막여균이 구효기의 완맥을 잡는 순간과 동시에 그의 목줄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기환풍 역시 노련한 인물로 도영의 도에 대해서 애써 무시하는 듯 했다. 어차피 구효기의 완맥이 자신의 수중에 있는 한 도영은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일은 아니지. 그저 자네하고 같이 다니자는 것 뿐이네.”
말은 쉽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모를 사람은 없다. 조금 전의 대화로 보아 구효기는 오룡번을 가진 자를 알고 있다. 그와 일행이 된다는 것은 오룡번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잘못 생각한거요. 설사 노부가 당신들과 일행이 된다고 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을 가만 놔두겠소? 여기 있는 분들은 노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소.”
구효기의 지적은 옳았다. 구효기와 일행이 되면 오룡번을 차지할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자신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주목받는 자는 절대 보물을 차지할 수 없다.
“자네는 오룡번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능력이 모자라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왜 오룡번을 가진 자를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느냐는 말이다. 그 말은 능력이 모자란다면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다는 은근한 회유이기도 했다.
“노부는 오룡번과 인연이 없소. 노부는 오룡번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인간의 탐욕이란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기환풍 막여균은 재차 물었다.
“그럼 좋으이....자네는 아까 말한 그 두가지 보물...그것을 노리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하지만 그 두 가지 물건은 본래 임자가 있는 물건이고, 다른 사람이 차지해도 그리 쓸모가 있는 물건이 아니오.”
명백한 부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효기는 그 두 가지 물건 역시 가지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 보였다.
“그 두 가지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휴우.....당신은 당신들의 생명을 단축하고 있구려. 하지만 사람들이란 언제나 불나방 같아서 자신의 몸을 태우는 줄 모르고 불꽃의 화려함에 홀려 달려들곤 하오.”
구효기는 자꾸 구양휘 일행을 흘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또한 무슨 이유인지 자꾸 묻는 여산삼괴와 말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하나는 초혼령(招魂令)이오.”
그 말에 갑자기 여산삼괴의 셋째인 법환귀사(法幻歸士) 막여관(莫予寬)이 나직히 물었다.
“초혼령주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하지만 초혼령이 이곳에 있음은 분명하오.”
“자네 말은 항상 묘한 여지를 주면서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드는군. 그렇다면 또 하나는 무엇인가?”
셋째 막여관은 은근히 아까 구효기와 대화를 나누었던 강명이란 흑의무복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구효기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보물은 강명이라는 사내가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천변무영객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이 좋소. 아니 알려고 하지 마시오. 노부가 그것을 말하고 나면 당신들은 물론 이 장안루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 질 수 있소.”
통천신복 구효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겁낼 인물이 강명이라는 사내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는 한줄기 긴장감도 엿보였다. 사실 그럴수록 더욱 알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만 여산삼괴의 셋째는 의외로 고개를 끄떡였다.
“구거사의 말은 틀린 적이 없지. 노부들 뿐 아니라 이곳 전체의 생사가 달려 있다면 이쯤에서 궁금증을 덮어야겠군. 형님....!”
여산삼괴 중 가장 머리를 쓸 줄 안다는 셋째다. 그가 이렇듯 순순히 물러난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가 맏이인 기환풍 막여균을 부르자 그 역시 순순히 구효기의 완맥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목줄에 닿아있던 도영의 도 역시 사라졌다.
“젊은 사람의 도가 매우 매섭군.”
도영의 도가 결코 하수의 그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감탄이 섞인 목소리였다. 허나 정작 도영은 전혀 표정의 변화없이 구효기의 옆에 붙어 있었다. 구효기는 잠시 잡혔던 완맥을 어루만지다 셋째인 법환귀사 막여관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법환귀사께서는 특히 몸조심 하여야겠소. 보물을 탐하면 화를 당하는 법이오. 매미를 노리는 버마제비(사마귀)는 까치가 노리고 있는 줄 모르고, 그 까치를 노리던 장자(莊子)가 농부에 쫒기고 부끄러워 했다는 고사(古事)를 잊지 마시오.”
밤나무 밭에 갔다가 사람의 진성(眞性)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워 탄식했다는 장자의 고사를 말하고 있음이었다. 그 말은 보물을 탐내는 사람 뒤에 그를 노리는 자도 있으니 보물을 탐내지 말라는 말이었지만 법환귀사 막여관은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구효기 역시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본래 가려던 구양휘 일행에게 다가갔다. 구양휘 일행은 구효기를 지켜보다가 그가 자신들의 자리로 다가오자 다소 부담스러운 기색을 띠었다. 허나 정작 담천의는 바라고 있던 바였다. 그가 구양휘에게 자신을 부탁했다면 분명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빨리 온 것이다.
“이쪽이 노부에게 살 길을 열어 줄 것 같아 왔는데....앉아도 되겠소?”
그래도 통천신복은 무림의 대선배다. 더구나 본래 점을 치는 사람이니 그의 행보를 굳이 막을 바 없다. 더구나 구효기는 분명 자신들에게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용수가 얼른 일어나 자신의 옆 자리를 내 주었고, 나머지는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신복께서 어쩐 일로 이리로 오셨습니까?”
모용수는 예의가 바르다. 더구나 통천신복과는 이미 구면인 처지다.
“자네는 날이 갈수록 신수가 좋아지는 것 같구먼.”
구효기는 말과 함께 자신의 표기인 삼각소기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것은 이곳에서 점을 치겠다는 말과 같다.
“소생들을 곤란하게 만드시려고 작정을 하셨습니까? 모두들 우리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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