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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첫날, 시네마테크가 문을 열기도 전에 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위로 앙리 랑글루아의 사진이 지키고 있는 시네마테크 전경
회고전 첫날, 시네마테크가 문을 열기도 전에 관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위로 앙리 랑글루아의 사진이 지키고 있는 시네마테크 전경 ⓒ 박영신
비루한 가난의 수렁에서 몰락하는 가족과 죽은 아내를 뒤로한 철호(김진규)가 정처 없이 걸었던 60년대의 남대문 시장(<오발탄>), 출세와 유산에 눈이 멀어 사장의 데릴 사위로 들어간 고아 출신 병구(안성기)가 위압적이고 호사스러운 침실 창밖으로 바라보던 80년대의 남산타워(<오염된 자식들>), 막 군대를 제대한 막동이(한석규)가 가족과 함께 소담하게 살고 싶어했던 '큰나무집'이 덩그러니 들어앉은 90년대 일산의 신도시(<초록 물고기>), 충동적으로 오른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선영(추상미)을 기다리며 경수(김상경)가 배회하던 2000년대 경주의 어느 시장 골목(<생활의 발견>).

이 모든 것을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1993년 이래 프랑스에서 열리는 최대규모의 한국영화 회고전

‘50편으로 만난 한국영화 50년’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원장 모철민)과 프랑스 시네마테크프랑세즈(관장 끌로드 베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이번 한국영화 회고전은 2005년 첫 두 달여를 온전히 한국영화에 헌사하며 한국영화 반세기를 조명하게 된다.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
시네마테크프랑세즈 샤이오궁에서는 지난 6일부터 2월26일까지 이강천 감독의 1955년작 <피아골>부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까지 50편의 영화(월, 화요일을 제외한 평일에 2편씩, 주말에 3편씩)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회고전은 지난 93년 퐁피두센터에서 1백여편의 한국영화 회고전을 연 이래 열리는 최대 규모의 행사다. 또 오는 가을 벡시(Bercy)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시네마테크프랑세즈가 샤이오궁에서 개최하는 마지막 대규모 영화축제이기도 하다.

첫날 시네마테크프랑세즈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으나 <하녀(1960, 김기영)>와 <오발탄(1961, 유현목)>이 상영된 토요일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3편이 상영된 일요일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극성 관객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지난 7일 오후, 1992년부터 시네마테크프랑세즈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나 회고전과 더불어 한국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로제는 프랑스에서도 대표적인 시네필(광적인 영화팬)로 유명하다. 아래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프랑스 시네필들의 한국영화 호기심 충족될 것

시네마테크프랑세즈 프로그래머 장 프랑수아 로제
시네마테크프랑세즈 프로그래머 장 프랑수아 로제 ⓒ 박영신
- 지금 한국영화 회고전을 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에서는 끊임없이 영화가 만들어져 왔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서구의 관객들은 오랫동안 매우 드물게 한국영화를 보거나 혹은 전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한국영화는 매우 친숙하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영화에 대한 프랑스 시네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프랑스 관객에게 1955년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소개하면서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를 쥐어주는 것이 시네마테크프랑세즈로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 지난 6일 상영된 임권택 감독의 <오염된 자식들(1982)>의 경우 필름이 많이 훼손됐던데?
"한국의 필름 보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야겠다. 방법이 없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제작자들이나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방치해왔다. 당시에는 영화를 수출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단지 스크린쿼터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들도 적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이 필름 보존과 복원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1955년부터 제작된 방대한 양의 한국영화 중에는 분실된 것도 많고 당시 수출된 영화들의 복사본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복사본 역시 완벽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 임권택의 대표작 <만다라> 대신 <오염된 자식들>을 상영하냐고?

- <남부군(1990, 정지영)>과 <피아골>이 동시에 소개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정 반대편에 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회고전의 작품 선정 배경은 무엇인가?
"질문 속에 답이 있다. 한국영화의 상반성을 보여주는 것, 가지각색의 다양한 한국영화를 보여주는 것 혹은 한국 근대사를 살아온 시네아스트(cineaste, 영화예술인)들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두 영화가 그런 면에서 매우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 이번 회고전에서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만다라(1981)>는 제외된 반면 <오염된 자식들>이 선정된 것도 의외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오염된…>은 지난 2001년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마련한 임권택 감독 회고전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다.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소개되지 않은 임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영화 50년’을 시작하고 싶었다. 임 감독은 위대한 시네아스트로서 프랑스 시네필들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임 감독의 영화 중 파리에서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오염된…>은 임 감독으로부터도 버려졌었지만 탁월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이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와 함께 이 영화를 첫날 상영작으로 선택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임 감독이 파리를 방문해 주기를 고대했지만 불행히도 이번 회고전에 임 감독은 올 수 없었다. "

- 회고전 프로그램에 김기영 감독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게 놀랍다. 김 감독은 오랫동안 한국에서도 가려져 있다가 지난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김 감독의 회고전을 기획하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돌아왔다. 영화전문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번 ‘한국영화 50년’ 특별호를 내면서 김 감독을 스페인 감독 루이스 부뉴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 부분은 한국인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김 감독은 비상하고 놀라운 시네아스트로 부뉴엘뿐만 아니라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도 견줄만하다. 강박적 성향 등 프랑스 시네필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김 감독은 고루 갖추고 있다.

늘 같은 이야기,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돌아오는 김 감독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작가’의 개념과 매우 가까운 시네아스트다. 놀라운 폭력성을 가진 놀라운 영화를 만든 참으로 놀라운 시네아스트다. 부산영화제가 회고전을 열기 전까지 한국에서 김 감독이 그처럼 묻혀있었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

프랑스가 열광하는 한국영화, 일본 중국 홍콩의 경우와 달라

<넘버3>
<넘버3>
- 프랑스에 한국영화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을 통해서다. 아시아 영화 즉 일본이나 중국 심지어 대만에 비해 한국영화는 지각생이다. <바람난 가족(2003)>의 임상수 감독은 ‘서구인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왔고 일본과 중국을 거쳐 이제 비로소 한국의 차례가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보다는 더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에는 예술적으로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재능 있는 젊은 시네아스트들이 그들의 첫 영화를 만들었고 새로운 젊은 배우들이 두각을 나타낸 시기이기도 하다. <넘버3(1997, 송능한)>가 좋은 예다.

또 한국영화가 서구의 입맛을 현혹시키는 이유는 15년 전 프랑스 시네필들이 다른 아시아 영화 즉 일본, 대만, 홍콩의 누벨바그에 이끌렸던 경우와는 판이하다. 그들과 다르다는 점이 더욱 한국영화를 구별 짓게 만든다. 아시아영화의 누벨바그는 쇼트(shot, 쁠랑)의 영화였다. 엄밀히 말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쇼트와 이마주(이미지)가 주효했다. 한국은 이런 것과는 별개다. 열외다. 한국영화는 충동과 생명력 있는 에너지의 영화, 성적 에너지 혹은 폭력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에너지가 15년 전 프랑스 관객을 끌어 모았던 대만이나 일본영화와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호감이 가는 거다. 심도 있는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긴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장화, 홍련>
<장화, 홍련>
- 한국영화 입장에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큰 동시에 우호적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장화, 홍련(2003, 김지운)>이나 <올드보이(2003, 박찬욱)> <사마리아(2004, 김기덕)>의 경우 영화를 보지도 않고 단지 몇 줄의 시놉시스만 본 후 프랑스 배급사가 수입할 정도였다.
"방금 언급한 영화들을 프랑스 배급사가 미리 수입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영화에 열광하는 프랑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제작자와 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한국인 시네아스트도 있다. 홍상수 감독이 주인공인데 홍 감독의 최근작은 프랑스 제작사인 MK2가 공동제작했다. "

한국영화, 자리 먼저 잡은 뒤 관객의 폭 넓혀가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양연화(2000, 왕가위)>나 <소림축구(2002, 주성치)>처럼 프랑스 땅에서 마땅히 흥행에 성공했다할 만한 한국영화는 없다.
"사실이다. <화양연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이만한 성공을 맛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왕가위 감독이 알려진 후 이룩한 성공은 긴 시간과 노력의 결과다. 프랑스에 중국영화를 알린 사람들의 노력, 홍콩영화와 왕가위의 영화를 지원한 수많은 사람들 즉 제작자, 배급자, 영화 비평가들의 지난한 노력 끝에 마침내 왕가위의 영화가 광범위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거다. 기적은 드물다. 한국영화가 자리를 먼저 잡아야 하고 그 뒤에 관객의 폭을 넓혀가야 하지 않겠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 최근 프랑스에서 홍상수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볼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광범위한 프랑스 관객의 주목을 끄는 영화는 <취화선(2001, 임권택)>이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김기덕)>과 같이 한국의 전통이나 역사를 이야기하는 그런 이국적인 영화들이다.
"오해다. 배급사조차도 놀랐을 <달마가 동쪽으로…>의 성공은 지적한 대로 이국주의에서 기인한 면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국주의가 다는 아니다. 한국의 역사를 말하는 영화나 화려한 전통 의상들이 프랑스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프랑스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한국 액션영화나 장르영화도 충분히 가능하다."

- 여담이지만 지난해 말, 프랑스의 인터넷 포털 ‘야후프랑스’는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2004년을 빛낸 인물이나 사건 위주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04년을 빛낸 영화 30편이라는 항목에서 <올드보이>가 15위를 차지했다.
"<올드보이>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프랑스 네티즌들이 이미 봤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프랑스 개봉 전부터 평판이 자자했다. 오늘날 젊은 관객들의 입맛에 꼭 맞는 영화라고 본다. "

<올드보이>
<올드보이>
- <올드보이>를 어떻게 봤나 ?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현재 한국영화를 규정하는 비상한 에너지나 폭력성 따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괴상한 잡종이라고 할까. 호러도 스릴러도 아니고 추리영화도 아니고…. 망가(일본만화)를 각색하기는 했지만 영화가 내뿜는 에너지와 분노 같은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박 감독이 한국영화에서 최고는 아니다. 박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상징성을 구비하고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다. "

"임권택 감독은 영화를 통해 내게 한국을 가르쳐준 장본인"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한국 시네아스트는 누군가 ?
"내게 위대한 시네아스트 아니 위대한 아티스트, 현대 한국영화의 작가를 말하라면 단연 홍상수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지독하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동시에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두 가지를 다 소화하고 있는 거다. 이같은 추상과 지성 즉 이해력을 골고루 구비한 시네아스트는 결코 흔치않다. 그리고 실제 인물과 영화 속의 인물이 잔인할 정도로 흡사하지 않은가."

- 그 점이 국내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웃음)충분히 이해한다. 홍 감독은 극단적으로 비관적이어서 불편한 시네아스트라는 데 동의한다. 홍 감독의 염세적 취향이 성적 에너지와 슬픔 같은 것을 분출케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시네아스트 중 가장 비관적인 사람은 틀림없이 홍 감독일 것이다.

또 다른 한 사람, 임권택 감독은 내게 무한한 찬미의 대상이다. 임 감독의 첫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못 봤다. 99편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이것은 스튜디오의 조건에서 10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할리우드 시네아스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다. 왜 내가 이토록 임 감독을 찬양하는가. 임 감독은 한국의 역사, 문화, 한국인의 심리 등 영화를 통해 내게 한국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다. 임 감독에게는 뭔가 강렬한 것이 있다. "

<취화선>
<취화선>
- 임 감독은 베를린이나 베니스, 낭트3대륙영화제와 같은 대규모 국제영화제를 거쳐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 입성했다. 2001년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임 감독의 회고전을 열기도 했는데 이는 임 감독이 마침내 ‘거장’의 자리에 등극했다는 의미 아닌가?
"그렇다. 임 감독은 칸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베를린이나 베니스보다 먼저 임 감독을 소개하지 못한 점, 임 감독의 작품을 선정하지 못한 것은 프랑스로서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베를린과 베니스를 거친 다음에야 임 감독이 칸에 소개된 것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임 감독의 성향 중에 프랑스가 좋아하는 점이라면 그의 풍부함이다. 그는 역사와 현대를 동시에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이 프랑스 시네필을 매혹시키는 것 같다. 그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시네아스트라는 점에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박찬욱 감독도 있지만 두 사람이 누리는 인기의 이유는 확연히 다르다. "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할 수 있는 드문 나라가 바로 한국"

- 당신은 회고전 첫 작품이 상영되기 전, 전반적인 한국영화의 경향에 대해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좀더 심화해서 설명한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프랑스가 어째서 이토록 한국영화에 주목하는가’였다. 단지 프랑스의 관점일 뿐이지만 나름대로 분석해 보고 싶었다. 여기에는 3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영화의 구조다.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맞선 한국영화 보호정책이 한국영화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문화적 예외를 주장해온 프랑스로서는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프랑스에 영화 지원정책이 있기는 하나 한국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문화적 예외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로 보면 프랑스와 한국은 닮은 점이 있다.

"우리가 일찍이 보아온 아시아 영화와 한국영화는 별개다" <한국영화 50년> 포스터 앞에서 로제는 재밌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가 일찍이 보아온 아시아 영화와 한국영화는 별개다" <한국영화 50년> 포스터 앞에서 로제는 재밌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박영신
둘째,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할 수 있는 드문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상업적 성공이 개인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이 질적으로도 우수하다는 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도 흥행 성적이 좋았다. 프랑스가 갈구해온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은데 한국영화가 가진 뛰어난 점 중의 하나다.

셋째, 다른 아시아 영화들과는 다른 심미적 경향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너지와 폭력, 섹스에 기반한 미적 경향 말이다. 이 세 가지 경향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프랑스 관객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 지난해 한국영화는 관객 1천만 시대를 열었다.
"한국영화가 자국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반가운 소식이고 긍적적인 부분이다.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자면 이런 현상이 할리우드의 스펙터클이나 홍콩의 액션영화처럼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적은 수의 몇몇 영화에 한정돼 있다는 거다. 재정적으로 이롭다고 해서 한국영화가 이들 블록버스터 형태에만 몰릴까 우려된다. 좀더 다양한 영화들이 1천만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독립영화처럼 흥행면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영화들이 밀려나게 되는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논의가 필요한 ‘승리’라고 본다. "

- 시네마테크프랑세즈가 올 가을 벡시로 이사를 간다고 들었다.
"샤이오궁에서의 시네마테크프랑세즈 이야기는 이제 끝난다. 1964년 샤이오궁에 시네마테크프랑세즈가 문을 열기 전에도 수차례 이사를 한 바 있다. 시네마테크프랑세즈의 역사는 샤이오궁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는 이제 전 세계가 공감하는, 그래서 전 세계 어디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꿈이 됐다. 그리고 이 꿈은 더 편안하고 관객의 요구에 답할 수 있는 넓은 공간에서 계속 이어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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