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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그만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배우로서의 힘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그만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배우로서의 힘일지도 모른다. ⓒ 권미강
조용한 가운데 흘러나오는 열정

사람들의 나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어지는 나이테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외모와 말투에 스며들고 그것이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비쳐질 때야 한 사람의 인생은 제대로 된 나이의 개념으로 전해진다.

'저 사람, 배우 아니면 무얼 했을까?'
배우 남명렬(46세)씨를 보면서 처음 스쳤던 생각이 그랬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범상치 않은 배우임을 직감한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인용해 표현한다면 '배우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첫 느낌만으로 배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사람. 그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연극배우다.

하지만 그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우리나라 수많은 연극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거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거나 하지 않았으며 스타열풍에 빠진 젊은이들 사이를 마구 다녀도 누군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없다. 단지 그가 풍기는 독특한 매력에 '힐끗' 하고 한번쯤 눈을 돌려보기는 하리라.

마초의 상징같은 군악대장'으로 분한 '보이체크'
마초의 상징같은 군악대장'으로 분한 '보이체크' ⓒ 남명렬 제공
얼마 전 그는 연극 '보이체크'를 끝냈다. 탱고와 역동적인 코팍춤(러시아 민속춤) 거기에 처연한 사랑과 배신 등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인간들의 '보이는 진실과 보이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았다. 그는 여기에서 남성성의 대표적 인물인 군악대장으로 분했다. 남성적인 멋을 가졌지만 나약함을 짓밟는 파괴의 몸짓이 그의 연기에서 흘러나왔고 보이체크 안에서의 그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지난 해 9월, 연극 '바다와 양산'에서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묵묵히 지켜보던 다정다감한 남편으로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배우의 변신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니, 저런 것이 진짜 배우 아닐까?'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배역을 깊이 인식시키는 배우. 조용한 가운데 흘러넘치는 열정, 그는 그랬다.

처음 본 연극, 그리고 장난처럼 내디딘 무대

충남 대전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처음 연극을 본 것은 충남대학교 임학과 1학년 때다. 당시 충남대 연극반 공연인 '환도와 리스'를 본 그는 '참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연극이 끝난 후 바로 입단했다.

하지만 무대에 설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었던 그에게 연극은 우연을 핑계로 계속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언뜻 들른 연습장에서 배역을 맡게 되고, 연극반연극회장을 해야 하는 2학년 단원이 없어 얼떨결에 회장직에 오르기도 했다.

군 제대 후에는 후배들의 간곡한 요청을 미루지 못하고 연출을 했다. 그때 한 작품이 오태석씨의 '유다의 닭'이었다. 이후 '사람의 아들'에서 민요섭역으로 대학연극제에 참가하면서 조금씩 무대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졸업과 함께 제약회사에 들어간 그는 대전의 친구들과 '연기자그룹'을 만들고 차후 극단 '금강'을 창단해 2년 간 대표를 맡기도 했다. 93년, 이윤택 극본, 채윤일 연출작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은 그가 겪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연극 '사라치'의 한 장면
연극 '사라치'의 한 장면 ⓒ 남명렬 제공
바로 서울생활의 시작이었고 배고픈 연극배우가 느끼는 최고의 맛을 다 맛보는 시기이기도 했다. 회사마저 치우고 전업배우로서 시작한 길은 혹독하게 그를 몰아세웠다. 1백만원에 12만원의 월세방에서 살 때는 차비가 없어 연습장까지 걸어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실존에 대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이 삶의 에너지로 작용했다. 그가 절망스러운 것은 오히려 연극 안에서 일류가 아닌 사람들과 만날 때다. 뭔가 금방 될 거 같이 서두르다가 이내 던져버리고 노력하지 않고 큰 배역만을 바라는 사람들, 그것이야말로 그를 한없이 허탈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을 열연하고 있는 배우 남명렬
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을 열연하고 있는 배우 남명렬 ⓒ 남명렬 제공


편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간다

그는 즉흥적이지 않다. 한 번의 의견을 내려면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입 밖으로 낸다. 그런 성격은 배역을 받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까지의 고민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가 김아라 연출의 '이디푸스의 여행'에서 '이오카스테'역을 할 때는 3주간 고민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감을 가지고 연습에 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디푸스의 어머니역을 남자인 그에게 맡긴 연출가의 모험도 대단하지만 '더 이상 이오카스테는 없다'고 할 만큼 훌륭하게 소화해낸 그도 대단한 배우다. 그는 이 역을 하고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았다.

그는 일본 연출가 '오타쇼고'를 존경한다. 2001년 연극 '사라치'를 하면서 오타쇼고가 보여준 철학적 깊이와 인간을 느낄 수 있는 정신세계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에게 연극 안에서의 성취감을 더욱 배가시켰다. 나이가 들면서 닮고 싶은 진정한 연기자 '신구 선생'을 존경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무대 위에서의 열정을 닮고 싶은 것이라는 연극배우 남명렬.

앞의 성과를 얻기 위한 조급한 생각을 버리고 시선을 늘 멀리 하라는 그는 편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이미 그 생명력을 잃는다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제1회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갈매기'에서 '뜨리고린'역을 했다.
제1회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갈매기'에서 '뜨리고린'역을 했다. ⓒ 남명렬 제공
'제1회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갈매기'에서 '뜨리고린'역을 했던 그는 오는 4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리는 '아가멤논'에서 또 다른 무대 위에서 삶의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양력
충남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연극반에서 연극 시작
대전 극단 「금강」 대표

*출연작
사람의 아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거미여인과의 키스, 이디푸스와의 여행,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밤으로의 긴 여로, 사라치, 첼로와 케첩, 갈매기, 보이체크 등 다수

* 수상경력
1986 충청남도 연극제 남자 연기상 (사람의 아들)
1993 대전 연극제 연기상 (불의 가면)
1996 신춘문예 단막극제 우수 연기상 (시인과 모델)
2002 제19회 영희 연극상
2002 서울공연예술제 연기상 (사물의 왕국)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소식지 'EXPO문화사랑' 2005년 1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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