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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김남주 시 '사랑은'


▲ 생전의 김남주 시인
ⓒ 정윤섭
누가 그를 혁명시인이라고 했을까. 누가 그를 전사라 했을까. 겨울을 이기고 파릇파릇하게 보리이삭이 고개를 쳐들며 솟아오르는 남도의 들녘에서 김남주 시인은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떠난 지도 어언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광주 망월동에서는 13일 '민족시인 김남주 시인 제11주기 추모제'가 고인의 묘지에서 진행되었다. 불모의 땅에서 새 새명을 움트게 하는 남도 들녘, 그가 떠난 11년의 세월 뒤에서 다시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가 남긴 영혼을 노래하였다.

김남주 시인이 살아생전 활동했던 광주와 그가 묻힌 망월동 묘지에 살아생전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 그의 시 정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 김남주 시인 추모행사(자료사진)
ⓒ 김남주추모사업회
그가 떠난 2월의 찬바람은 겨울의 끝에서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알게 하는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칼바람 불던 겨울도 이제 땅속에 잠든 그의 혼을 깨우며 봄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어두운 시대, 불의한 시대에 온몸으로 맞서야 했던 그의 삶은 전사이기를, 혁명가이기를 요구했지만 그에게는 이제 군불 지핀 따뜻한 사랑방만큼의 사랑만이 남아 있다.

이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을까, 어두운 암흑의 시대가 지나간 것 같지만 짐짓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암울한 듯하다. 겨울의 텅빈 들녘만큼이나 남도의 들녘은 긴 어둠의 터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제 혁명의 시대도 전사의 시대도 더 이상 오지 말고 오직 그가 꿈꾼 사랑과 통일만 노래하고 싶어지는 것은 흘러간 시간의 변이일까.

김남주 시인의 시는 그동안 '언어의 화살'이라고 일컬을 만큼 직선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만드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가득한 진정성을 말해주는 듯 서정성을 느끼게 하는 시 또한 많음을 알 수 있다.

살아생전 김남주 시인의 고단한 삶이 혁명을 원하는 '언어의 화살'을 쏘아 올리게 했다면, 이제 그의 삶의 뒤안에서 그가 한 인간으로서 남긴 서정의 진정성을 찾아보게 한다.

▲ 김남주 생가의 사랑채 서가
ⓒ 정윤섭
한 사람의 삶은 그 생명을 다하는 순간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하지만 죽어서도 언제까지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한 삶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간 김남주 시인, 어두운 시대에 짧은 생애를 격렬하게 살다갔기에 그의 삶에 대한 되새김은 세월이 지나가도 켜켜히 쌓여 새로운 생명력으로 움튼다.

광주 망월동에서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년 이어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그를 낳은 땅끝 해남은 그의 행적을 쫓는 나그네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겨울의 찬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삼산면 봉학리 언덕바지에 자리한 그의 생가에는 그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볼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 만큼 자라나/ 내 목에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김남주 시 '창살에 햇살이'


땅끝 해남 삼산면 봉학리를 찾아가는 남녘의 햇살은 마지막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따사롭게 느껴진다. 그 따사롭고 고운 햇살이 살며시 찾아오는 남녘의 봄을 말해주는 듯하다.

삼산면 봉학리 마을 앞으로는 새로 생겨날 해남 - 완도간 4차선 국도 공사가 한창이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마을 안길과 넓은 공터를 가진 회관을 지나고, 그 옆 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었음직한 낡은 마을회관이 남아 있는 길을 지나 가을이면 홍시감 열어주는 집들을 지나간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시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생가 옆의 보리밭
ⓒ 정윤섭
김남주 시인에게 있어 고향마을은 자신의 마지막 마음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검·판사가 되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바람 대신 쫓기듯 수배의 몸으로 찾아든 고향일지라도 그를 마지막으로 품어준 것은 그를 낳게 한 그의 고향집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의 감나무에 매달린 홍시 하나에서 배운 여유로움과 사랑의 마음을 조선의 마음으로 말한 듯하다.

언덕바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고향마을의 집처럼 정감이 든다. 그러나 주인이 늘 붙어살지 않은 집은 조금은 휑하고 이 겨울에는 쓸쓸하게도 느껴진다. 김남주 시인이 기거하였던 사랑채에는 그가 남긴 유품 몇 점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고 시인은 옆에서 어느 화가에 의해 새로이 형상화된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사랑채 옆 돌담 넘어로는 보리밭이 이 겨울을 뚫고 용케도 푸르게 자라고 있다. 그래서 보리는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 이 겨울에도 그리고 어느 때에도 늘상 나그네의 뜬금 없는 발길이 이어지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누구나의 고향마을로 남아 있어야 한다.

지친 순례자들이 지친 일상을 위로 받고 그 감정을 전사의 삶으로 아니 사랑의 서정으로 노래한 김남주 시인에 대해 한 장의 방명록에라도 남게 해야 한다.

▲ 김남주 생가 앞의 답사객들
ⓒ 정윤섭
조금은 쓸쓸하고 그래서 초라함까지 느껴지는 이곳에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생기고 생가도 정비된다고 한다. 김남주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업회도 꾸려져 있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아직 살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큼의 시를 남겨 놓았다.

그의 시는 때론 격하고 그것이 혁명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에게도 가슴 한편에 뜨거운 사랑을 갈망하는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장대 메고/ 달 따러 가고는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여/ 옛 동산에 올라 들에 강에 눈을 주고/ 먼 산을 바라보면 고향은/ 내 그리던 고향이 아니다/ 저 건너 솔밭에는/ 소치는 이이도 없고 새들은/ 날아와 나뭇가지 끝에 집을 짓지 않나니/ 수숫대 싸리울 너머로는/ 신행길 이바지 주고받는 손길도 끊어졌나니/ 십년 만에 고향은 아니다/ 내 그리던 고향은 아니다
- 김남주 시 '고향'


김남주 시인은 죽어서도 이렇게 고향을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남주 시인의 추모 11주기를 맞아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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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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