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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생나무 사이에 자리한 메인톱.
생나무 사이에 자리한 메인톱. ⓒ 김기세
물론 결과는 보기좋게 생나무였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로 부끄러울 정도로 별 내용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한 번인가를 더 기사를 썼는데 역시 생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시 기자란 게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제 '오마이뉴스 인생'을 바꿔놓게 된 세번째 기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전 정말 불효자였습니다'라는 기사가 그것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큰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을 때의 심정을 담은 내용이었죠.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릴 때 경기를 수도 없이 하면서 부모님의 속을 태웠을 거라고 반성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생나무 끝에 마침내 메인톱에 이름을 올리다

토요일 밤에 약 3시간 여에 걸쳐 기사를 작성한 뒤 다음날 아침에 무심코 오마이뉴스를 클릭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제 기사가 메인화면의 톱에 떡하니 올라있는 게 아닙니까? 저는 "여보야, 내 기사가 떴어, 메인톱에 떴단 말이야~"라고 외치면서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깨웠습니다.

그 기사는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까지 메인에 떠있었습니다. 저는 일요일과 월요일 오전 내내 아무 일도 못하고 컴퓨터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조회수는 1만명을 넘어 2만5천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죠.

당시 그 기사에는 113명의 댓글이 달렸고, 2002년 사는이야기 베스트조회수5안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엮음집인 <아 유 해피?(한길사)>에도 실려 졸지에 책을 출간한 '저자'의 반열에도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어느덧 10개중 1개만 생나무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어느덧 10개중 1개만 생나무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 김기세
그 이후 자만심으로 의욕적으로 기사를 써서 올렸지만 번번히 생나무였습니다. 그때 느낀 점이 '기사와 글은 억지로 끌어내면 안되며 넘쳐나올 때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인가를 한 편도 안올리고 계속 기사거리 생각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기사를 쓰겠다는 조급함과 함께요.

그렇게 맘을 먹고 난 뒤 기사를 올리니 10개 기사 중 1개만 생나무에 남아있고 9개가 잉걸에 오르는 '최고 절정의 시기(?)'도 오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고 나서 또 한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2004년 10월에 쓴 '달콤한 호박고구마를 아십니까?'라는 기사였습니다. 호박고구마를 캐면서 느꼈던 한 농민의 판로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호박고구마 판로'기사를 보고 200여 명 주문 쇄도

호박고구마를 쪽지로 주문한 분들
호박고구마를 쪽지로 주문한 분들 ⓒ 김기세
기사 하단에 '혹시 고구마를 구입하시려는 분이 연락주시면 소개시켜드리겠다'라는 문구를 남겼는데 약 1주일에 걸쳐 200여명이 연락을 해와 고구마가 동이 나는 현상을 겪었던 것입니다. 정말 '오마이뉴스의 위력'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고구마를 주문하는 분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일본에서 주문하신 분의 주문을 소개합니다.

'안녕 하세요? 일본 동경에 살고 있습니다. 사는이야기나 국제난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만, 올리신 "호박고구마"를 보니 샀으면 하는데요 국제 우편 송료는 제가 부담 하겠으니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10kg 정도면 됩니다. 통장 번호를 알려주시면 입금 시키겠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 올려주기
좋은 기사 원고료 올려주기 ⓒ 김기세
제가 쓴 기사중에서 지금까지 메인톱에 오른 건 두 개 입니다. 앞에 소개한 기사 외에 또 한 개는 "여보, 나 일 그만할까?"라는 기사였습니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 교육문제가 큰 일이었는데 방학중에 큰 아이가 혼자 집을 보며 굶고 있다가 아내가 그걸 발견하고는 가슴 아파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급히 올린 기사였는데 회의를 끝내고 오마이뉴스를 보니 메인톱에 떠있는 것이었습니다. '좋은기사 원고료 올려주기'에도 11분이 특별원고료를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하이에나'라는 댓글 필명이 안겨준 '노란 왕관'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제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이래 저는 '오마이뉴스 마니아'가 되었는데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마이뉴스 기사를 탐독하는 것입니다.

특히 생활정치를 하고 있는 저로서는 정치분야가 대단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2년 대선, 2003년 대통령 탁핵, 2004년 4.15총선,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 등의 기사를 보면서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댓글을 통해 피력하곤 했습니다. '하이에나'가 제 필명이죠.

11월 명예의 전당 등록된 화면
11월 명예의 전당 등록된 화면 ⓒ 김기세
자주 댓글을 올리다보니 지난 11월에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는 영광도 안게 됐습니다. 제가 쓰는 댓글에 노란 왕관이 붙어다니게 된 것이죠. 사실 그 전까지는 댓글을 쓰면서 저속어나 비속어도 가끔 사용했었는데 왕관을 쓰고 나니 '공인'이라는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자아도취일 수도 있지만 제가 오마이뉴스를 대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급적 논리적이고 예의를 잃지 않는 댓글을 쓰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제게 오마이뉴스는 하루라도 접하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담배는 끊을 수 있어도 오마이뉴스는 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늘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오마이뉴스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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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국가가 향후 진정한 자주, 민주,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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