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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B 임원진들이 10일 오후 제일은행 인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토마스 멕케이브 SCB 한국 대표, 마이크 드노마 소매금융 총괄이사, 카이 니고왈라 아시아지역 총괄 대표.
SCB 임원진들이 10일 오후 제일은행 인수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토마스 멕케이브 SCB 한국 대표, 마이크 드노마 소매금융 총괄이사, 카이 니고왈라 아시아지역 총괄 대표. ⓒ SCB 제공

10일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제일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은행권내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의 격돌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SCB는 이날 오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 예금보험공사, 재경부로부터 제일은행 지분 전량을 한화 3조4000억원(33억 달러)에 현금지급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4년 9월말을 기준으로 한 제일은행 순자산가치보다 1.87배나 높은 금액이다.

당초 제일은행의 우선협상 대상자로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SCB가 막판 협상가격을 크게 높여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 SCB는 감독기관으로부터 인허가 결과가 나오는 3월말∼4월초가 되면 제일은행 인수 절차가 모두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일은행이 3조4000억원에 매각됨에 따라 미국계 투기자본인 뉴브리지캐피탈은 불과 5년만에 1조200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차익을 얻게 됐다.

반면 정부는 제일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 가운데 5조5000억∼5조60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게 됐다. 정부는 지난 5년간 모두 17조6000억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이번 매각으로 회수하는 금액은 12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소매금융시장 치열한 접전 일듯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은?
전세계 지점망 500여개... 소매금융 강자

10일 제일은행 인수가 확정된 스탠다드차타드은행(Standard Chartered Bank)은 1969년 스탠다드은행과 차타드은행이 합병하면서 탄생한 글로벌은행이다.

한국에는 이미 구한말인 1880년대에 진출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 철수했다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8년 국내 첫 지점을 개설한 유럽은행이 됐다. 2005년 현재 SCB 서울지점에는 2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총자산은 39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영국, 미주 대륙 등 50여개 국가에 500개 이상의 지점과 사무소를 개설하고 있으며, 직원만 해도 3만여명에 달한다.

일반 소비자금융과 기업 금융을 모두 취급하고 있으나, 특히 소비자금융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소비자금융 분야에 수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은행을 통한 SCB의 국내 영업망 확장은 올해부터 국내 은행업에서 외국자본과 토종자본간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제일은행은 주택금융(모기지론) 중심의 소매영업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국내 소매금융 시장은 은행들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점유율 6%를 차지하고 있는 제일은행은 과거 기업금융 위주의 영업을 해왔지만, 지난 99년 10월 뉴브리지캐피탈이 인수한 뒤로는 주택금융에 치중해 왔다. 그 결과 지난 2004년 9월말 기준으로 제일은행의 전체 여신 중 모기지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늘어났다.

SCB의 국내시장 공격 기본전략은 이같은 제일은행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마이크 드노마(Mike DeNoma) SCB 소매금융그룹 총괄이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소매시장에서 제일은행의 시장점유율은 6% 수준이지만, 2006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오는 2010년까지 8∼10%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SCB가 소매금융시장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영업망을 확장하고 있는 SCB는 이 지역에서 소매금융시장의 수위를 점하고 있다. SCB가 향후 아시아금융시장의 '빅3'로 떠오를 한국에 영업망을 확장하면서 제일은행에 눈독을 들인 것도 기호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CB 역시 이같은 분석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SCB는 이날 회견자료에서 "한국은 SCB가 성공적으로 진출해 있는 기타 아시아 시장과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며 "전국 규모의 영업망을 갖추고 전반적인 경영 상태가 좋은 제일은행을 인수함으로써 한국 시장에서의 강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은행판 '배틀로얄' 시작

국내 은행들은 SCB가 제일은행을 인수함에 따라 본격적인 은행들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은행인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은행 대전(大戰)'의 신호탄이 됐다면, 이번 SCB의 제일은행 인수로 전쟁의 본막이 오른 셈이다.

이에 따라 이미 지난해 말 2005년을 '은행 대전(大戰)의 해'으로 규정한 국내 은행장들은 영업력 확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고삐죄기에 나서고 있다.

국내 리딩뱅크를 자부하고 있는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은 올해 초 시무식을 통해 "올해는 글로벌은행들이 국내 시장에서 본격적인 토착화 전략을 추진하는 원년"이라며 "글로벌은행과 토착은행, 그리고 토착은행 사이에서도 치열한 상품과 서비스 경쟁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의 '빅5'로 불리는 다른 은행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올해는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전쟁을 펼치는 빅뱅 원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도 "2005년에는 수익기반 확충과 선도은행 자리를 놓고 주요 은행들이 정면승부를 펼치는 금융대전이 전망된다"며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나설 것"이라는 포부를 일찌감치 내놨다.

한편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 역시 올해 말 외환은행 매각에 나설 전망이어서 은행 대전은 갈수록 치열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는 올해 11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규제가 풀리는 대로 곧장 매각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제일은행 매각을 중도에 포기한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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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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