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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도에 입대 했으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듯 군대에서의 경험은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다. 그러나 자세히 더듬어보면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해군에 입대하여 28개월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냈다. 대부분의 군생활을 후반기 교육장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보냈는데, 그곳은 이 학교뿐만 아니라 여러 부대들이 일종의 단지처럼 모여 있는 곳이다. 정문에서부터 나 있는 큰 길을 따라서 좌우에 여러 부대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길 끝에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나의 주특기는 이발이었다. 내가 듣기론 육군에서는 따로 이발병을 선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해군은 각 기수별로 이발병을 약간 명씩 뽑아서 교육장에서 이발 교육을 몇 주에 걸쳐 받게 하고 각 함정 또는 육상부대로 보낸다.
나는 이발병으로 차출된 기초군사학교에서 막 퇴소한 병사들에게 이발 교육을 시키는 이발 조교의 역할을 맡았다. 나뿐만 아니라 이발 조교들이 4~5명가량 있었으며, 이발 교관은 오랫동안 외부 이발소에서 이발사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군무원이었다.
가끔씩 사람들은 내가 군대에서 이발병으로 복무했다고 그러면 막 웃는다. 마치 놀면서 군생활 하지 않았느냐는 듯이 말이다. 솔직히 이발병으로서 편한 점이 있기는 했다. 일터가 이발소인지라 남들 찬물로 머리 감을 때 나는 사시사철 온수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로 머리 감았으며, 한여름 뙤약볕이 작열할 때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곳에서 더운 줄 몰랐으니까.
나는 해군 이발병이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예비역 가운데 군생활 동안 힘든 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편한 부대라 하더라도 혹은 편한 직무를 맡았다고 해도 다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기 마련이다.
전역 후 여러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직무가 어렵고 고되면 상대적으로 내무 생활이 편하고, 직무가 쉽고 크게 힘들지 않으면 내무 생활이 상대적으로 고되다는 특징이 있었다. 즉,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몸도 마음도 그저 편하기만 한 군생활을 보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머리를 깎고, 이발 교육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내무생활은 고된 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병장 기간이 8개월이었는데, 병장 3~4개월 차(일명 3~4호봉)로 접어들어야 고참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고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다른 사병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갓 병장을 달았거나 그 이하 계급을 단 사병들은 그야말로 내무실에서 고참 눈치 보며 숨죽여 지내야 했다.
다른 부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대는 전역이 눈앞에 다가오지 않는 이상, 이병이나 병장이나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 끗발이 없는 이발병들은 할 수만 있으면 별 일이 없어도 내무대와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는 이발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가곤 했다.
단지 우리부대가 해군사관학교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군 생활 가운데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대대적인 부대 정비작업이 이뤄지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의 기간이다. 부대 정비는 필요한 일이다. 허물어진 곳을 고치고, 지저분한 곳을 깨끗하게 단장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년 실시했던 부대 정비는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진 작업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시행정의 표본처럼 진행된 일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정문부터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제일 끝에 해군사관학교가 나온다. 참고로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정문 근처에 있었다. 그러니까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가는 길 옆에 우리 부대가 있는 것이다. 매년 3월이 되면 어김없이 해군사관학교 임관식이 열리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임관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하기 때문에 해군사관학교는 물론 그 인접한 다른 부대들 역시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임관식이 열리기 수개월 전부터 우리 부대는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온 사병들을 다 동원해서 멀쩡한 건물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고, 인근 주변을 깨끗하게 보이려고 야산에 낙엽들까지 다 긁어 없애버린다. 심지어 아스팔트 물청소까지 한다.
이 시기가 되면 사병들은 주특기고 뭐고 없이 모두 부대 정비에 동원된다. 말 그대로 막노동을 하는 것이다. 부대 정비로 인해 주간에 하지 못하는 과업들은 야간으로 미뤄진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꼭 필요한 일이기에 동원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부대가 혹 해군사관학교였다면 대통령이 직접 들어오는 곳이기에 부대 정비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부대가 해군사관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서 대통령이 차창 사이로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부대원들 모두가 2~3개월을 매달리다시피 해서 부대를 정비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 지나간다고 몇 개월동안 사병들 청소만 시켜야 하나?
황당한 것은 대통령의 이동경로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헬기를 타고 온다면 아무리 부대 정비를 잘했다고 해도 그간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점이다. 그걸 아는 어떤 부대장은 혹시 대통령이 헬기타고 오다가 부대를 내려다볼까 싶어서 옥상까지 깨끗하게 청소시켰다는 웃지 못 할 일화도 전해진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를 통해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유럽여행 때 그곳 주재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던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그곳 주재원들은 이건희 회장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사실은 이건희 회장 측근 인물들일 것이다.) 엄청나게 신경 써서 준비했지만 정작 이건희 회장은 자신을 맞이하기 위한 아랫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일개 그룹 총수 수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일국의 대통령 행차는 말하지 않아도 그 준비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은 모를 것이다. 자신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지를 말이다.
아무튼 아직도 군대 내에서는 인적 자원을 낭비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군대 오기 전에 골프를 좀 치던 애들에게 골프병으로 장교들의 레슨을 하게하고, 사병에게 장교들이 골프연습장에서 친 공을 줍게 하거나 포클레인으로 몇 번 파면 될 일을 사병 여럿에게 삽자루를 쥐어주고 한나절 동안 땅을 파게 만드는 그런 것 말이다.
인적 자원을 낭비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군대 내에 인적 자원이 남아돈다는 이야기인데 국방부는 병력 감축 이야기만 나오면 전력이 약화된다고 펄펄 뛴다. 이라크가 병력이 적어서 미군에게 패했던가?
부대 앞을 대통령이 지난다고 해서 아까운 인력을 몇 개월씩 청소하는데 사용할 것이라면 병력을 줄이는 게 낫다.
얼마 전부터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자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전투 병력과 상관없이 군대에서 아깝게 낭비되는 젊고 패기 넘치는 자원들을 오히려 산업 발전의 역군으로 전환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군의 개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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