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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설날 아침 6시, 우리 4형제는 어머니께 세배를 올렸습니다. 아침 8시경 사촌과 모여 제사를 모시고 10시경 삼촌제사를 사촌형 집에서 모셨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마산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고향마을 전신주에는 반가운 까치가 가득 앉았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나는 은근히 기대에 부풉니다.
부산에서, 마산에서 누님들이 도착했습니다. 예순여덟의 큰누님, 예순다섯의 큰형님, 올해 회갑을 맞은 둘째형님(축하드립니다.) 그 외 50대의 누나 세분, 형님한분, 40대 중반을 넘긴 막내인 나, 이렇게 우리 8남매는 오랜만에 모두 모였습니다.
형제들은 오늘 벌어질 쿠웨이트와의 축구얘기에 바쁘고, 누님들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웃음꽃이 핍니다. 저녁밥을 먹고 북한과 일본의 경기를 보다가 드디어 우리나라의 경기가 시작되고, 숨죽이는 가운데 이동국의 멋진 발리슛이 터집니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참았던 볼일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담스런 목화꽃 같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야! 눈이다.”
나는 안에다 고함을 내지릅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이영표의 쐐기 골이 터집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는 다시 마당에 나왔습니다. 마당에 심어놓은 동백나무에 하얀 눈꽃이 붉은 동백꽃을 덮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단풍나무에도 하얀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마침내 여든 일곱의 어머니께서도 밖에 나왔습니다.
“막내야! 이게 무슨 조물주의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 눈처럼 올해는 너희들 모든 하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하얀 머리위에 더 하얀 눈이 소록소록 쌓입니다.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다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고향 집을 덮고, 우리는 쉬 잠들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웃음소리는 문지방을 넘어 집안 전체에 행복을 감염시킵니다. 눈이 그친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별빛이 창문을 넘어 들어옵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침이 왔습니다.
온 산에는 어머니 머리카락만큼 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우리 팔남매는 어머니를 가운데 모시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머니의 미소를 따라 우리들의 가슴에도 행복이 넘실거립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