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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센터' 조한혜정 교장
'하자 센터' 조한혜정 교장 ⓒ 인권위 김윤섭
“하이, 조한!”

실천하는 지식인 페미니스트, 대안적 여성운동의 싹을 틔운 선두 페미니스트, 여성학의 선도자…. 조한 교수를 설명하는 부제는 짧지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학교 밖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공간 하자센터(서울청소년직업체험센터)가 닻을 올린 지 5년이 되었다.

“서태지 같은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이 분명히 있는데 학교나 사회체제가 기가 막히니까, 처음엔 굉장히 센 아이들이 왔어요. 하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 그런 아이들이었는데, 요새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니 처음 목표에 맞춰 판단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요. 아이들이 사회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서인지 '찌질이'가 많아요.”

그의 얘기 속에는 싱싱한 단어들이 돌아다닌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는 '찌질이'를 코쿤족, 즉 자기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뜻한다고 설명해 준다. 우리가 옛날에 '날라리'라고 말했던 그런 식이라고 덧붙였다. 서태지 같은 강력한 엔진 성향의 아이들도 점차 개인화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변화를 보면서 사회가 또 변하고 있음을 절감한다고 한다.

그는 오래 전부터 십대들의 정체성 연구에 천착해 온 이다. 그가 쓴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1996. 또하나의문화),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학교>(2000. 또하나의문화) 등의 저서는 십대들과 함께 하면서 내놓은 청소년에 관한 역작이다. 그가 아이들을 읽는 눈은 예리하기 이를 데 없지만 또한 한없이 부드럽고 섬세하다.

“전에는 ‘우리 모여 서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자’ 그러면 아이들이 재수없게 생각했어요. 내 일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그래요. 얼마 전 강좌의 마지막 시간에 자신의 수업 참여도를 점수로 발표하라고 했지요. 전에는 아이들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에 신경을 썼는데, 이번엔 친구가 나오면 아이들이 우렁찬 박수를 보내는 거예요.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보다 우리는 너의 존재를 존중하고 격려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는 그런 아이들을 탈계몽주의 시대의 새로운 세대라고 해석한다.

“언어의 수준에서 판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려는 것이지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죠. 이제는 전혀 다른 유형의 교사가 등장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를 언어의 수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다른 차원에서의 건강함이나 상처, 에너지 이런 것을 볼 수 있고 아이가 제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할 때는 들어가게 하면서 소통할 줄 아는 사람 말이에요.”

청소년은 우리 시대의 징후를 가장 예민하게 미리 읽어 내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능 부정 사건이나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발걸음이 얼마나 잘못 들여졌는지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하자센터도 송년파티를 가졌다. 파티 컨셉트는 ‘파트너 데리고 오기’. 그는 ‘삐삐롱 스타킹’의 리드보컬인 병준씨와 함께 참석했다. 어떤 사안이든 그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너의 존재를 존중하고 격려한다.”
“심할 정도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요. 내 주위의 파트너 혹은 애인을 모아 보니 하나의 동네가 될 정도로 많더군요. 그래서 만들어진 동네가 ‘또하나의문화’예요. 또 ‘하자’의 경우도 그렇지요. 모든 친구들의 입장을 모아서 뭘 만들고 그러는 것이지요. 뭔가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눈에는 띄고, 그래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과 같이 나누고, 아이들이 자기 삶을 타협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살게 하고 싶은 욕망이 제게 있어요. 하자에 모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서로 구원하면서 산다는 생각을 해요. 타이밍, 다양한 선생들과의 만남이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요.”

조한혜정 교수는 형식적 평등이나 인권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 존중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조한혜정 교수는 형식적 평등이나 인권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 존중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 인권위 김윤섭
그는 억압당한 상태로 존재하는 이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성급하게 볼 때는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지만 나름대로 많이 진화한 거지요. 그러나 점점 더 바빠지고 피곤해져서 정성을 모으고 에너지를 모으는 게 힘이 들어요. 또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대해 일부에서 경제 운운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이뤄지긴 했는데 기본을 안 다지고 갔구나 싶어서 놀랄 때가 있지요.”

그는 국가인권위에 여성문제를 다루는 특별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폭행과 같은 민감성을 지닌 인권 침해 문제는 인권위에 맡기고 여성부는 가족적이며 돌봄(caring)의 분야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세요. 마치 아이를 돌보듯이 하거든요. 그것을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단순한 잣대로 가름할 문제는 아니지요. 여성인권의 문제도 여성부에서만 맡을 게 아니라 모든 다른 부서에서도 성비례를 고르게 하여 성 평등 이슈가 뭔지 아는 사람들이 담당해야만 형식적 평등이나 형식적 인권이 아닌 인간 존중의 사회로 갈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는 앞머리에 초록색으로 블리치를 넣었다. 지금은 교수가 당근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다고 해서 그리 큰일로 보지도 않지만 약 25년 전에 여교수가 청바지 차림으로 강단에 섰다면,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 분명할 터였다.

“그때는 일부러 옷도 남다르게 입고 그랬지요. 고정관념을 갖고 내게 압력을 주지 말라는 표시였지요. 배짱이 있었지요.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하지만 그는 오늘의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그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자유를 물들이는 사람

작년 말 하자센터 5주년 기념파티에서 열린 벼룩시장의 모습
작년 말 하자센터 5주년 기념파티에서 열린 벼룩시장의 모습 ⓒ 인권위 김윤섭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거부한’ 어머니의 딸답게 그는 기존의 질서에 편입하거나 승복하기를 거부하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의 딸은 그를 어떤 어머니로 생각할까?

“하하하! 그 애가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지요.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도 하고.”

현대무용을 전공한 딸은 인도에서 요가공부를 하고 와서 현재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대안학교 출신으로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환경운동과 공부를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그의 안에 어떤 힘이 그를 자유롭게 휘몰아가며 살게 하는가, 그 요체는? 그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를 잠시 가다듬었다.

“어릴 때 외가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페스탈로치 같은 분이셨어요. 고아원을 운영하셨는데 제 할머니의 기도는 자기 자식들을 고아들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고아 친구들도 많았고 모두 어울려 행복하게 자랐어요. 즐겁게 살았던 경험이 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작은학교운동’ 회의 약속이 잡혀 있다고 했다. 요즘 학교운동에 관심이 몰려 있는 듯하다. 어울려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다.

“학예회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모여서 축제를 벌이는 사회, 설렘이 있고 사람들이 저마다 역할이 있는 사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 지금은 모두 잔뜩 긴장만 하고 있잖아요.”

그는 모두 한꺼번에 변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학교가 처음엔 10개 그 다음엔 100개,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1000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학교다운 학교’가 이 사회를 새롭게 재편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 아이와 어른, 국민과 시민, 탈근대와 근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살핌의 가치를 아는 성찰적 주민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그는 장담한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난 거의 ‘조한, 바이!’ 할 뻔했다. 물론 입으로는 그러진 못했지만 눈빛으로는 그렇게 인사했다. 그를 만나고 오니 나도 어쩐지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조한, 그가 또 한 사람에게 자유를 물들인 게 분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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