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늘에는 구름이 엷게 끼었습니다. 후배 직원이 시계를 보았습니다. 12시 30분입니다.

"오늘은 점심 먹는 시간이 좀 빨랐습니다."

후배가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그가 성큼성큼 제 앞을 가로질러갔습니다. 저는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어디 갈거니?"
"동사무소에 좀 가려구요. 그래도 조카를 위해서 보증을 서 줄 수 있다는 게 여간 기쁜 게 아닙니다. 비록 신원 보증이지만 말입니다."

후배가 수줍게 웃었습니다. 점심 시간이라서 그런지 동사무소는 한산했습니다. 직원 한명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인감 신청서를 직원에게 내밀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직원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사무실 너머 저편을 바라봅니다. 어린이집이 보입니다. 아이들이 집에 갈 시간인 모양입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합니다. 아내도 결혼하기 전에는 어린이집에 근무했습니다. 아내는 결혼하고 얼마 안있어 어린이집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요, 우리 아이만은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요."

인감이 발부되었습니다. 후배가 안주머니에 인감을 넣었습니다. 우리는 민원센터를 나섰습니다.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걷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점심 시간이 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식품가게 앞을 지나갑니다. 콩잎으로 만든 반찬이 보입니다. 저는 잠시 추억에 잠깁니다. 그러다 끝내 후배에게 털어 놓고 맙니다.

"너도 그랬겠지만 우리 집도 가난했어. 어머니는 무척 부지런하셨지. 농촌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는 논이 한평도 없었어. 우리는 남의 논을 부치며 살았지. 지금도 눈에 선해. 논두렁에 허리를 구부리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말이야. 마치 하얀 염소가 풀을 뜯고 있는 것 같았어."

저는 언뜻 미소를 흘립니다.

"어머니는 소작하는 논에 논두렁에 콩을 심었어. 밥술께나 뜨는 사람들은 논두렁에 한줄만 콩을 심었지. 그러나 어머니는 아니었어. 꼭 두줄을 심으셨어. 거기에서 나오는 콩은 논 주인과 나눠 먹지를 않았거든."

저는 어느새 저만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콩으로 메주를 쑤셨어. 반은 팔고 반은 우리가 먹었어. 콩잎은 반찬으로 만들었지. 내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콩잎이었어. 된장에 저린 콩잎이었어. 나는 그게 싫었지. 친구들 보기에 무척 부끄럽기도 했고. 콩잎만 먹으면 방귀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매번 방귀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했어. 덕분에 방귀쟁이란 별명도 얻었지."

후배가 시계를 봅니다. 우리는 식품가게를 벗어납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제가 근무하고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그때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아무래도 퇴근길에 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콩잎 반찬도 먹어야겠지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