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2001년부터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동권연대는 “장애인의 이동권은 장애인의 전 생애가 달린 문제며, 이동할 수가 없어 교육받을 수 없고, 노동할 수 없고, 사회 접근이 안 되기 때문에 ‘이동권은 생존권’이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이후 차도, 철로, 서울시, 국가인권위 등에 대한 점거 농성과 기나긴 단식, 1인 시위 등을 지속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은 시혜와 동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이동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 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의 산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교통수단이용및이동보장에관한법률(이하 이동보장법률안) 제정을 위한 공대위’가 만들어졌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욕구는 높아졌지만, 그것을 입법화하기까지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이동보장법률안은 대중교통에 관한 것이므로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전문 부서인 건설교통부가 맡아야 할 사안이다. 이는 장애인의 이동권도 비장애인의 이동권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초까지 건설교통부는 이 이동보장법률안을 거부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19일, 건설교통부는 편의증진법안을 제시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동권연대가 제시한 이동보장법률안과 건교부의 법안은 큰 차이가 있었다. 단체들이 제기한 법안이 의무화 조항이라면 건교부 법안은 권고 정도에 불과하다. 이동보장법률안에는 대중교통에 편의시설 설치와 함께 저상버스의 도입 의무화 조항이 제시되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 나라 실정에 저상버스가 맞지 않다고 했지만, 중증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 없이 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중교통에서도 이것을 책임지는 이동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지하철이나 다른 특수한 이동수단도 있어야겠지만, 버스도 저상버스가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저상버스 의무화’는 그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담고 있었다.
2004년 7월 이동보장법률안은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그와 함께 공대위도 백만인 서명운동, 버스를 타자 운동 등 연이은 집회와 의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마침내 2004년 12월 23일 법안심의소위원회에서 심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편의증진법안에 ‘이동권’이 명시되었고, ‘예산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조항이 달렸지만 ‘저상버스 의무화’가 포함됐다.
이 수정안은 법안심의소위원회안으로 2004년 12월 27일 상임위원회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마침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을 위한 편의증진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앞으로 안전한 이동편의 시설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로 대중교통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인 성과다. 또한 이 법은 장애인 등 교통약자(고령자, 임산부 등)의 자유로운 이동이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 법률 하나로 장애인 이동권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이 더욱 완전해지려면 그에 맞는 시행령 등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예산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 조항으로 인해 예산 배정 순위에서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이 배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급진적인 법률이 제정됐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많은 경우가 그랬다. 장애인 관련 법률이 제정되어도 시행규정에서 사문화한 사례들이 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성과 앞에서도 아직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