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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자료사진)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사퇴 파문이 청와대 수뇌부의 '동반 사표'와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로까지 이어지자, 일부 신문에서는 이번 인사 파문을 '이기준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후폭풍이 예상을 초월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기준 전 부총리와 김우식 비서실장의 관계는 같은 '화공학도'로서 공저만도 5권이 넘는 '40년 지기'다. 그래서 바늘과 실의 관계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 점에서 바늘은 떠내려갔는데 이번 인사 '태풍의 눈'에 해당한 김우식 실장은 쓰나미에도 휩쓸려가지 않는 '괴력'을 발휘한 셈이다.

사실 이번 동반 사표 제출자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선별 수리 여부와 관련, 최대 관심사는 김우식 실장의 사표에 대한 수리 여부였다. 김우식 실장은 개혁세력보다는 이른바 '합리적 보수세력'을 일정하게 대변하는 역할을 해와 김 실장의 경질은 실용주의 노선의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었다.

신속한 선별수리로 파문 확대 조기 차단

지난 9일 청와대 오찬에서 이뤄진 인사추천회의 의장인 김우식 실장과 위원 전원의 동반사표는 어느 정도 이심전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이지만, 특히 김 실장의 사의 표명은 전격적이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즉각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일단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하겠다"고 말해 청와대 안팎의 여론을 청취한 뒤에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노 대통령은 만 하루도 안되어 10일 아침 수석·보좌관 회의 말미에 주무수석인 정찬용 인사-박정규 민정수석의 사표 수리만 검토키로 하고 김 실장과 다른 수석들의 사표는 반려했다. 김 실장은 이에 앞서 수석·보좌관회의 전에 본인을 포함한 인사추천회의 멤버 6인의 사표를 취합해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었다.

이와 같은 '신속한 선별수리'는 김우식 실장에 대한 퇴진 압력으로 파문이 번지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응급처방'으로, 청와대가 어제 동반사표 소식을 전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기는 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부터가 어제 "논란과 물의가 빚어진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국민에게 공개 사과하면서도, 이번 인사 파문을 인사 추천보다는 인사 검증단계의 문제로 정리함으로써 각료 제청권자인 이해찬 총리와 인사추천회의 의장인 김 실장에 대한 인책론으로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병완 홍보수석도 어제 김우식 실장의 사의 표명을 전하면서 일부에서 제기한 김 실장의 '정실인사 의혹'에 대해서는 "정실인사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못박았다. 이 수석은 특히 "김우식 실장과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오래된 인연을 가지고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김 실장은 인사추천회의 의장으로서 사회만 보고 일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수석은 이기준 부총리 장남의 특례입학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당시에 김 실장이 연세대 화공과 학과장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 의혹이 있지만, 학과장이라는 자리가 입학사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대학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면서 "그 부분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김 실장이 인사 논란과 물의가 빚어진 '결과'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이지, 인사 추천과 관련해 직접 책임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10일 오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 실장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했다"면서 "그래서 참모들의 책임 묻기가 난감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했다... 참모들의 책임 묻기가 난감하다"

지난 7일 저녁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떠나고 있다. 이 부총리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결국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전원사퇴하는 후폭풍이 일었다.
지난 7일 저녁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떠나고 있다. 이 부총리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결국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전원사퇴하는 후폭풍이 일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정무적 책임에 김 실장은 해당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했다는 노 대통령의 말씀 속에 그 의미가 다 함축돼 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그 대신에 사람을 바꾸기보다는 제도개선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인사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을 강조하면서 "국무위원을 기준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받는 방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대통령께서 잘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해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국민의 눈길이 제도개선으로 돌려질지는 의문이다. 사실 청와대 안팎에서 이번 인사 파문의 사태 전개와 관련, 최대의 관심사는 김우식 실장의 거취였다. 왜냐하면 김 실장은 개혁세력보다는 이른바 '합리적 보수세력'을 일정하게 대변하는 역할을 해오면서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해와 김 실장의 경질은 실용주의 노선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관용과 화합'을 기치로 내걸어 합리적 보수세력과의 화해, 보수언론과의 지나친 긴장관계 해소 등을 시사해왔기 때문에, '김우식 카드'는 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악역'을 대신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김 실장은 연말에 재계 5단체장을 직접 면담해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이른바 조·중·동의 보수언론 사주들을 잇따라 만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해왔다.

노 대통령의 도덕적 결벽증과 실용주의 노선의 승리가 어우러진 인사

물론 이러한 행보가 김 실장 개인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노 대통령의 지시나 암묵적 용인, 혹은 적어도 김 실장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행보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따라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개혁세력을 자임하는 인사들은 이런 흐름을 되돌려놓기 위해서도 김 실장의 인책론을 강력하게 제기한 것 또한 사실이다. 노 대통령이 김 실장을 경질할 경우 또다른 실용주의자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의 기조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김 실장의 사표를 반려한 것은 뚜렷한 잘못이 없는 참모들을 희생양 삼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도덕적 결벽증이 있는 노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실용주의 노선의 승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인사 추천·검증·판단의 잘못이지 정책의 잘못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대로 올해는 '관용과 통합'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아 '합리적 보수주의'를 포용해 지지기반의 외연을 넓히면서 경제도약을 위한 실용주의 노선을 굳건하게 지향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는 이병완 수석이 총리가 후보의 도덕성보다는 대학 개혁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검증 부분에 충분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반성하고, 청와대 참모들도 이번 인사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한 것에 대해 반성한 것이 후임 교육부총리의 인선 기준이 바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은 데서도 감지된다.

결국 도덕성도 중시하겠지만 '대학은 곧 산업'이라는 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개혁을 우선하는 인선 기준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비록 '쓰나미'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겨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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