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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허의 나무들, 그 또한 세월이 흐르다 보니 건물 붕괴의 주범인 거대한 나무 뿌리들이 오히려 붕괴 일보 직전의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름다운 폐허의 나무들, 그 또한 세월이 흐르다 보니 건물 붕괴의 주범인 거대한 나무 뿌리들이 오히려 붕괴 일보 직전의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 김정은
아직도 꿈꾸고 있는 아름다운 폐허

완벽한 폐허, 그러나 이처럼 경이롭고 아름다운 폐허가 또 있을까?

사라진 600년 영화를 한 순간의 꿈처럼 너무나 쉽게 돌무더기에 묻었지만 그 꿈은 절대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나무의 뿌리로 다시 태어나 끊임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폐허 이후' - 도종환


사라진 600년 영화는 비록 돌무더기에 묻혔지만 그 꿈을 절대 포기를 모르는 나무뿌리로 다시 태어나 뻗어나고 있다.
사라진 600년 영화는 비록 돌무더기에 묻혔지만 그 꿈을 절대 포기를 모르는 나무뿌리로 다시 태어나 뻗어나고 있다. ⓒ 김정은
아름다운 폐허 타 프롬 사원은 발굴 초기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한 사원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당의 구석구석에 침투해서 이미 사원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마어마한 케이폭(Kapok) 나무 내지는 반얀(banyan) 나무의 뿌리 때문이다.

이 나무들로 인해 건물형태의 원형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붕괴되었지만 그 또한 세월이 흐르다보니 건물에 얼기설기 뿌리내린 건물붕괴의 주범인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오히려 붕괴 일보 직전의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뱀 모습의 나무뿌리
뱀 모습의 나무뿌리 ⓒ 김정은
현재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이 타 프롬의 경우에는 나무들의 상태를 이대로 현상 유지하기 위해 성장억제제를 투여하고 불필요하게 뻗어가는 나뭇가지들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을 뿐 대대적인 복원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거대한 나무뿌리들을 모두 제거하고 사원을 복원하기에는 지금 이대로의 원시적인 신비감이 뿜어대는 매력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좌)보석의 방 ,우) 통곡의 방
좌)보석의 방 ,우) 통곡의 방 ⓒ 김정은

어머니와의 교감이 스민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

그러나 이 타 프롬에는 경이로운 나무뿌리와 위태위태한 건축물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자야바르만 7세의 절절한 회한과 사랑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보석의 방과 통곡의 방이라는 이름의 색다른 구조물이다.

보석의 방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방 전체를 보석으로 잔뜩 꾸몄다는 방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보석 하나 찾아볼 수 없지만 천장까지 빼곡하게 뚫려 있는 구멍들 모두가 보석이 들어갔던 자리이고 보면 상상만으로도 방 전체가 얼마나 호화로웠을지 알 수 있다.

반면 통곡의 방은 일설에 자야바르만 7세의 모친이 나병에 걸린 아들 자야바르만 7세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이 방에 와서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통곡의 방에 들어가 귀퉁이에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면 그 소리가 큰 울림이 되어 크게 들린다고 해서 시험 삼아 가슴을 쳐보았더니 그 소리가 청진기로 내 심장박동소리를 듣는 것처럼 확대되어 들린다. 음이 확산되게 만드는 건축적인 비밀이 숨어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구조상 그다지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스스로 수많은 건축물을 남긴 자야바르만 7세, 그는 어머니를 위해 타 프롬을 건설했고 아버지를 위해 프레아 칸을 건축했으며 자신을 위해 바이욘사원을 건설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사원과 부속시설을 보수 건립하고 인도차이나 일대의 대제국을 건설하는 명민함을 발휘했지만 숱한 신전 건립과 1200년 앙코르 톰(Angkor Thom)으로의 천도(遷都) 비용을 감당치 못해 국가 재정이 결핍되어 급속도로 대중에 유리되기 시작했다.

대중과 유리된 정권의 최후가 이런 걸까? 600년이라는 기간 동안 번영해오던 한 왕조가 일 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채 폐허로만 남겨진 사건에서는 분명 중요한 요인이 있지 않을까? 순간 단일민족인 태국에 패퇴한 이질적인 구성의 앙코르 제국에 대해 피노(Finot)가 했다는 말을 새삼 되새기며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겼다.

"외국의 유입된 사상에 가장 잘 교육된 귀족층은 번뜩임으로 뒤덮였지만 거친 크메르 민중으로부터는 유리되어 있었다.

침략은 인간을 죽음으로만 몰아넣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침략자의 공습으로 엘리트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그들에 의해 응축되었고 그들에 의해 성취되었던 문명을 사라지게 했다.(중략)

앙코르인들은 아마도 침략을 자신의 해방으로 환영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놀라게 한 거대한 사원건축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한 것은 물론이고 제국의 토양을 가꾸는 부역에 시달렸던 일들을 이제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와트> 중에서- 서규석

덧붙이는 글 | 앙코르 와트를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7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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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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