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정만 작가
김정만 작가 ⓒ 김성철
지난 주말에 거금도 연홍 마을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회원 3명과 함께 녹동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를 지나 외딴섬 '맛도' 라는 곳에 도착했다.

사슴을 닮은 소록도 정경
사슴을 닮은 소록도 정경 ⓒ 김성철
동쪽으로는 거금도 적대봉과 서쪽으로는 금당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이 곳은 작업화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3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작년 봄부터 지금까지 그렸던 작품 20여 점을 따로 정리해 두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그냥 가지라고 했다.

직접 차려준 점심밥을 먹고 나서 차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어렵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옛 폐교 관사를 숙소와 화실로 사용
옛 폐교 관사를 숙소와 화실로 사용 ⓒ 김성철
-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중견작가로 활동 중이던 문상열 친구 화실에 놀러 갔다가 그가 그림을 그려보라는 권유를 받고, 50대 중반에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게 된 거야."

- 혼자 이렇게 외진 곳까지 온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다들 처음에는 미쳤다 했지. 마누라는 죽어도 함께 못 오겠다는 거고 자식들은 모두가 말렸지. 여기는 원래 내가 태어난 고향이라서 마지막 생을 정리하고 싶었던 거야. 내가 해 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거야. 나이가 들수록 허무해지고 붓은 손에서 멀어 지려고 하는데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 뭔가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80살까지를 정해두고 남은 5년 동안이라도 내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지난해 봄에 서울을 벗어나 혼자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제는 가족들도 내 뜻을 받아들이고 다들 이해를 하지."

- 고향을 찾은 특별한 이유라도.
"수구초심이랄까,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나 파란만장했기 때문에 글이나 소설을 쓰고 싶어서 처음에는 문학을 하려고 했었지. 열세 살 먹은 나이에 어머니가 막내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시게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해방 후 이데올로기 소용돌이 속에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퇴학을 당해 본 경험도 있다.

군대생활은 장교로 임관하여 대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정치군인들에게 휘둘려 여러 차례 고난도 당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고향을 그리며 위로를 받았지."

- 이 곳 생활이 힘들거나 불편한 점은 없는지.
"가장 힘든 게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이야. 이 곳 마을 사람들은 늙은 나를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나 봐. 바다에 나가 파래 김 뜯어다 반찬 만들어 먹고사는 것도 재미있더라고, 혼자 밥해먹고 사는 것을 보더니 마을사람들이 김치도 담아다 주고 된장국도 끓여다 주고 가는데 이런 동정 받기 싫어 이런 외딴섬까지 찾아왔는데 그걸 보면 참 고마우신 분들이지. 그림을 주고 싶어도 지금까지 그림에 관심 갖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소외된 곳이라 참 답답하지."

- 작업하고 있는 폐교를 구입해서 민예총 고흥지부에 전부 기부하겠다고 밝혔는데.
"저기를 봐 이 곳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져! 나는 하나하나 다 버리고 가는 사람이야. 돈도 가질 만큼 가져봤으니 돈에는 관심이 없어. 뜻이 있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 줄 개인이나 단체가 있으면 얼마든지 돕고 싶어.

내가봤을 때 고흥 민예총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앞으로 여기는 많은 작가들과 관광객들이 찾아 올 것이니 두고 보라고, 훗날 나를 찾으면 없을 테니까."

화실에 놓여진 미완성의 그림
화실에 놓여진 미완성의 그림 ⓒ 김성철
-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작품 속에 내적인 치열함이 배여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들이 보이지가 않는 거야. 내 스스로가 그림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지만 쉽게 뛰어 넘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스타일을 바꾼다고 해서 바꿔지는 것도 아니고 바꾸려 했다가 오히려 그림이 이상해지는 경우를 볼 수가 있어. 그래서 지금의 스타일대로 유지를 하되, 회화성이 풍부한 추상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그게 잘 안 돼."

-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누군가가 내 작품에 대해 솔직히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화단에서 늙은이 대접을 해 줘서 그러는지 아직까지 아무도 비평해 준 사람이 없어.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는 그런 지도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안타까울 때가 많아.

다행히 고향에 내려와서 녹동에 살고 있는 선호남 작가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서로의 작품을 통해 좋은 점은 받아들이기로 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올 가을에 함께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 작품 활동하는데 있어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면.
" 내가 그림이 좋아서 그리고 재미있어 그린다. 특별히 영향을 준 작가는 없고 홍익대학원을 마치고 '홍익화우회' 회원이 되면서부터 20여 년간 매년 정기적인 전시회와 '아름다운 서울그림점'에 나가다보니 실력도 늘고 안목도 넓어 지다보니 이제야 남의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봐야만 뭔가 느끼게 되고 감동을 받지, 그러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때가 있어. 나

는 전시회를 많이 찾아다니는 편이지. 요즈음에는 내 작품을 보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내 그림을 선호하거나 그리고 있는 젊은 후배들이 많아지는걸 보면 선배로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를 질책하며 심한 몸부림을 쳐보지만 원하는 작품이 안 나오는 거야."

- 앞으로의 계획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다운 작품을 남기고 싶어, 옛날에야 내가 그린 그림이 다 그림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그게 아니지. 요즈음에는 한 점 그리기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예전 그림은 다작을 양산하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야 내 그림이 보이나 봐.

여기 와서 서울에서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너무 사실적인 면이 있고 어떤 그림은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아 예술성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 요즈음에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이 나타나지가 않을 때는 붓을 팽개치고 놀아버리는데 5년 후쯤 내가 원하는 작품이 완성되면 서울에다가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석양이 지는 연홍마을
석양이 지는 연홍마을 ⓒ 김성철

인터뷰를 마치고 났더니 모든 배편이 끊겨 일행을 남겨두고 혼자 선외기를 타고 거금도로 나와 또 한 차례 배를 갈아타고 육지로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저는 민예총 고흥지부 홍보위원장과 여수MBC 통신원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