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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너드랑의 애장 모양을 한 돌탑
돌너드랑의 애장 모양을 한 돌탑 ⓒ 한성수

이제 정상이 보입니다.

정상에서 만난 사람

해발 566.7m 봉림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을 먹습니다.

"아, 참 맛있겠다. 다음에는 우리도 컵라면을 가져옵시다. 자, 다들 조심해서 내려갑시다."

30여명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산을 내려갑니다. 가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좀 다릅니다. 모두 2인 1조로 뒷사람은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있습니다. 뒤에 계신 분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갑자기 '꿍' 넘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밑에서 달려옵니다. 다행히 다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고함을 지르며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스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조잘대던 아이들도 이젠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단단히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내려오는 길

이제 용추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옵니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더러 녹아서 길이 미끄럽습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그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이 미끄러운 길을 올라와서 그 가파른 길을 내려가고 있겠지요. 우리는 그들이 무사히 당도하기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다시 작은 봉우리의 정상입니다. 표지석은 '(구)내봉림산, (속)내정병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 어떤 이름이 진짜 이름이에요?"

"봉림산은 글자 그대로 '봉황이 깃든 산'이라는 뜻이 아니냐!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에 불교가 교종은 5교, 선종은 9산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때 참선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종의 봉림산문이 이 곳에 있었던 것이 이 산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 일본강점기에 정병육성이라는 미명하에 산 이름을 정병산으로 고쳤다고 들었다. 너는 어떤 이름이 진짜 같니?"

산에서 다시 큰 자루를 든 젊은이 네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옷에는 산림청소속 공익요원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들의 양손에는 그득하게 귤껍질을 들고 있습니다.

"귤껍질은 그냥 두어도 썩을 텐데?"
"귤껍질은 잘 안 썩는데도, 사람들이 모르고 자꾸 버리네요."

나는 슬그머니 무안해집니다. 오다가 귤을 먹고 껍질을 버렸거든요. 어쨌든 모두 이리 신경을 써 주니 산이 깨끗한가 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위험한 로프를 타고 가야 했던 곳을 이제 나무계단을 만들어 안전하게 해 놓아서 참 좋습니다.

용추계곡에는 얼음이 꽁꽁 얼었는데, 그 사이로 시냇물이 졸졸 흐릅니다. 나는 찬물에 손을 씻고, 아이들은 얼음을 깨어서 입에 넣습니다. 계곡입구 포장마차에서 부추전 한 접시를 안주로 조 껍데기 막걸리 한 사발을 동서와 나눠 마십니다.

벌써 사방이 어둑어둑해 오고, 채 차지 않은 둥근달이 우리를 곱게 비춥니다. 어제는 그리 다투던 오누이가, 이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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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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