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국제재활협회 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1972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회에서 재활의 날을 지정했는데, 재활의 의미가 있는 4월 봄 중 통계적으로 비가 거의 오지 않는 4월 20일을 선택했다. 이후 몇 차례 명칭과 주관 기관이 바뀌어 정부가 장애인의 날을 주관하고 있지만 날짜는 그대로 유지됐다.
장애인의 날은 비가 오지 않는 날?
우리 정부는 각종 기념일을 지정하는데 인권적 시각을 갖지 못했을 뿐더러, 그나마 있던 인권 관련 기념일을 폐지하기도 했다.
“…한때의 전매의 날(7월 1일)처럼 사라진 기념일 예를 세계인권선언기념일 등이 뒤따른다. 앞서 8월 법무부는 행사에 드는 행정력과 비용이 만만찮고 선진 외국에 그런 정부 기념일이 없다면서 행자부에 폐지를 요청했다. 꼭 기념해야 한다면 민간으로 이관해 달라는 옵션을 덧붙였다. 법무부와 행자부는 서로 도와 인권의 날을 지웠다. 시쳇말로 통했다.
그럴 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념일 주관을 자청했다. 행사 주관이 짐스러우면 넘겨 달라면서 법령 근거가 모호하다면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하겠다고도 했고, 법개정에 앞서 올해 행사부터 우선 접수했다. 정부조직법 제31조가 인권옹호 소관 부처로 명문화한 법무부와 인권위법 제3조가 인권보호·향상을 위한 독립기관으로 높인 인권위의 각 시선은 이렇듯 어긋났다…”
2003년 12월 10일 <문화일보>에 실렸던 칼럼의 일부분이다. 이렇듯 우리 나라에서 진행했던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30년만에 달력에서 사라졌다. 1950년 12월 4일 UN 총회에서는 12월 10일을 '인권의 날'로 정할 것을 결의하고 회원국에 이를 권고했다.
'인권의 날' 제정, 유엔 권고 미수용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인권의 날' 제정 권고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1973년부터 12월 10일을 세계인권선언기념일로 지정하고, 법무부 주관으로 5년마다 한 번씩 기념식을 해 온 정도였다. 그러던 인권선언기념일도 2003년에 "실효성이 적다"는 이유로 폐지된 것이다.
'인권의 날'은 지난 2003년 12월 10일 국가인권위가 세계인권선언 55주년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인권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면서 그 빛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 공식 기념일에서 제외됨으로써, 일반 달력에서도 사라졌고, 그만큼 우리의 일상과도 멀어졌다.
인권과 관련해 기억해야 할 기념일의 범주는 우리 사회가 친인권 사회로 발전할수록 더욱 더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만의 일이 아닌 세계적인 흐름이다. 지난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케냐의 환경운동가인 왕가리 마타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환경운동가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는 것은 환경보호가 인류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나타내 주는 사례다. 실제 세계 곳곳에서는 물 부족이나 환경 재앙으로 인한 국가간, 종족간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평화가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하는 바는 국가간의 반평화적 상태인 전쟁이 부르는 반인권적 종말 상황을 떠올리면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환경의 날 등 지구 환경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세계 물의 날, 세계 기상의 날, 세계 사막화와 가뭄 방지의 날, 오존층 보호의 날 등을 인권적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회 복지나 질병과 관련한 기념일 역시, 새롭게 인권적 시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즉 노숙자, 노인, 아동과 빈민, 노동자, 다수인 보호시설 수용인 등 사회권적 기본 인권과 관련한 사안들은 우리 사회의 복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펼쳐지는가에 따라 인권적인지 반인권적인지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보건의 날이나 사회 복지의 날, 세계 인간 정주의 날, 세계 에이즈 퇴치의 날, 세계 결핵의 날 등은 당초의 기념일 취지를 넘어 친인권 사회의 실현에 맞게 확대해 기념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