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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저는 학교를 옮겨야 합니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이번에 정기 전보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5년 전에는 학창 시절과 교직 생활을 통틀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금의 학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근무해온 이 학교에 오기 전에는 출근 때마다 적게는 한 시간에서 비오는 날엔 두 시간 넘게 길거리에서 아까운 아침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학교에 오고 나니, 집이 가까운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저는 새로 근무할 학교 발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을 정리해서 상자에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학교로 발령 나길 바랄 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학교에서 쓰던 물건들을 정리해서 교실 한 쪽에 쌓아 놓았습니다. 아직 정리할 책이 더 남아 있습니다. 발령이 나면 이 짐을 모두 새 학교로 옮겨서 풀어 놓아야 합니다.
ⓒ 이부영
어느 학교에 발령이 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이야 같지만, 처음 만나 낯선 교사들과 낯선 학교 건물, 낯선 아이들과 적응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학교에 가게 될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꽤 큽니다. 마음이 여간 뒤숭숭한 게 아닙니다.

새 학교에 발령이 나더라도 맡을 학년과 담임이 발표되기까지는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합니다. 3월 새 학년 새 학기는 다가오는데, 아직 근무할 학교도 모르고 담임할 학년을 모르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새 학년에 필요한 어떤 준비도 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학교로 옮겨가야 할 짐만 정리해서 잔뜩 쌓아놓았는데, 발령이 나면 그 때부터 며칠 새로 짐 옮기는 일, 짐 푸는 일, 교실 정리하는 일, 수업 계획, 학급 운영 계획을 후다닥 해치워야 합니다. 집이 먼 교사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이사까지 해야 하니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어수선하기만 한 새 학년 새 학기

우리나라 학교는 모두 3월 2일 새 학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학교마다 학교 발령과 담임 학년 학급 배정은 짧은 학년말 방학 기간 동안인 2월 말에 이루어집니다. 이러다 보니 새 학년 준비 기간이 너무나 짧아 수업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게 쌓아놓은 물건들과 먼지 속에서, 마음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로 아이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말이 새 학년 새 학기이지, 어수선하기만 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는 셈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당겨졌지만, 예전에는 3월 2일 시업식 날 학급 담임을 발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새로 바뀐 학교에서 맞이하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 몇 학년 몇 반을 담임하는지도 모르고 출근해서는, 발표하기가 무섭게 아이들 이름 한번 둘러볼 겨를 없이 맡은 반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희망한 학년을 맡는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던 학년 담임을 배정받게 되면 불만이 쌓이고, 불만의 화살은 애꿎은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담임 배정에 불만을 품은 어떤 교사는 첫 날 아예 학급에 들어가지 않는 일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작년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학교마다 예정되어 있던 교과전담교사를 갑자기 한 사람씩 줄이는 바람에, 뒤늦게 교과전담담당 과목이 정해져서 3월 중순에야 정상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초등교사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지만, 6학년 담임을 희망했는데 1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고학년 담임을 하다가 1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아이들과 적응하는 데 두 달은 족히 걸립니다.

학교마다 학급 담임 배정원칙이라는 것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학교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원칙'에 따라 미리 새 학년의 희망을 써내 보지만,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교사들이 선호하는 학년에 몰릴 수밖에 없고, 인사 원칙에 의한 교사의 희망은 '원만한 학교운영을 위해서'의 다음 차례입니다. 그래서 내가 딱 원하는 학년의 담임을 맡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교사가 올해 어느 학년을 맡아 연구하고 싶고, 미리 수업 계획을 짜놓아도 다른 학년이 배정되면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발령을 받아 학급 담임이 확실하게 정해지기까지는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2월 초에는 배정 발표해야

발령이 늦고, 학년 담임 배정이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교육 과정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미리 준비한 교사와 준비가 부족한 교사는 앞으로 아이들과 지내야할 1년이 뭐가 달라도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발령을 빨리 내고, 학급 담임도 일찍 발표해 달라고 요구하곤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겨울방학 전에 발표를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긴 겨울방학 동안에 지난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내년에 맡을 학년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방학 전이 무리라면, 적어도 2월 초에는 발표가 되어야 새 학년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늦은 전보 발령과 학급 담임 배정을 하게 되면, 새로 맡은 학년의 교육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자료를 찾는 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니, 교사나 아이들이나 제대로 정신 차리고 정상적인 수업을 해나갈 수 있으려면 3월 중순께나 가야 합니다. 교사도 버겁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예정했던 12일을 닷새나 넘겨 17일에 전보 발령이 난다고 합니다. 새 학기를 열흘 남짓 남겨놓은 17일도 벌써 늦었습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까닭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부영 기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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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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