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로자', '혁명의 독수리',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인류에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금까지 기억되는 몇 안 되는 사회주의 혁명가의 한 사람인 로자 룩셈부르크를 이르는 말이다.
지난 9일 독일 베를린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 사망 86돌 추모식이 열렸다. 1만여명의 순례자들이 1919년 1월 15일 독일 혁명의 와중에 우파 군인들에게 암살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의 무덤을 찾았다. 매년 1월 둘째 일요일 베를린 외곽 프리드리히스펠데의 '사회주의자 묘지'에서 거행되는 이 추모 행사에 모인 순례자들은 두 사람의 무덤에 '붉은' 카네이션을 바쳤다.
로자는 유럽 사회주의 운동사에 우뚝 선 걸출한 혁명가였다. 폴란드인, 유태인, 다리를 저는 장애인, 여성이라는 4중고를 뚫고 그녀는 당시 유럽 최대의 노동자 정당인 독일사민당의 지도부로 단숨에 솟아오른다. 투표함을 둘러싼 전투에만 몰두하며 개량화의 길을 걷던 사민당의 노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베른슈타인과 벌인 치열한 '수정주의 논쟁'은 로자에게 맑스주의 이론가로서의 드높은 명성을 안겨 준다. 그녀는 특히 대중의 동의와 자발성을 강조하며 레닌의 '위로부터' 준비된 혁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1차대전이 발발하고 사민당이 제국주의 전쟁을 받아들이자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로자는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일어난 1918년 독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일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이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단은 소비에트공화국을 목표로 섣부른 봉기를 일으키고,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반대했던 로자 역시 봉기 실패가 불러온 학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로자는 무자비하게 살해되어 베를린의 란트베어 운하에 버려진다.
다음 날 독일 신문은 '로자가 감옥으로 이송되다 분노한 군중들에게 살해되었다'고 보도한다. 하지만 그 이름 로자(Rosa)처럼 장미가 만발한 5월 31일, 차가운 물 속을 떠돌던 그녀의 시체가 떠올라 극우파들의 참혹한 만행이 밝혀지고 살인자들은 법정에 세워진다.
'비운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헌신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꾼 '자유로운 영혼'으로, 감옥 창살에 찾아온 작은 새 한 마리와 이름 없는 들풀을 사랑한 따스한 인간이었다. '혁명의 독수리'(레닌)이자 '혁명의 살아 있는 불꽃'(클라라 체트킨)이 그녀의 얼굴이듯이 감옥에서 새들을 위한 해바라기 씨앗을 부탁하는 따스함도 그녀의 얼굴이었다.
로자의 무덤이 있는 사회주의자 묘지에는 노동 운동이나 혁명 운동뿐 아니라 반 나치 투쟁이나 스페인 내전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비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묘지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4m 높이의 거대한 기념비에 새겨진 글귀는 준엄하기 그지없다. '죽은 자가 우리에게 경고한다!'
노동운동이건 반 나치 투쟁이건, 이상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경고하는 것은 무엇일까.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지 묻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쟁과 테러의 상처로 얼룩지고 있고, 빈곤과 모순된 삶에 찌든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죽은 자의 경고'가 계속되어야 한다면 로자에게 가는 순례 대열도 끝나지 않을 듯하다.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죽었다. 훌륭한 일이다." <타게스슈피겔>이 전한, 추모식에 참가한 16세 소녀의 말이다. '21세기 로자'를 꿈꾸는 이런 젊은 세대가 있는 한 내년에도 로자의 무덤가에는 붉은 카네이션이 바쳐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