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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해방 60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의 독립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흔히들 '해방 60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의 독립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이민우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이고 독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독립을 위해 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겁니다.”

일제가 패망직전이던 1945년 7월 24일 친일민족반역자들의 전쟁 독려 행사가 벌어지던 부민관에 사제폭탄을 터뜨려 친일파들을 응징해 한 언론이 '마지막 의사'라 칭하기도 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의 말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다시 친일파가 득세하고, 조국이 분단까지 된 상황을 조문기 이사장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독립 운동해서 나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이라 표현했다.

그렇기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비롯한 친일파 청산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조문기 이사장은 '해방 60년'이 지난 2005년 현재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60년이라는 숫자 개념이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목숨 걸고 찾으려 했던 건 분단된 조국이나, 친일파 천국이 아니라고요.”

조문기 이사장은 부민관 사건과 의병을 예로 들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오히려 독립운동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성토했다.

그는 부민관 사건을 폭탄 투척 사건이라거나 행사 전날 잠복해 있다 폭파시켰다는 식으로 왜곡돼 있음을 지적하며 “조문기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거 알면서도 전화 통화 한번 안 하고 죄다 틀리게 만들어 놨다”고 학자들의 성의 없음을 꼬집었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 통과와 관련해“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라며 “이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라고 비판한 대목에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16세 때인 1942년 독립운동에 뜻을 세우고 일본에 건너가 1943년 일본강관주식회사라는 군수공장에서 파업을 일으켰던 열혈 청년 조문기.

어느덧 79세의 노인이 됐으나 변함없이 ‘해방’을 위한 열정으로 활동하는 ‘진정한 청년’을 13일 오후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의 상황을 들어봤다.

- 2004년엔 각계 민족인사와 민주인사들의 활동 성과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무산시켰으며, 정부예산이 삭감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금에 국민들의 성금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간단하게 평가해 주시지요.
“친일후예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믿었던 사전 편찬 예산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만 친일청산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무거운 책임을 느꼈지요. 격동의 한 해였다고 생각해요.”

-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 연구 성과물도 책으로 엮어져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일본에 협력했던 친일단체를 모은 일제협력단체사전의 국내 첫 권이 나온 거예요. 거기에 300개가 넘는 친일 단체와 사업 내용이 나오고, 협력했던 명단도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명단이 1만명을 넘어요. 이게 다 처벌해야 할 대상이란 건 아니고, 친일 협력한 단체에 있던 인적 구성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친일인명사전을 위한 준비 작업이지요.

앞으로 공청회도 하고 해서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어디까지가 처벌 대상인지도 결정해야겠지요. 국회에서는 708명이니 뭐니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다른 나라는 4년, 5년 지배했는데도 몇 만 명이 처벌받고 했는데, 우린 한 명도 처벌이 안됐잖아요.”

독립운동 해 나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라며 "이 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라는 그의 말에선 비장함이 느껴졌다.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라며 "이 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라는 그의 말에선 비장함이 느껴졌다. ⓒ 이민우
- 올해는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이자, 해방 60주년 되는 해입니다.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텐데요.
“60년이라는 숫자 개념이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목숨 걸고 찾으려 했던 건 분단된 조국이나 친일파 천국이 아니라고요. 친일파가 청산된 조국을 찾으려 한 건데, 이건 보니까 독립 운동해서 나라 찾아 친일파한테 진상한 꼴이 된 거예요. 거기다 나라도 분단되고, 그렇기에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이 이뤄져야 진정한 해방이고 독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독립을 위해 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겁니다. 내가 광복절 행사 같은 데 안 가잖아요. 뭘 기념하겠다는 거냐는 거죠. 그건 순군 선열에 대한 모욕이고, 독립운동가가 자기 양심 버리는 거라고 보기 때문이에요.”

- 선생님께서 친일파가 판을 치고, 애국인사들이 암살당하는 혼란 속에서 한 때 계룡산에 칩거하던 중, 1948년에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투옥되기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단정 반대 운동하다가 잡혀서 1년 반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었어요. 계룡산에 들어가 있다가 48년도에 5·10 선거할 적에 선거란 게 어떤 건지 궁금해 내려왔는데, 보니까. 단독정부를 세우겠다는 거예요. 그럼 북쪽도 거기대로 정부를 수립할 거 아니예요. 그럼 우리나라는 영 두 나라가 되고 만다고, 독립운동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참여하면 큰 죄 짓는 거라고 봐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것이 그나마 그때 단독정부 수립할 때 협조는 안 했더라도 방관했다면 이건 독립운동가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다고 봐요. 잠깐 동안이긴 하지만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투옥된 게 참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해요.”

60년 아니라 6백년 지났어도 친일파 청산 안됐으면 해야

- 최근 몇 년간 독재정권 시기 발생한 의문사 진상규명을 비롯해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 사업까지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왜 자꾸 지나간 과거에만 집착하느냐며 정부의 과거청산 사업에 반발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는 친일파 청산 그거 옛날 얘기 아니냐, 뭐 하러 지난 얘길 끄집어 내 복잡하게 하느냐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요. 60년이 아니라, 600년이 지났어도 친일파 청산 안 됐으면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덮어두지 않고 민족정기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종양이 몸 안에 자라는데, 그거 수술 안한 채 보기 싫다고 덮어놓는 건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요. 민족을 죽이는 거예요. 그게.

이런 얘기도 많이 하잖아요. 친일파, 친일파 하는 데, 그 때 친일파 아닌 사람이 어디 있고, 독립운동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이게 순 친일논리고 물타기라고요. 이 논리대로면 친일파도 별거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별거 아닌 거 아닙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 날 일이죠. 오래 동안 이런 논리에 젖다보니 국민들이 그게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 부족하긴 하지만 지난 해 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 올 3월께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있습니다. 진상규명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부하고 국회에서 법 제정해 어쩐다 하지만 하나도 기대를 안 해요. 누가 해도 지금 제대로 조사를 할 수가 없고 바로잡기도 힘든 실정이니까. 전부 죽었잖아요.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사실을 잘 모르고. 한심한 거예요. 이제라도 역사학자들은 자기들과 선배들이 잘못 기록한 걸 다만 10분의 1이라도100분의 1이라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정치한다고 하는 데가 친일세력의 집합소입니다.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도 시원찮을 텐데, 청산은 어려우니까 진실만 규명하자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는 판이니. 이것도 나라라고 할 수 있나 싶고.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 60년 동안 떵떵거리고 큰소리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습니까.”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 없는 게 문제

-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데요. 전에도 독립운동사가 잘못돼 있다고 지적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 거행하신 부민관 폭파 사건(1945년 7월 24일)도 잘못 기록된 게 많을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요. 폭탄 투척이라고 많이 돼 있다고요. 폭탄 사건이나 폭파 사건이라고 해야 되는데, 내용이 다른 거잖아요. 폭탄 투척 사건이라고 하면. 꼭 던진 것처럼 해놨거든요.

또 부민관에 전날 들어가 잠복했다고 하는 것도 있고, 당일 날 아침에 들어가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실제는 행사하는 데 들어간 건데 말이예요. 행사 진행 중에 부민관에 들어가 두 군데에 장치해서 폭파시킨 건데. 산 사람 얘기도 그렇게 거짓말로 자기들 멋대로 써 놓고 있으니 참.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는 게 큰 문젭니다. 조문기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거 알면서도 전화 통화 한번 안 하고 죄다 틀리게 만들어 놨다고요. 그래서 독립운동사 전공한 학자들이 독립운동사를 죄다 버려놨다고 하는 거예요.”

- 독립운동사 기록이 잘못됐다는 예를 좀 더 들어주시지요.
“학자들 때문에 독립운동사 기록 전반이 잘못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사에서 의병관한 기록을 보면 맨 의병장만 있잖아요. 장수만 있고 그 밑에 있는 의병은 없다는 거예요. 물론 학자들도 직접적인 건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학자들이 유족들한테 공적서를 써서 보내줘라 해서 하거든요. 대부분 유족들이 가난하고 그러다 보니까 공적이 많으면, 의병장이면 연금이라도 더 타려나 해서 부풀려 의병장, 의병 대장이라고 적어내는 거예요.

학자들도 유족들이 그렇다고 하는 데, 뭐 별다른 증거가 있나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대로 책에 쓰다보니까 다 의병장으로 된 거예요. 웃음거리가 된 거지.”

최소한 친일파의 죄상 파헤쳐 역사에 기록해야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언론과 주요 정치인들이 진상규명법에 대해 반대하기도 했는데요?
“지금도 일제 치하 그대로 라고 봅니다. 오히려 친일파들은 더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고 친일파 천국이니까 그런 거지요. 친일하던 게 지금도 그냥 친일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야 친일이 자기들 사주에 대한 충성이고, 회사의 전통을 지키는 거로 생각하는 거니까. 친일의 전통을 고수하고 자랑삼는 거잖아요.

불란서처럼 나치지배에서 신음하던 나라들은 언론기관을 가장 먼저 청산했거든요. 그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을 보여 준 거지요. 예술인과 언론인들은 혼을 팔아먹은 앞잡인데…….”

- 우리 민족이 진정한 해방을 맞기 위해 우선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 민족혼이 살아있다면 최소한 친일파의 죄상을 파헤쳐 역사에 기록해야지요. 최대한 역사로서의 생명력을 갖도록 만들어 비록 다 밝히진 못하더라도 국민들이 최소한 독립운동은 이렇게 했구나, 친일파들의 죄상은 이런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런데 지금은 친일파를 청산하긴커녕 오히려 친일파한테 독립운동자들이 청산을 당하고 있어요. 일제 치하랑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하는데, 계승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법통 계승하려고도 안 하고. 전국에 친일파 동상과 공적비 따위는 그렇게 많은데, 임시정부 관련 기념관도 없잖아요. 그야말로 '친일의 꽃'이 만발하고 있지만 독립됐다는 나라에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참말로>(www.chammalo.com)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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