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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점(占) 집의 모습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점(占) 집의 모습 ⓒ 나영준
예전에 떠돌던 점(占)에 관련 된 농담 한 토막입니다. 위의 이야기 중에는 역술인들에 대한 비하의 뜻도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평소 "어디가 용하네.", "어디가 귀신 같이 맞히네"하며 귀를 쫑긋 세우던 이들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그런 걸 왜"하며 시답잖은 웃음을 날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퍽퍽하고 때론 고단한 인생 앞에서 자신이 타고 태어난 사주나 앞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덕분에 선거철만 되어도 당락을 궁금해 하는 이들로 각종 역학원의 문지방은 반들반들한 윤기가 돈다고 하니 말입니다.

비단 선거철이 아니라도 입시나 승진에 대한 궁금증, 결혼을 위한 궁합, 혹은 신년이면 새해의 토정비결 때문에라도 길흉화복을 점치는 여러 행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엔 '미아리 점 집'으로 대표되던 역학원들의 모습이 시대상을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 후반부터 분위기 좋은 음악과 차가 있는 '사주카페'의 모습을 보이더니 2000년 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운명 사이트들이 시대와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전같이 다리품 팔아 가며 시간 내어 찾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다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출퇴근 시간에 지나치는 지하철역에도 역술인 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짬만 낸다면 지나가는 길에 편하게 '들렀다' 가도 되는 셈입니다.

설 연휴 전인, 지난 7일 지하철 종로 3가 역. 3개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인지라 많은 사람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고, 통로 사이에 한 코너에서 몇몇 역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취재도 할 겸 토정비결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맛도 볼 겸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기자의 사주를 보고 있는 역학인 최대덕씨. 결국 궁금한 이들이 찾는 것 이라며 절대 호객행위 등은 없다고.
기자의 사주를 보고 있는 역학인 최대덕씨. 결국 궁금한 이들이 찾는 것 이라며 절대 호객행위 등은 없다고.
"올해 관운이 있어요.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할 일이 많아요."

기자의 태어난 날짜와 시(時)를 확인한 역학가 최대덕(61세)씨가 던진 말입니다. 좋은 얘기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객관적으로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쩍쩍 입맛을 다시다, 부모님의 소망(?)인 결혼 운을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그만 노총각의 가슴을 '후벼 파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본인의 사주가 결혼이 조금 늦어야 되요. 병술(丙戌)년인 내년에도 가능하지만 조금 더 있어야 배필이 찾아와요. 이런 이야기하면 미안하지만 돈이 들어오긴 하는데, 모이질 않아요. 이상하게 빠져나갔어요, 여태까지는. 그러니 결혼도 늦어지고."

딱 맞는 이야기라 무어라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멍한 얼굴의 기자에게 '제대로' 돈을 벌려면 나이 50이 넘어야 한다는 굳히기 멘트가 날아옵니다. 거의 확인사살입니다. 더 묻다가는 애꿎은 술, 담배만 늘 것 같아 서둘러 마무리 짓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으냐고 물으니 정초라 아직은 그럭저럭 괜찮다고 합니다.

'종합사주'는 만 원, 기타 사항은 오 천원. 다른 곳도 요금은 공통
'종합사주'는 만 원, 기타 사항은 오 천원. 다른 곳도 요금은 공통 ⓒ 나영준
경력은 15년째, 이곳 종로3가 역에 나온 지는 얼마 안 되고 그 전에는 동대문의 대형 쇼핑 상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는 많을 땐 하루 25명 정도의 사주를 봐 주기도 했답니다. 아무래도 그 곳이 벌이가 더 괜찮은 듯 올 봄에 다시 옮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어지간한 지하철역·백화점·사우나에도 있어“

이와 같은 형태로 외부로 손님을 찾아 나선 경우가 많은지 묻자 고속터미널, 을지로 입구 역 등 각종 역은 물론 백화점과 사우나 등지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며 예전과는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본인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손님을 찾아 이곳으로 나오게 되었다며, '잠깐 봐주고' 가볍게 만원의 가격으로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는 "굳이 예전 같이 3만원씩 주어가며 볼 필요가 있어요?"라고 되물으며 시대가 바뀌면 따라갈 필요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며 아무래도 출퇴근길 직장인들이 많이 이용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안 보는 사람은 '때려죽여도' 보지 않는다며 허허 웃음을 터뜨립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려다, 문득 좀 전의 사주가 생각나 안 좋은 건 안 좋다고 이야기 해 주는 편이시냐고 묻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예전엔 3년 사귄 사람도 떼어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윽" 하는 단말마와 함께 '혹시나' 했던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14일. 지하철 1, 5호선이 만나는 신길역을 찾았습니다. 종로 3가역만큼은 아니라도 많은 시민들이 환승을 위해 긴 연결통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여성 역학인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올해 결혼 운은 없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렇게 좋은 사주는 오랜만에 본다"며 앞으로 많은 명예가 따른다고 했지만 결혼 운만큼은 내년 혹은 후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대답입니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역학인들의 '질' 이라며 강한 자긍심을 나타내던 임도희씨. 화장을 '전혀' 못한 관계로 정면 사진은 점잖게 고사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역학인들의 '질' 이라며 강한 자긍심을 나타내던 임도희씨. 화장을 '전혀' 못한 관계로 정면 사진은 점잖게 고사 ⓒ 나영준
'내 팔자야' 싶다가 이렇게 좋은 사주로 낳아 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리라는 이야기에 마음을 고쳐먹고 취재에 열중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점을 봐주는 이가 아닌 역학(易學)을 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임도희(51세)씨는 이 공부를 시작한지 10년째라고 합니다.

사주나 궁합을 보는 이들의 변화에 대한 질문에, 요즘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찾아온다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가깝게 다가 선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운명은 분명히 있다며 그것에 대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며 "자신이 하는 일에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까, 좋지 않은 일을 알릴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 일을 하고, 자신의 남은 인생도 이 공부에 바치려고 한답니다. 듣고 있으려니 숙연한 기분까지 듭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역술인들 최고 불경기는 여름”

화제를 바꿔 연초에 많은 분들이 오셨냐고 물으니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으니 경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며 "편하면 왜 이런 곳을 찾겠냐"며"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다"고 나름의 진단을 내립니다.

기자의 사주풀이를 하고 있는 역학인의 손
기자의 사주풀이를 하고 있는 역학인의 손 ⓒ 나영준
그녀 역시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며 오히려 이렇게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왔다고 표현합니다. 이전의 역학원들이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밝은 곳으로 나왔다는 설명과 함께. 물론 불경기이니 사무실을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나온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편리함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활로 가까이 다가 온 것은 좋지만 너도나도 하며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서는 것에는 아쉬움이 드네요."

역학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공부가 덜 된, 역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사람들까지 함께 뒤섞여 나오는 현실이, 그녀에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라고 합니다. 역학도로서의 가장 큰 덕목은 '공부의 질을 높이는 것' 이라고 몇 번을 강조합니다. 또한 다소의 산만한 분위기 등이 좀 더 높은 철학의 세계를 전해 주는데 방해가 되는 점도 있다고 합니다.

사주의 내용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뚜렷한 주관이 서 있는 역학인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외적인 요소를 묻고 싶은 근성이 자꾸 치밀어 올랐습니다. "정초가 지나면 손님이 많이 줄어들겠지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아무래도 그렇겠죠"라며 살짝 웃습니다. 그러며 역학인들에게 가장 불황인 계절은 여름이라고 귀띔해 줍니다.

기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뒤에서 서성거리던 중년의 남자가 바로 자리에 앉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곧바로 "NO"를 외칩니다. 혹시 '점이나 보러 다니는' 사람으로 주위에 찍힐까 인지 시민들의 인터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때, 몇 발자국 뒤에서 머뭇거리던 한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기자에게 다가와 묻습니다.

"저기요, 이 분 잘 맞춰요?"
"네? 아, 예. 성의 있게 봐주시던 걸요."

시대와 유행에 맞춰 밖으로 나온 역학인들
시대와 유행에 맞춰 밖으로 나온 역학인들 ⓒ 나영준
이름은 끝까지 밝히지 않은 윤아무개(44세.주부)씨는 이전에는 한 번도 점집 같은 곳에 가 보지 않았다며 재차 '용한 사람인가'를 묻습니다. 계속 질문을 받으려니 주객이 전도 된 느낌입니다. 그러다 "예전에는 이런데 가는 것을 엄두도 못 냈는데, 전철역에도 나오고 세상 많이 좋아졌다"며 배시시 웃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다 서울의 한 대학 입구에서 '사주카페'를 운영 중이신 친척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 분을 찾아갔을 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난 친구나 친척들한테는 안 봐줘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더라고. 그것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내 얘기에 얽매이는 것 같아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러려면 보지 말라고 얘기해 줘요. 결국 인생은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거지…."

그리고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한 아가씨의 기억이 겹쳤습니다. 사주를 보곤 종종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대학생이라는 말을 남기곤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뒤를 따르며 조급함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주가 맞던가요? 혹시 졸업반인가요, 취업 때문에 사주 보신 건가요?"

걸음을 멈춘 그녀가 천천히 돌아보며 피식, 재미있다는 웃음을 짓습니다.

"기자님이 더 족집게이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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