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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의 자운서원 편액. 왼쪽에 김종필 이름이 먹으로 지워져 있다.
ⓒ 황평우
광화문 박정희 친필 현판 교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자운서원 편액이 김종필씨가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자운서원의 사당을 1970년 먼저 중건하면서 편액을 당시 박정희 다음의 권력자이며 이듬해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이 남겼다는 것.

이에 대해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이며 서원건축 전문가인 이상해 교수는 "서원의 사당 건물에는 당호를 거는 것이 원칙이며 ‘○○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지 않는다. 후대에 훼철된 서원을 중건하면서 우선 사당을 중건하는데 이때는 어쩔 수 없어 ‘○○서원’ 편액을 거는 경우는 있으나 다시 강학(교육) 하는 건물을 지었을 때는 사당에 걸려있는 편액은 옮기거나 따로 보관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라고 전했다.

▲ 김종필 이름은 지웠지만 낙관은 그대로 남아있다.
ⓒ 황평우
1990년 초 제향을 올리던 유림들이 김종필이 쓴 편액을 확인하고 철거를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철거되지 않고 있다. 대신 김종필의 이름은 먹으로 지워져 있으나 희미하게 김종필이라는 흔적은 보이며 김종필의 호인 운정(雲庭)이라는 낙관은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장을 동행 방문한 한 유학자는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형식에도 맞지 않고 당시 독재권력의 하수인인 김종필의 자운서원 편액은 철거되거나 따로 보관해야 할 것이며, 그대로 두는 것은 율곡 선생을 모욕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파주시의 문화재담당자인 문화체육과 백희순씨는 "문화재청이나 관련 전문가에 의뢰해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자운서원-강당과 율곡의 묘정비. 400년이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지키고 서있다
ⓒ 황평우
한편 자운서원(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은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김장생 등이 중심된 지방유림들이 파주 호명산(虎鳴山) 아래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후에 자운산 아래로 터를 옮겼고, 효종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 39년(1713)에 그의 후학인 사계 김장생(1548~1631)과 현석 박세채(1632~1695) 두 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후기인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은 율곡을 모신 황해도 백천의 문회서원(文會書院)을 지정하고 파주의 자운서원은 훼철했다. 훼철된 서원터에는 묘정비(廟庭碑)만 남아 있다가 지방 유림들이 향사만 지내왔다.

한국전쟁 때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사당을 복원하였고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한 후 그 해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사당(祠堂)과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높은 대지위에 세워졌다.

1997년 사당 전면에 강당과 동재, 서재, 협문, 외삼문을 신축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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