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신선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작품이 햇볕을 받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한 신선함 혹은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에 대한 해석은 갖가지겠지만 최근 시중에 나온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고래>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래>는 신선함이 넘쳐난다. 그래서 특별하다. 문학상 수상작에 으레 붙는 찬사가 '특별하다'는 것이라지만 <고래>만큼은 예외적으로 보인다. 심사를 맡았던 소설가 임철우나 은희경,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심사평에서 <고래>가 갖고 있는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는 누누이 반복되는데 이것은 심사위원단의 눈에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미 <고래>를 접한 사람들도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작품의 독자 리뷰들도 한결같이 그것을 언급하며 반기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의 만족도도 최상에 달하고 있다.
<고래>의 저자 천명관은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신인작가다. 하지만 저자의 실력은 신인답지 않은 녹록함이 묻어나 있다. 그것은 영화에 뛰어들면서 몇몇 작품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실력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인은 역시 신인인 것일까? 앞에서 언급한 작품의 신선함 혹은 특별함은 저자가 신인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은 기존 소설에 대한 도발이자 익숙함에 젖어 있던 독자들의 눈과 귀를 새롭게 눈뜨게 하는 패기이다.
<고래>는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세상에 복수하려고 하는 국밥집 노파, 두 번째는 우연히 노파의 돈을 얻게 돼 그 돈으로 사업을 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그 자신도 남자가 되어버린 금복, 세 번째는 금복의 딸로 코끼리와 대화할 줄 알고 금복이 만든 벽돌공장에서 최고의 벽돌을 만들 줄 아는 춘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고래>를 이끌어간다.
세 명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의 욕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덧없음을 함께 겪고 있다. 제목인 '고래'는 이 모든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바다를 주름잡지만 끝내 사람들에 의해 해체 당하는 고래의 모습은 고래를 좋아했던 금복이나 금복의 딸 춘희, 나아가 고래를 몰랐던 노파의 삶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고래>가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는 점이다. 벌떼를 몰고 다니는 노파의 딸, 죽어서도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나는 노파, 춘희와 대화하는 거대한 코끼리 점보, 영화에서 나온 것 같은 건달 칼잡이 등의 모습은 생전의 노파나 금복과 춘희가 걸어온 현실적인 모습과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능력 덕분에 현실과 비현실적인 요소들의 경계는 작품 속에서 일체의 벽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 속에 가려진, 혹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사실들이 현실과 맞물리면서 <고래>는 작품 특유의 흡인력을 갖고 있고 독자들은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고래>에서 유난히 독자들의 눈을 끄는 부분은 이야기꾼이 직접 등장한다는 점이다.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의 변사를 보는 것처럼 <고래>에서는 중간 중간 이야기꾼이 나와 독자들에게 잊혀지기 쉬웠던 사실을 환기시켜주거나 복선으로 처리할 부분들을 직접 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 또한 동시대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소설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만은 틀림없다'는 심사평을 얻기도 한 천명관의 <고래>.
'한국소설은 재미없다'는 인식 틀에 과감히 돌을 던질 뿐만 아니라 비슷비슷해져 가는 작품들에도 돌을 던진 작품이기도 한 <고래>의 등장은 산에 살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를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선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씀/ 문학동네/ 2004년 12월/ 455쪽/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