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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강태공 두고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래서 빙어가 잡힐까? 아이도 춥다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린 강태공 두고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래서 빙어가 잡힐까? 아이도 춥다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김규환
종종거리며 꽁꽁 언 강바닥에 올라 얼음판을 깨고 낚시질을 하다가 한 놈 걸려 올라오면 고기보다 사람이 더 놀란다.

“야! 잡았다.”
“어디 어디?”

파닥파닥 팔팔 살아 있다. 맑고 싸늘한 공기에 유난히 반짝이는 은백색 물고기를 창자도 꺼내지 않고 손가락으로 덥석 잡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통째 입에 넣고 야금야금 씹어 먹어 보니 시원한 오이 맛이다.

이 기분 어디에 견줄까. 내겐 애초에 원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걸까. 짜릿한 경험 한번에 에스키모족이 부럽지 않다. 얼음 깨다 보니 등줄기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낚시 드리우고 조금만 기다리면 까딱까딱 입질을 합니다. 수심 1~2m 가량 내려 시간과의 싸움 오래 하지 않아도 줄줄이 매달려 옵니다. 현지 주민은 구멍을 두개 뚫어 그 사이에 그물을 넣어 한 자루씩 잡는답니다.
낚시 드리우고 조금만 기다리면 까딱까딱 입질을 합니다. 수심 1~2m 가량 내려 시간과의 싸움 오래 하지 않아도 줄줄이 매달려 옵니다. 현지 주민은 구멍을 두개 뚫어 그 사이에 그물을 넣어 한 자루씩 잡는답니다. ⓒ 김규환
멋모르고 올라와 화들짝 놀란 이놈 이름은 빙어(氷魚)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니 정말 창자가 없는지 아무리 찬찬히 뜯어 봐도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한 째끔한 것 하나 달랑 있으니 차라리 없다고 하는 게 낫겠다.

그새를 참지 못해 꼬리를 흔들며 입 천장과 혀 사이에서 마지막 발버둥을 친다. 사람도 지레 놀라 징글맞게 몸서리를 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질겅질겅 씹어 본다. 보드라운 살점에 고소한 뼈가 동시에 씹혀 사라진다. 행여 잠시 잡고 있노라면 사람 얼굴에 초고추장 범벅으로 만드니 사람 추잡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비린내 하나 나지 않고 내장에서도 쓴맛 전혀 없다. 뼈도 있는 듯 없는 듯 죄다 씹히니 서로 훔쳐 먹듯 잡히는 족족 훑어 가니 낚시질 하는 사람 이거 한점이나 먹어 보겠나. 입 안에 조금 남겼다가 쓰디쓴 소주도 한잔 털어 넣으니 깔끔한 향기 입안 가득 퍼져 두 향이 절묘한 조화를 부리고는 꼬르륵 감질나게 넘어가니 추위와의 전쟁도 이젠 끝이다.

미리 잡아 놓은 빙어 떼.
미리 잡아 놓은 빙어 떼. ⓒ 김규환
아이구나. 사람들은 춥다고 굴 안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빠져 나올 줄 모르는 1월 오후 서울 복잡한 세상 문 걸어 잠그고 미사리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팔당대교를 건너 두물머리 지나 양평에 이른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내달렸던 건 순전히 얼음 속에서 건져 올리는 물고기가 아른거리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길이의 날렵한 빙어를 향해 고향을 찾아가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붕 떠서 강을 거슬러 오른다. 양평에 빙어가 없을까마는 내친 김에 홍천 화양강 달려가니 군데군데 낚시 사라는 유혹이 즐비하다. 거진 다 온 건가.

강릉엔 겨울바다가 좋을 때다. "신남리가 어드메요?" 묻지도 말고 앞만 보고 달리다 두 길-44번과 46번 국도가 만나면 소양강 넌지시 고개를 내민다. '소양강처녀'가 맘을 설레게 하고, 통속적인 노랫말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에 사나이 눈물 질금거린다. 소양강 뱃길에 몸을 실을 뻔했던 청춘이 나였다. 아서라. 가던 길마저 가자.

즉석에서 빙어 초고추장에 찍어 날름 먹는 맛이 첫째입니다.
즉석에서 빙어 초고추장에 찍어 날름 먹는 맛이 첫째입니다. ⓒ 김규환
'하늘이 내린천'까지 달릴 필요도 없이 선착장이 드넓게 펼쳐지면 발을 내린다. 소양호 신남리 광활하게 펼쳐진 얼음 덩어리 위에 몸을 내던졌다. 쌀쌀한 바람 다소 불지만 이까짓 추위가 대수인가.

사람들 벌써 방방곡곡 몰려와 얼음 축구도 하고 팽이치기 하느라 바쁘다. 해가 지기 전 얼른 표 딱지 하나 끊어 낚시 들고 달려간다. 금강산도 식후경,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허기와 빙어에 대한 그리움 꾹 참고 온 사람들 임시 노점에 앉아 오늘의 주인공을 맛보느라 혼이 나가 있다.

낙지 한 마리 통째 먹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빙어 요놈 촐싹거리는 것쯤이야. 튀지 않도록 물에 담가진 민물고기를 산 채 먹어도 방태천, 내린천 급류와 십이선녀탕 백담계곡 맑은 물에 설악산, 구룡령, 한계령, 진부령, 미시령 넘지 못하고 황혼이 짙게 물든 소양강으로 모이니 디스토마 걱정도 팔자다.

한번 보고 덜컥 세간을 전라도 촌구석에서 이곳까지 싣고 와 내리도록 빼어난 풍광에 젖었던 것도 엊그제다. 예전에 달걀 삶은 것 대여섯 개 먹어 보면 닭똥 냄새가 났지만 물리지 않고 당기는 데 주저할 일 없이 집어 먹는 내 손을 말릴 재간이 없다.

아삭바삭 빙어튀김은 아이들과 아내가 제일 좋아합니다.
아삭바삭 빙어튀김은 아이들과 아내가 제일 좋아합니다. ⓒ 김규환
빙어회 무침 한 사발. 일전에 혼자서 이걸 다 먹다가 배불러 힘들었습니다.
빙어회 무침 한 사발. 일전에 혼자서 이걸 다 먹다가 배불러 힘들었습니다. ⓒ 김규환
초고추장에 젓가락이 없으면 손가락만 있어도 빙어회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다. 회가 일품이면 무침도 웬만하다. 매콤하고 달콤하게 둘둘 비벼 놓으면 이놈이 육수를 저도 먹어 보겠다는 통에 뱃속까지 양념이 쳐들어갈지 모른다. 양념 한번 끝내 주게 되었다. 식은 밥 몇 숟갈 비벼 주자.

여기에 주인장 손끝 솜씨가 따라주니 튀김도 바삭바삭 깔끔하다.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조리법이 있을까? 튀김옷만 입혀 끓고 있는 식용유에 바싹 튀겨내기만 하면 같이 갔던 아내와 아이들도 맛있다고 야단이다. 이왕 튀긴 것 탕수어육(糖水魚肉) 한점 집어 먹어보자. 만사가 귀찮도록 배부르다.

빙어조림 한 냄비에 1만원인데 두세명이 밥 먹기 딱 좋습니다.
빙어조림 한 냄비에 1만원인데 두세명이 밥 먹기 딱 좋습니다. ⓒ 김규환
빙어를 튀겨 탕수육과 마찬가지로 양념을 올리면 사르르 녹습니다.
빙어를 튀겨 탕수육과 마찬가지로 양념을 올리면 사르르 녹습니다. ⓒ 김규환
예서 끝내면 이 멀리까지 온 본전을 뽑지 못하거니와 이러다 입춘(立春) 지나면 아숨찮다. 언제 얼음장이 꺼질지 모르고 이 맛 또한 어찌 변할지 장담하지 못하여 이곳저곳을 넋 나간 강아지처럼 쏘다니다가 빙어조림을 하나 시켰다.

두툼하게 무를 깔고 칼칼하도록 매옴하게 풋고추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여 보글보글 낮은 불에 끓이니 물이 졸아들면서 아까까지 나불대던 고놈도 어쩔 수 없는 듯 숨이 멎고는 쭈악 뻗어 버렸다. 생물이라 부서지지도 않고 국물이 끓는 강도에 따라 위아래로 춤을 추니 한 숟가락 가지런히 떠서 먹으니 얼씨구나 좋다. 술 한잔이 빠질 수 없다.

아쉬워 못내 아쉬운 건 한계령을 넘지 못한 것도 아니요, 백담사 미시령 고개 넘어 속초를 향해 덕장 찾아 가지 못함이 아니다. 배는 부르되 허겁지겁 먹다 보니 밥 한술 빠진 것도 아닌데 허전한 느낌은 왜일까.

빙어젓갈 찾아 1시간을 근처에서 헤맸답니다. 600g에 1만원 합니다. 다소 짜지만 집에와서 양념을 다시 하였더니 적당해져서 식사 때마다 먹고 있습니다.
빙어젓갈 찾아 1시간을 근처에서 헤맸답니다. 600g에 1만원 합니다. 다소 짜지만 집에와서 양념을 다시 하였더니 적당해져서 식사 때마다 먹고 있습니다. ⓒ 김규환
한 사나흘 머물러 빙어를 해부하듯 요리조리 갖고 놀며 즐기고 싶은 것도 아니다. 세상 천지에 딱 한 곳, 한 집에만 있는 마지막 코스를 향해 떠난다. 풀코스를 완성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물어물어 윗마을 옛길 남전리 약수터에 찾아가니 주인장 빙어젓갈 놔두고 어디로 갔을까?

무작정 땅굴에 들어가 뚜껑을 열고 아무 양념하지 않은 짭쪼름한 고기를 한점 찍어 소태맛을 보노라니 "누구요?"한다. 화들짝 뚜껑을 닫으면 훔쳐 먹으러 온 사람으로 알 것이니 일부러 태연한 척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한 두 근 싸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와 컬컬한 양념해서 밥에 올려 먹고야 내 욕망이 잠시 멈췄을 뿐이다. 아직도 뇌리에 소리 없이 파딱이는 빙어와 20cm 넘게 꽁꽁 언 얼음 그리고 소양강과 인제가 그립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옮기는 데 천근만근이었다. 다음엔 올챙이국수나 후루룩 떠먹으러 옥수숫대 초라하게 서 있는 집에 가련다.

축제 주최측에서 만들어 놓은 얼음 조형물에서 바라본 소양강. 배용준도 만날 수 있습니다.
축제 주최측에서 만들어 놓은 얼음 조형물에서 바라본 소양강. 배용준도 만날 수 있습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빙어맛 찾아 인제를 12월 말에 한 번, 지난 목요일에 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오늘이 '제8회 인제빙어축제' 마지막 날입니다. 설 전후로 충분히 다녀오실 수 있습니다.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인데 올 2월에 음식과 홍어를 다룬 책이 따로 나올 계획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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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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