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설이 내린 비엔나의 풍경
초설이 내린 비엔나의 풍경 ⓒ 배을선
“소설가 잭 런던에 의하면
강철은 시련으로 단련된다는데.
술꾼 000은
무엇으로 단련될까?
네가 보고 싶다.”

“복권 당첨돼 이 더러운 밥벌이를 집어치워야지 원…….”

“어쨌거나 세월은 또 가는데.
아픈 부친의 고향 ‘나고야’도 데려갈 수 없는
허랑방탕한 아들은 어떤 방식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나.
빈, 거기에도 누런 해가 뜨더냐?
다시는 누더기 같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마라.”

“불어로 '운명(데스티니)'을 어떻게 쓰냐?”

“아무리 몸부림쳐도 바뀌지 않는(혹은, 않을)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가 혼자서 몽떼를 마셨다. 너는 어디 있느냐?”


겨울 두달 동안 눈이 내리지 않더니만 매일같이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겨울 두달 동안 눈이 내리지 않더니만 매일같이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 배을선
겨울이 되니 가끔씩 글을 써 보내는 한국친구의 편지가 점점 더 우울해진다. 편지라기보다는 자기연민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구차한 삶, 병환으로 누워버린 아버지, 언제나 함께 해야 하는 술과 담배, 허전함과 외로움.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결핍… .

이런 지리한 삶의 단편들은 어디에 살든 매한가지다. 부유한 선진국 오스트리아에도 가난은 존재하며, 물질의 결핍, 애정의 결핍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특히 빈곤한 자들에게 겨울은 고문의 시간이다. 눈, 바람,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이 함께 하는 겨울의 한파는 공포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설(初雪). 겨울이 된 뒤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말한다. 물론 알프스산맥으로 유명한 이곳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도 첫눈이 내렸다. 어설프게 내린 첫눈은 어느새 녹아 사라졌다. 그 이후 지리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에 한참동안 눈이 오지 않더니만, 결국은 폭설로 이어지고 말았다.

눈의 발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눈의 발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 배을선
오스트리아 전국에 50센티미터가 넘는 눈이 한 이틀간 계속 되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눈이 내리고 있다. 이곳의 눈은 혼자 오지 않는다. 언제나 강한 바람을 몰고 온다. 때문에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지 땅에서 솟구쳐 올라오는지 구분이 불가하다. 그야말로 눈의 발광이다.

내리는 눈이 반갑지 않은 이유에는 순수함의 결핍에 있다. 영화 <토스카나의 태양아래서>에서는 ‘나이를 먹어도 순수함을 잃지 않아야 된다’는 대사가 나온다. 모두가 바라지만 모두가 지킬 수 없는 것. 순수함은 가난한 자들에게 있어 허영과 마찬가지다. 허구한 날 계속되는 삶 속엔 순수함보다 지긋지긋함이 먼저 둥지를 튼다.

쌓이고 쌓이는 눈. 내리고 또 내리는 눈.
쌓이고 쌓이는 눈. 내리고 또 내리는 눈. ⓒ 배을선
시험도 끝나고 2월 방학을 맞았건만 가난한 유학생이 머물 곳은 좁은 방 한 칸이다. 눈이 내려 좋은 이유는 단 한가지다. 어차피 돈이 없어 외출을 못하는 자에게 밖으로 나갈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 데에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 한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 돈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쓰일 것이다. 그래도 2월은 다른 달에 비해 며칠이 짧다. 그것 하나를 위안 삼으며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볼프강 괴테의 비극 <파우스트> 1편을 두꺼운 사전을 펼쳐가며 아주 천천히 읽는 일이다.

눈꽃이 되려는가, 꽃눈이 되려는가.
눈꽃이 되려는가, 꽃눈이 되려는가. ⓒ 배을선
‘파우스트’는 독일어로 ‘주먹’이라는 뜻이다. 괴테가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파우스트>를 쓰기 전에 독일에는 이미 파우스트의 전설이 존재했다.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지식의 힘으로 지상의 향락을 제멋대로 추구하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이다. 중세의 어두웠던 신앙에 의하면 이러한 욕망과 향락은 그것 자체가 죄악이었기 때문에 전설상의 파우스트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는 1, 2부 모두에서 구원받는다.

파우스트처럼 지식의 힘만으로 향락을 누릴 수 있던 유토피아의 시대가 과연 있었던가. 자본의 사회에 즐거움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부유함이다. 향락은 좋은 것. 그러나 아무나 누릴 수 없다. 없는 자들에게 긴 겨울의 한파는 가장 시리고 질긴 투쟁의 시간이다.

나뭇가지에 걸린 눈
나뭇가지에 걸린 눈 ⓒ 배을선
어디를 가든 없는 자들에게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의 전세방과 비엔나의 전세방에서 친구와 내가 보는 것은 붉은 해가 아니라 누런 해다. 연민과 외로움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삶이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친구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이말 뿐이다.

"서로 줄 것 없는 처지의 우리들이 나누어야 할 것은 모호한 희망뿐이지 않나? 어찌되었건, 봄이 올 것이다."

야외테이블에도 한가득 눈이 쌓이고 있다.
야외테이블에도 한가득 눈이 쌓이고 있다. ⓒ 배을선

가난한 자들의 겨울
- 정유찬


서러운 사람들,
파편 같은 슬픔의 조각을
어두운 하늘에 빛나게 걸어 놓고
겨울의 새벽을 딛고 거리로 나선다.

외로움 지난 외로움
슬픔을 넘어선 슬픔
무감각한 고독이여,
모두 떠나라.

시린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눈보라가 아리도록 얼굴을 때려도,
치욕스런 현실을 지나고
수치스런 기억을 건너리라.

세상이 버려도
하늘은 버리지 않으리니,
추운 자에게 더 추운 겨울이여
어서, 어서 가라!

가지 말라 해도 갈
가난한 자들의 겨울이나,
손끝이 얼고 온몸이 떨리는 추위를
참고 넘겨야 하리라.

가난한 구석을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우리,
춥고 허탈한 날들을 위해
훈훈한 마음 나누며 살자.

봄이 곧 올지니.

처음 눈이 내렸을 땐 나무도 몰랐다. 얼마나 눈이 내릴지..
처음 눈이 내렸을 땐 나무도 몰랐다. 얼마나 눈이 내릴지.. ⓒ 배을선

결국 나무들도 깨달았다. 눈이 자기들의 존재까지 위협했다는 것을... 눈속에 파묻힌 작은 꽃나무들.
결국 나무들도 깨달았다. 눈이 자기들의 존재까지 위협했다는 것을... 눈속에 파묻힌 작은 꽃나무들. ⓒ 배을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