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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공양하는 석조보살좌상이 없어 탑이 외로워 보인다
오대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공양하는 석조보살좌상이 없어 탑이 외로워 보인다 ⓒ 김정봉
문화재는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리에 있어야 제 멋이 난다. 1000년 세월을 견디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훼손을 막는다는 이유로 발문관에 모셔 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강릉 신복사터에도 월정사의 석조보살좌상과 비슷한 석불좌상이 있다. 이 석불좌상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서둘러 신복사터를 찾았다. 강릉에 들어서자마자 이 곳부터 찾은 연유가 여기에 있다.

신복사는 문성왕 12년(850)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굴산사가 847년에 창건되었으니까 범일국사는 굴산사와 신복사를 동시에 짓고 있었던 것 같다.

신복사터 전경, 넓지도 않은 터에 탑과 석불만이 외로이 서있다
신복사터 전경, 넓지도 않은 터에 탑과 석불만이 외로이 서있다 ⓒ 김정봉
그리 넓지 않고 야트막한 산이 둘러져 있는 곳에 자리한 신복사터에는 삼층석탑과 석불좌상만이 외로이 서 있다. 찾는 이 드문 객을 기다리고 있듯이 둘이서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북쪽 대나무 숲 옆으로 나 있는 오솔길은 절터의 옹색함을 다소 가시게 한다.

탑과 석불이 마주보고 서있는 독특한 형상을 여기서만 볼 수 있어 더욱 애정이 간다
탑과 석불이 마주보고 서있는 독특한 형상을 여기서만 볼 수 있어 더욱 애정이 간다 ⓒ 김정봉
탑과 석불좌상이 마주보고 서 있는 독특한 형상은 이제 이 곳에서만 볼 수 있어서 무한한 애정이 간다. 월정사의 석조보살좌상은 박물관에 들어가 있고 한송사터의 석조보살좌상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하나 전시도 해 놓지 않아 통 볼 수 없다. 다만 오죽헌 박물관에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을 따름이다. 용산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옮겨진다 하니 그 곳에서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주위의 풍광과 어우러져 햇살을 받고 자연 바람을 쐬며 짓는 미소와 박물관에서 희미한 조명 아래 짓는 미소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침의 미소와 저녁의 미소가 어찌 같으며 눈·비 내리는 날의 미소와 맑은 날의 미소, 혹은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의 미소가 어찌 같겠는가?

탑을 향해 공양하는 석불좌상
탑을 향해 공양하는 석불좌상 ⓒ 김정봉
석불좌상은 탑을 향해 공양하는 모습으로 왼쪽 발을 약간 들어 올린 채 꿇어앉아 있다. 복스러운 얼굴에 입은 꽉 다물었는데 이가 다 빠진 듯, 합죽한 얼굴을 하고 있고 있다. 입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는 1000년의 세월 동안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지금 나도 이 미소에 빠져 들고 있다.

석불좌상의 미소
석불좌상의 미소 ⓒ 김정봉
대개 불상은 현실의 얼굴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은 철원 지방의 힘 좋은 아저씨 얼굴을 하여 당시 호족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고 서산마애삼존불은 볼이 터질 듯한 어린애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다시 초급답사자의 티를 내보자. 이 석불좌상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머리 위에 원통 모양의 높은 관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팔각 지붕돌을 이고 있다. 이 지붕돌은 불상을 눈과 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특히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용미리 석불입상과 같이 고려시대 야외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만들면서 유행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사각형의 지붕돌이 일반적이지만 팔각형은 드문 경우다.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 몸체부를 세운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과 중후한 멋이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이형석탑이다. 월정사처럼 석탑과 석불이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을 마음 속에 깊이 담아두기 위해 보고 또 본다.

강릉하면 먼저 경포대 아니면 오죽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강릉의 남쪽 구정면 학산리의 굴산사터를 빼놓고 강릉을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학산리 정경, 강릉에는 '살아서 학산, 죽어서 성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산은 살기에 좋다
학산리 정경, 강릉에는 '살아서 학산, 죽어서 성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산은 살기에 좋다 ⓒ 김정봉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신라말 문성왕 9년(847년)에 창건하였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파의 본산이다. 지금은 폐사지이지만 한 때는 쌀 씻는 물이 동해에까지 흘러갈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범일의 탄생설화는 흥미롭다. 학산마을에 사는 한 처녀가 석천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니 물 속에 해가 떠 있어 버리고 다시 떴는데도 여전히 해가 있었다. 그 물을 마신 뒤로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는데 아비 없는 자식이라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버렸으나 아이를 낳은 처녀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아 그 곳에 다시 가보니 학과 산짐승이 젖을 먹이고 있었다. 이를 비범하게 여겨 데려다 키웠는데 이가 바로 범일이었다 한다.

마을에 설화 속의 석천(돌샘)과 학바위가 있어 범일의 탄생설화를 더욱 신비롭게 한다. 마을 언덕빼기에는 그의 부도가 있다. 당간지주와 이 부도가 있는 자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어 이 사찰이 보통 큰 사찰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사자를 돋을 새김 한 8각의 지대석 위에 접시 모양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하대석(기단부 아래 받침돌)을 놓았는데 모두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를 장식하였다.

굴산사터 부도, 지대석 위의 접시모양의 받침돌이 특이하다. 이 받침돌을 끼워 넣어서 그런지 균형을 좀 잃은 듯이 보인다
굴산사터 부도, 지대석 위의 접시모양의 받침돌이 특이하다. 이 받침돌을 끼워 넣어서 그런지 균형을 좀 잃은 듯이 보인다 ⓒ 김정봉
지대석 위의 접시모양의 받침돌은 예전 사진을 보면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에 보수하여 세운 것 같다. 중대석(가운데 받침돌)은 소용돌이 치는 구름무늬로 8개의 기둥을 표현하고 그 사이에는 연주하는 비천왕과 공양상이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상대석(기단부 위의 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었다. 부도 몸체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8각의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 위에는 연꽃무늬를 돌린 구슬이 있다.

굴산사터의 하이라이트는 논 한가운데 서 있는 당간지주다. 작고 소박한 우리의 문화재들과 좀 동떨어진 모습으로 장엄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강릉의 힘을 보는 것 같다. 당간지주 멀리 산들이 둘러쳐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힘차다. 장엄하다. 당당하다.

당간지주 측면, 논 한가운데 우뚝 솟아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당간지주 측면, 논 한가운데 우뚝 솟아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 김정봉
높이가 5.4m로 우리나라 현존하는 당간지주 중에 제일 크다. 당간지주 두 기가 하나의 석재로 아래 부분이 땅에 묻혀 있어서 실제의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소박한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에게는 새로운 힘을 느끼게 해주고 크기에 자존심이 상해 왔던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될 정도다.

이렇게 큰 돌을 어디서 구했는지도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을 다듬고 세운 기운이 대단하다. 멀리 보면 막돌 두 기를 그냥 세운 듯이 보인다. 당간지주 꼭대기의 바깥 부문을 도려 낸 것을 제외하면 가공하지 않아 자연석의 미를 살리고 있다.

당간지주 꼭대기 부분을 둥글게 깎아내린 것을 제외하면 자연석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당간지주 꼭대기 부분을 둥글게 깎아내린 것을 제외하면 자연석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 김정봉
굴산사는 앞서 말한 대로 구산선문의 굴산사파의 본산이고 이 절을 세우게 되는 데는 지방호족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지방호족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힘차고 당당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당간지주 정면, 측면과 모습이 많이 다르지만 어찌 보면 힘이 더 느껴지기도 한다
당간지주 정면, 측면과 모습이 많이 다르지만 어찌 보면 힘이 더 느껴지기도 한다 ⓒ 김정봉
굴산사 당간지주는 논 위에 우뚝 서 있다. 행여나 굴산사터를 복원한다고 주위에 건물을 세우는 우려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넓은 대지에 우뚝 솟은 지금의 모양이 건물을 지어 주변을 답답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멋이 있다. 불교문화를 떠나 우리의 힘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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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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