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움츠렸던 어깨를 그제야 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인삼을 팔곤 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 때문에 저는 그 다리를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한참이나 떨어진 철길을 택해서 집을 향하곤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인삼 행상을 하는 어머니가 싫어 저는 어머니의 존재를 숨기곤 했었습니다.
그 날 저는 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 때문에 어머니는 장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 믿음은 곧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머니는 그린 듯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땅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산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신문지에 바위옷(인삼을 좀더 오래 보존하기 위해 사용하는 풀 종류의 한 가지)을 깔고 그 위에 인삼을 얹더니 보기 좋게 포장을 합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손님에게 그것을 내밀고 손님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곳을 떠납니다.
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저를 스쳐지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학생마저 저를 스쳐 지나갈 때 어머니는 제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이 가, 어이 가거라!"
그러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대신 눈물에 가득 찬 모습만이 제게는 보일 뿐입니다.
그때 '꺽다리'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돌아서고 어머니는 제게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녀석을 향해 뛰었습니다.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저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녀석이 말했습니다.
"비가 많이 온다. 자, 빗물을 닦아라!"
녀석이 제게 손수건을 주었습니다. 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녀석이 말했습니다.
"희우야, 우리 영화보지 말까? 소주나 한 잔 할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날 저는 취하도록 마셨고 녀석은 집까지 저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녀석은 제가 사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도 녀석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골목길을 벗어날 때쯤 저는 기어이 토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녀석에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친구야!"
그때 제 나이 슬픈 열일곱 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