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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읽은 삶>
책 <내가 읽은 삶> ⓒ 실천문학사
곰팡내 나는 헌책들 갈피 갈피에 끼워져, 바짝 마른 식물 채집처럼 질식해간 나의 사춘기 / 아니, 나는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누에가 뽕 먹듯이 마구 뜯어먹었네. 한꺼번에 너무 먹어 체했네. 내 작은 머리와 가슴속에는 밤낮으로, 그동안 읽어온 말들이 붕붕거리며 소용돌이 쳤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온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언어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은 곧 시가 되고 시는 또 자연스레 그의 삶 속에 머무를 것 같다. 시집 <내가 읽은 삶>을 보다보면 이러한 시인의 생애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40여 년을 시와 함께 보낸 시인의 인생은 그야말로 시와 삶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시집 속에 담긴 그녀의 삶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린 시절을 비롯하여 격정의 청소년기, 사랑에 대해 눈을 뜨던 시기 등 그녀의 인생이 곧 시가 되어 꿈틀거린다.

밤에 잠자다가 두세 차례나 벌떡 일어나 앉아/ "엄마"하고 불러보네/ 가슴속이 미어터질 듯 아파오네/ 엄마 돌아가신 지 어언 일 년/ 나이 육십인데도 나는 그동안/ 어린 새 새끼처럼 늘 춥고 외로웠네

이렇게 시작하는 첫 번째 시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 글이다. 육십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늘 춥고 외로운 마음.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모든 의욕을 잃고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졌네"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자식들이 함께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어린 시절부터 비롯되었다. 시 <한낮>은 동생처럼 늘 데리고 놀던 앞집 선혜가 죽은 이후의 삶의 허전함과 쓸쓸함을 묘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알 수 없는 서글픔에 사로잡힌 한 아이. 그녀가 쓰는 글씨는 햇빛과 함께 적막감을 자아낸다.

햇빛 쨍한 골목에 앉아 사금파리 끝으로/ 땀 뻘뻘 흘리며 땅바닥에 삐뚤삐뚤/ 서툰 솜씨로 글씨를 팠네/ "선혜가 죽었다"라고/ 그리곤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골목에 가득 고여 있는 햇빛을/ 내가 알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정적을

이와 같은 시들에 나타나는 시인의 근원적인 감정은 바로 '상실감'이다. 이러한 상실감은 어릴 적 잃어버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상실감에서도 나타난다. 피난길에 잠시 아버지를 잃게 된 시적 화자는 그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꾼다.

아버지, 소식 한 자 없는 내 아버지. 이 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자꾸 내려가면 내 아버지 만날 수 있을까? 이 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자꾸 가면 서울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먼먼 신작로 길처럼 온몸에 치렁치렁 감겨들었던 한없는 적막함, 외로움.

상실감의 근본 원인은 바로 전후 세대로서 무언가를 박탈당한 느낌에서 비롯되고 있다. 집도 잃고 하염없이 피난길을 나섰던 사람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 이러한 혼돈의 역사 속에서 시인은 상실감과 허무감이 짙게 배인 시를 토해냈다.

이와 같은 시적 의미들은 시인이 자라고 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전쟁터와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는 사회에 대한 환멸. 그 환멸감은 성장한 후에도 가슴 깊이 남아 이 시대에 대한 원망과 부모에 대한 애증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 환멸과 상실, 사랑과 미움이 부정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긍정적으로 승화된다는 점에서 시적 가치가 있다.

…비관주의자 아버지의 삶의 한구석을 나타내는 듯한 뜨겁고 비밀스런 글귀들./ 아버지와는 정말로 다른 삶을 살리라. 살림살이에 무책임한, 꿈꾸는 아버지를 지독히 싫어하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그려넣은 책의 그 밑줄 위에 내 우울한 삶의 줄을, 내 미지의 삶의 궤도를 다시 한 번 겹쳐 그려넣었네.

캄캄한 의식의 혼돈 속에서 온갖 형태를 갖추려고 몸부림치던, 네 방에 가득 찬 아우성 같던 까마득한 우주, 심연들, 혼란, 그 밑그림들. 밤늦도록 우리가 나누었던 모색적이고 진지했던 이야기들. 우리는 고갱의 그림 제목처럼 우리 자신에게 묻곤 했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렇다. 우리의 삶이란 지독한 혼돈과 고뇌 속에서도 꽃 피어나는 것이며 또 사그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고민하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으며 계속 헤매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서글프게도… 인생은 늘 그 고민 속에 머무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생의 어두운 면만 볼 수 있으랴. 세상의 긍정적인 측면과 행복을 맛볼 수 없는 자는 불행하다. 쓰레기 더미 속에 피어나는 들국화처럼 세상의 가장 어두운 면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그리고 시인 또한 그 희망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살이에 무능했던 내 부모님을 한때 부끄러워했지만/ 살아가면서 내 안에 숨겨진 그들의 핏줄을 나 이제 깊이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하듯/ 언젠가 내 아이들도 제 못난 아비 어미를 또/ 깊이 연민하고 그리워할 것을 굳게 굳게 믿으며

시인은 이전의 시집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가슴 속 한구석이 늘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토해내듯이 내뱉은 언어들은 시인의 삶이자 곧 독자의 삶으로 거듭 승화되고 해석된다.

시라는 압축된 형식 속에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인들. 그들의 표현이 비록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비유적일지라도 인생살이의 복잡다단함을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양정자 시인의 말처럼 '어려웠던 성장 과정을 한 꿰미에 뚜르르 꿰어 연작시 형태로 형상화하고 싶었지만, 압축된 시 형식으로는 여러 가지로 무리'일 수밖에…. 하지만 그 모자란 표현 속에서도 우리는 삶을 읽는다. 그리고 그의 삶이 내 것과 닮은 모양임에 감동을 받고 세상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읽은 삶

양정자 지음, 실천문학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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