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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는 '영자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조선작의 출세작입니다. 그 시대 최고의 화제작이기도 했습니다. 영자는 소설에서 말합니다.

"아, 식모살이라면 지긋지긋했어. 식모를 뭐 제 집 요강단지로 아는지, 이 놈도 올라타고 저 놈도 올라타고 글쎄 그러려 들더라니까요. 하룻밤은 주인놈이 덤벼들면 다음 날은 꼭지에 피도 안 마른 아들 녀석이 지랄 발광이고. 내 미쳐 죽지 미쳐 죽어."

결국 조선작은 영자를 여차장(버스 안내양)으로 내 몹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팔 하나를 거두어갑니다.

영자는 '외팔이 창녀'가 됩니다. 창녀는 몸뚱어리가 생명입니다. 어디 창녀뿐이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노동자는 전부 몸뚱어리가 생명입니다. 사람들은 애써 그것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외팔이 창녀'라서 영자에게는 손님이 없습니다. 간혹 있다 해도 기겁을 하고 달아나기 일쑤입니다. 어렵게 손님을 치러도 팔 때문에 화대를 놓고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곤 합니다. 이때면 으레 포주인 '나이롱 아줌마'가 나섭니다. 그녀는 걸쭉한 입담으로 남자를 쏘아붙입니다.

"오입하겠다고 찾아 온 사람이 팔뚝은 뭣에 쓰려구 찾노, 구멍만 뚫렸으면 됐지. 팔뚝이 있다면 뭐 잘라 족탕으로 해먹을 건가? 별 으바리 같은 소리 다 듣겠다."

작가는 이쯤해서 작품 속의 '나'를 영자와 연결시킵니다.

'나'는 때밀이입니다. '나'는 이전부터 영자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자가 식모살이 할 때 '나'는 그 집 철공소 직원으로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창숙'이라는 창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결심합니다. 빚을 갚기 위해 월남에 자원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맥없이 뇌까립니다.

"빠삭빠삭하는 달러는 고사하고 남의 나라 전쟁에 팔뚝이나 하나 안 바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었다."

영자와 '나'는 다시 만납니다. 영자는 꿈꿉니다. 전세방을 얻어 '나'와 살림을 꾸리는 게 영자의 소박한 꿈입니다. 영자는 악착같이 창녀 일에 매달립니다. 돈을 버는 족족 '나이롱 아줌마'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일제 철거령이 내려집니다.

창녀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영자는 '나이롱 아줌마'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영자는 사창굴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나'는 영자를 부둥켜안습니다.


이 소설은 73년도에 씌어졌습니다. '영자의 전성시대'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천민자본주의에 일대 경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70년대는 부와 빈곤이 결정되는 시기였습니다. 개발독재가 세를 더해가던 시대였습니다. 그 성장과정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은 철저히 소외되었습니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시작된 70년대는 결국 박정희의 피살로 막을 내렸습니다.

70년대는 역사의 암흑기였습니다. 유신헌법은 그 어떤 자유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학자든 작가든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습니다. 찬성이냐, 침묵이냐! 이런 절망의 시대에 작가 조선작은 <영자의 전성시대>를 내놓았습니다. 영자를 통해 '밑바닥 인생'의 굴곡진 삶을 고발하려 했습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결코 통속 소설이 아닙니다. 뛰어난 '사회소설'입니다.

그래서 <영자의 전성시대>의 마지막 장면이 더 아린지도 모릅니다.

"나는 영자의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이를 악물어 울음을 삼켰다. '이 바보야 누가 널 보고 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랬어. 누가.' 그러나 영자는 마치 장난기 섞인 말투로 '불은 내가 질렀는 걸요'하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나라도 지금 심정 같아서는 어디라도 한 군데 싹 쓸어 불질러버리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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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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