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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극 춘향가 중에서
ⓒ 국립국악원
세계 무형 유산으로 선정된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분라쿠'가 한 무대에 올랐다. 국립국악원은 29, 30일 이틀 동안 예악당에서 판소리-분라쿠 교류공연을 시작으로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하는 서막을 열었다.

김철호 국립국악원 원장은 "한·일간에 어려운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전통 문화를 교류하고, 서로 이해·공유하는 속에서 과거사 문제를 치유해 나가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하는 문화교류의 의미를 부여했다.

1부에는 판소리와 창극으로 구성한 ‘춘향가', 2부에는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 작품 ‘쓰보사카관음영험기(壺坂觀音靈驗記)'가 선보였다.

▲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열창하는 김수연 명창
ⓒ 국립국악원
1부 첫째 마당에서는 김수연 명창의 판소리, 춘향과 몽룡이의 풋풋한 사랑을 속삭이는 '사랑가'로 막이 올랐다. 둘째 마당에서는 '옥중상봉'부터 '동헌어사출도'에 이르는 내용을 창극으로 보여 줬다.

그동안 도창(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는 일을 맡은 악인)으로 불려 극적 긴장감이 약화되던 부분을 출연자들이 다 같이 부르는 제창과 도창의 구조로 나누어 창극화함으로써 웅장함과 신명을 더했다. 옥중에서 이몽룡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춘향이의 애절한 구음 살풀이는 무대 한 켠의 과거 회상의 춤으로 풀어졌다. 임 그리워 구구절절 표현되는 춘향이의 마음이 심금을 울려, 관객들의 눈물을 찍어내게 만들었다. 창극화한 춘향전은 우리의 전통예술문화 형식인 가무악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창극이라는 형식이 대중들에게 가장 잘 어필할 수 있게 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전통문화 공연장을 자주 찾는다는 박은혜씨는(22. 대학생) "배역들 연기도 너무 좋았고, 극적인 장면도 잘 구성되어 있어 감동적이었다"며 판소리의 극적인 연출을 위해 연극적인 장면 처리의 다양한 시도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이어 2부에서는 대표적인 분라쿠 작품 ‘쓰보사카관음영험기(壺坂觀音靈驗記)'로 일본 전통 문화에 생소했던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300년의 역사를 지닌 분라쿠는 일종의 인형극으로 샤미센(일본전통악기) 반주에 맞춰 극의 진행자인 다유(太夫)가 대사를 노래하면, 인형 조정사들이 130cm 크기의 인형들을 움직여 연기를 한다. 대사와 극이 분리된 형태로 예전의 무성영화 혹은 중국의 그림자극과도 흡사한 느낌이었다.

일본 관서지방 쓰보사카 절의 전설을 바탕으로 쓰인 분라쿠 작품 '쓰보사카관음영험기'는 맹인 사와이치와 아내 오사토 부부의 지극하고 순수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것으로, 맹인 남편이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끊자, 그 뒤를 따라 아내도 목숨을 끊었지만 부처님의 영험한 힘으로 되살아나 상봉한다는 내용이었다.

▲ 분라쿠 작품 ‘쓰보사카관음영험기'의 맹인 사와이치와 아내 오사토 부부 인형. 인형 하나를 세 사람이 조종하여 섬세한 동작까지 표현할 수 있다.
ⓒ 국립국악원
샤미센 반주에 맞춰 장편 서사시를 노래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분라쿠는 표정까지 담아내는 정교한 인형조작과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은 무대장치로 일본문화가 어떻게 포장되어 관객들에게 다가서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세워놓은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같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나, 신발 신고 바느질하는 인형의 모양이 너무 섬세하게 표현을 잘했다. 무대 장치 또한 완전한 일본식으로 사실적 묘사에 일본 정서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며 김민정(29. 국제교류재단근무)씨는 분라쿠를 본 소감을 말했다.

우리 문화에 애착이 많아 일주일에 한번은 꼭 국악원 공연을 관람한다는 박태식(47. 공무원)씨는 이번 두 작품을 보며 "우리 전통 예술에 대해서 배경 설명 없이도 누구나 느낄 수 있게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하며 독특한 우리 것, 한국적인 정서가 좀 더 세밀히 표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역시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였고, 창극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못지않은 가능성을 보았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번 판소리·분라쿠 공연은 3월에는 일본 도쿄 국립극장에서도 열린다.

한국과 일본은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고 이에 따라 40여 건의 정부 주도 사업과 180여 건의 민간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관련 문서 공개로 위안부나 징용에 동원된 피해자 등 일본이 조선에서 저지른 만행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 선행되지 않은 채 치러지는 '한일문화교류'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나가자 미래로, 다함께 세계로’라는 '한·일 우정의 해'의 구호가 가슴에 선뜻 와 닿지 않음을 느끼는 것은 기자만의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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