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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데, 산악 자전거를 탄 몇 무리들의 사람들은 이미 산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능선에서 왼쪽은 창원, 오른쪽은 진해인데 날씨가 우중충해서 도회지의 정경이 선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희뿌연 대기에 쌓인 진해만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배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군사 도시여서인지 군데군데 헬기장이 있고, 등산로 주변에도 벚꽃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등성이를 타는 등산로 왼편의 응달에는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가득 쌓였는데, 길가의 진달래 군락에는 꽃망울에 잔뜩 물이 올라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초봄에는 가까운 비음산의 진달래가 절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천주산이나 무학산, 또 이곳 장복산 자락의 진달래도 그 붉은 핏빛이 서럽도록 아름다울 것입니다. 등산로 곳곳은 언 눈이 녹아서인지 제법 질퍽거립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은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오르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제 이정표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불모산이고, 곧바로 가면 시루봉입니다. 안민고개에서 이곳까지는 5.83㎞이고, 시루봉까지는 아직도 1.88㎞나 더 가야 합니다. 이제 시계도 1시를 넘어서 우리는 바위자락에 앉아 김밥과 유자차로 점심을 때웁니다.
능선 주변에는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곧 반가운 이파리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앞에 갑자기 다리가 보입니다. 웅산가교라고 적혀 있는데, 좌우로 출렁거려서 어린애들이 지나려면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 왼편에는 신항만이 건설되는 녹산 앞바다가 흐린 날씨 탓인지 뿌옇게 보이고, 오른편에는 곧게 자란 편백나무의 푸른 숲이 이어져 있습니다.
멀리 봉긋한 처녀의 젖가슴을 닮은 시루봉이 보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힘을 쏟아 붓습니다. 다시 헬기장이 나옵니다. 시루봉 오르는 길은 넓어서 좋습니다. 드디어 시루봉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시루봉을 둘러친 난간을 돌아 천천히 정경을 감상했습니다. 바위를 상처내어 새긴 낙서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진해시 자료에 따르면, 이곳 시루봉은 지도상에는 웅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웅암이 마치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봉'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웅산은 진해시, 창원시, 김해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서쪽으로 장복산, 남서로는 산성산, 남으로는 천자봉과 연결됩니다.
웅산은 진해의 명산으로 신라시대에는 나라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고사를 지낸 산이며, 조선 초까지 산신제가 올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 말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제를 올렸다고 전해지는데, 또한 쾌청한 날에는 멀리 대마도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루바위에는 조선시대 웅천을 일본에 개항하였을 때 웅천을 내왕하는 통역관을 사랑하게 된 기생 아천자가 이 바위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기약 없이 떠난 임을 그리워했다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높이가 10m, 둘레가 50m나 되는 시루바위는 왜구들이 우리 나라 해안을 노략질할 때 항해의 표석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아픔으로 함께 전하기도 합니다. 시루바위는 시리바위, 웅암, 곰바위, 곰메라고도 불리웁니다.
해병대에 갔다 온 친구의 말에 따르면 해병훈련소에서 이곳까지 구보로 와서 애인 이름을 목청껏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웅산에는 하얀 페인트칠을 한 돌들에 ‘해, 병, 혼’을 새겼는데 곰바위 옆에는 그 중 ‘병’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국내 목재를 가공하여 기름을 먹여 만들었다는 나무 난간을 따라서 급경사의 층계를 내려옵니다. 혹자는 자연 훼손이라고 비난하는 모양이지만 산자락을 타고 이어진 검은 색의 계단은 주위경관과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길가에 있는 시루약수터에서 물을 한모금 들이킵니다. 물맛이 참 시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따라, 다시 안민고개를 향하여 터벅터벅 걷습니다. 길옆에는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빽빽한데, 군항제 때는 안민고개와 더불어 또 다른 벚꽃구경 포인트랍니다.
산에 오른 지 5시간이 가까워지고, 아내는 연신 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길을 따라 심은 철쭉만 이미 봄을 맞았는지, 눈이 시원한 푸른 이파리가 무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