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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보물

“거 뭣들 하느냐! 돌을 어서 이쪽으로 옮겨야 할 것 아니냐!”

돌에 기대어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던 승려들은 성을 축조하는 책임을 맡은 완풍군 이서의 호령에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돌을 날랐다. 이서가 축조하고 있는 성은 남한산성으로서 멀리는 백제 온조대왕의 왕성 터로 알려져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산성의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완풍군 이서가 맡은 일은 남한산성을 더 크게 개축하고 성벽을 높이는 일이라 남한산성을 거의 새로 쌓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에이, 정말이지 매번 하는 말이지만 죄를 누가 지었는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승려들의 한편에는 또 다른 한무리의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돌을 나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원래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있던 포수들이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싸움에 나서려 하지 않고 숨었고 일부는 오히려 이괄이 한양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대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그들 편에 서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그로 인해 그들은 모두 남한산성 축조라는 부역을 죄 값으로 떠맡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승려들의 입장은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었다. 백성들에게 노역의 부담을 지울 수 없다 하여 전국 각지에서 동원된 이들이 승려들이었기에 다시 본다면 승려들은 백성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승려들이 이런 고된 부역을 떠맡은 적이 과거에도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일을 함에 있어서도 불만 한마디 내뱉은 적도 없었다.

이서는 이런 승려들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이제 거의 축성이 끝난 남한산성 내에 절을 지어 이들을 상주 시키며 성의 보수를 도맡게 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이서는 절을 지을 만한 곳을 골라 터를 파두라 일러두었고 그 일은 포수인 서흔남이 승려 두청과 세명의 승려를 거느리고 맡아 하고 있었다.

“여기쯤이 좋겠습니다. 한적한 곳인데다가 옆에 숲을 끼고 있으니 절로서는 적지가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서흔남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먹을 휘두르곤 해서 과격한 성격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두청에게는 그런 면모를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석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흔남과 두청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때의 일이었다.

포수 출신이긴 하지만 관리들의 신임을 얻어 성 축조를 감독하는 일을 맡은 서흔남은 가끔씩 개고기를 삶아 동료 포수들에게 술과 함께 돌리곤 했다. 서흔남은 술에 취하면 종종 사람이 돌변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술이 과했던 게 탈이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지나가는 승려들을 불러 들여 강제로 술과 개고기를 먹이려 했던 것이었다.

“저희는 불도를 닦는 몸입니다. 죄송합니다.”

승려들의 간곡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서흔남의 추태는 계속되었다.

“고고하게 불도를 닦는 이들이 돌을 지고 벽을 쌓기도 하는데 이까짓 술과 고기가 대수겠느냐? 여기서 술과 고기를 나눠 마시고 파계하면 중이라는 이유로 다시는 이런 고된 일 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 무엇하러 중이라는 고된 짐을 달고 나느느냐? 천하에 미련한 것들이로고.”

서흔남은 아예 승려들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쑤셔 넣었고 보다 못한 두청이 승려들 사이에서 나와 서흔남을 떠다 밀어 버렸다. 서흔남은 버럭 화를 내며 두청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술에 취했기도 했거니와 상대는 재빠르기 그지없어 허공만 갈랐을 뿐이었다.

“이 망할 중놈이 간이 부었구나!”

서흔남은 개고기를 삶기 위해 가져다 놓았던 두꺼운 장작개비 하나를 들어 사정을 보지 않고 두청을 향해 매섭게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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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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