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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준수가 드디어 걷기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보조기를 이용해서 병원 복도를 오가거나 휠체어를 밀고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연습을 합니다.

발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서 돌아눕지도 못하던 녀석이 이젠 보조기를 이용해서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잠시 한 눈 팔고 있다 보면 녀석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걱정이 되어 경사로며 치료실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찾아보아도 녀석은 찾기 힘듭니다. 시간이 꽤나 흐른 뒤 준수가 병실로 돌아옵니다. 어디 갔었냐고 물어보면 화장실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 녀석은 배변의 어려움을 안고 살기 때문입니다.

새해 들어 준수가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확실하게 안겨준 것입니다. 예상보다 빨리 다리의 움직임이 좋아지면서 본격적인 걷기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건 준수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재활 치료의 성공 여부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준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일이든지 일단 몰두하기 시작하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젠 그 장점이 그 어떤 걸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준수만의 장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린 나이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열심히 애써준 준수가 고맙기만 합니다.

주말을 함께 보낸 아빠가 돌아갈 시간이 되자 준수는 처음으로 휠체어와 보조기에 의존하지 않은 채 걸어 나와 아빠를 배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걱정을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황소고집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여유 있게 녀석의 배웅을 받기는커녕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 건물을 나섰습니다.

하는 수 없이 준수 곁에는 아내가 꼭 붙어 서서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욕심 같아선 엄마 손도 뿌리치고 걷고 싶지만 아직은 제 마음대로 안 되는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준수는 저렇게 의연하게 살아왔는데 정작 못난 아빠는 좌절과 상심의 나날을 보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드나든 지 백여 일이 지났습니다. 그 많은 날 중에서 오늘처럼 벅찬 가슴으로 병원을 나서기는 처음입니다. 떠나는 아빠를 향해 손 흔드는 준수에게 환하게 아주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얘기했습니다.

"준수야, 일주일 뒤에 만나자."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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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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