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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재희 원장
최장재희 원장 ⓒ 송민성
사주 명.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네 간지(干支). 예) 되는 일도 없는데 사주나 보러 갈까?
페미니즘 명. 여성의 권리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 예) 요새 페미니즘 모르면 ‘쌩뚱’맞죠!

사주에도 페미니즘 바람이 분다? 사주와 페미니즘, 언뜻 들어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그러나 여기 ‘페미니즘적 사주명리학’을 꿈꾸며 ‘페미 사주가’로 활동하는 이가 있으니 장철학의 최장재희(47세)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장 원장은 페미니즘과 사주가 만날 수 있으며, 둘은 좀 더 가까워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지난 14일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장 철학관'(saju-mbc.co.kr)에서 그를 만났다. 페미니즘 사주역술가 답게 부모양성을 쓰는 그의 철학관은 평범한 오피스텔이었다.

"유명 연예인들 옛날 같으면 기생 사주 타고났다 할 것"

“공부하다 보니 참 화가 나는 거예요. 여자는 그저 남편 잘 만나서 자식 낳고 사는 걸 좋은 사주라고 하니 말이야. 그러다보니 여자들이 ‘기가 세서 남편 잡아먹는다’는 둥, ‘드세서 일부종사는 못할 팔자’라는 둥, 험한 소리들을 듣고 잔뜩 위축돼선 괴로워들 해요. 그런데 내 생각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막말로 유명한 연예인들 옛날 같으면 기생 사주 타고났다 그러지요.”

영화배우나 가수가 될 끼를 지닌 사람을 두고 정조 관념이 없다느니 팔자가 사납다느니 해선 안 된다는 것이 최장 원장의 생각이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옛날에는 여자 진로가 별 거 없었잖아요. 좋은 남자 만나서 정승 부인 되거나 선남선녀끼리 만나 자식 주렁주렁 낳고 필부(匹婦)로 살거나 그게 아니면 나혜석, 허난설헌처럼 선각자로 태어났거나 하겠죠. 그런데 그 선각자들이 또 하나같이 비운의 여인들이잖아요.”

유관순 열사를 일례로 들어보자. 유관순 열사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후세 사람들이 자랑하고 존경하는 위인이지만 개인만 놓고 보면 평생 감옥을 들락거리며 고문당하다 결국에는 옥사한 불행한 인물이다.

“게다가 결혼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었으니 여자로서는 얼마나 더러운 팔자냐고? 그런데 역사가 기억하는 열사가 되었잖아요.”

연극인 김우진과 동반자살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 윤심덕의 삶도 비슷하게 읽을 수 있다.

최장재희 원장
최장재희 원장 ⓒ 송민성
“용감무쌍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태평성대에 태어나서 할 게 연애 사건밖에 더 있어요? 대담하니까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연애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나혜석…, 시대와 제도가 허락하지 않는 재능을 가진 탓에 힘겨운 삶을 견뎌야 했던 여성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능력과 재주로 다양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들이 철학관에 간다면 똑같은 소리를 들을 것이다, 기가 세서 편히 살지 못할 팔자라고.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 때는 시대가 고루해서 그 여자들이 행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다르지 않겠냐 하는 거죠. 그 여자들이 요즘에 태어났다고 해봐요, 강금실 장관 되고 이효리 되고 그랬겠죠(웃음).”

“다른 철학관에서 험한 말 듣고 오는 여자 손님 많아”

즉 ‘페미 사주’는 특별난 사주 풀이가 아니라 현재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 들려주는 사주 풀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찾는 이들 중에는 ‘다른 철학관에서 험한 말 듣고 오는 여자 손님’이 유독 많다.

“어떤 사주는 고집 세고 자식 복 없고 그 뒤로도 나쁜 말들이 줄줄 나오기도 해요. 그 해석이 틀린 게 아니거든요. 그래가지고 잔뜩 겁을 먹고 오는 거예요, 그럼 나는 그래요. 그럼 어때? 이혼하고 결혼 몇 번 하는 게 꼭 불행한 거냐? 시대가 달라졌으니 행복할 수 있다, 그러죠.”

최장 원장은 사주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학문이라고 본다. 자신 또한 ‘살기 위해’ 역술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확신은 더욱 강하다.
“사는 게 뭔가 궁금했죠. 살다보면 왜, 삶이라는 놈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한계점에 다다를 때 있잖아요. 도대체 뭐야,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그러다가 사주를 공부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책과 영화를 파고들었다. 다양한 생각과 간접 경험을 통해 삶의 실체를 발견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찮게’ 사주로 학생을 선도하는 교사 이야기를 읽게 됐다.

“선생님들이 공부해라 백날 떠들어도 학생들은 그냥 흘려버리고 말잖아요. 이 선생님이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사주를 활용하기로 한 모양이에요. ‘너는 평생 공부할 운명이라 대학 가면 되겠다’ ‘넌 재주가 많아서 앞날이 유망하구나’ 그러니까 애들이 귀가 쫑긋해서는 행동거지가 바뀌는 게 눈에 보이더라 이거죠. 그 얘길 들으면서 아 난 왜 이런 선생님을 못 만났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그랬어요.”

그 날로 사주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머리도 나쁘고 학습 능력도 떨어지지만 하겠다는 의욕만은 높아서’,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공부를 해냈다. 그렇게 배운 사주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긴 모양만큼이나 사람의 팔자도 제각각이었다. 운이 넘칠 수도, 모자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쁜 팔자란 없다는 것을 그 즈음 깨쳤다.

“사주, 1년에 딱 한 번만 봐라”

취재 뒷 이야기

기자에게 지난해는 그야말로 ‘흉흉했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이 우울하게 지루한 나날들 중에 내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지금이 빨리 흘러가버리는 것뿐이었다.

취재 요청을 받았을 때 내심 반가웠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점이라도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최장재희 원장은 한마디로 ‘끼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노래 교실 강사로 오래 활동했던 덕분인지 그의 말은 빠르면서도 톡톡 튀었다. 그는 자신을 ‘약장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근엄하게 할 사람은 그렇게 하고, 나 같은 사람은 약장수처럼 하고 그런 거죠 뭐(웃음).”
그가 알아서 제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기 때문에 기자가 따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대뜸 “기자님, 사주 한 번 대보세요”한다.

그리고는 특유의 말투와 웃음으로 내 사주를 풀어준다. 나의 성격, 적성, 취직과 남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초면인 사람에게서 듣고 있노라니 그저 웃음만 났다. 특히 올해부터 시작해서 서른 넘어서까지 애정 운이 거세게 몰고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확 풀린다거나 대박난다는 말은 한 줄도 없었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말한 것 있는 그대로에요. 다르게 해석하려고 하지도 말고 딱 내가 말한 그대로만 들으세요.”

재바르게 말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는 ‘행복’이라는 만병통치약을 선전하는 ‘약장수’였다. / 송민성
“팔자가 나쁘면 죽을 거예요?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살아야죠. 운이 넘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어차피 넘치는 운은 자기 몫이 아니니까 나눠줘야 돼요. 그걸 운이 모자라는 사람이 받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얼마나 좋아요.”

그러면 어떻게 나눠주고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 시기와 방법을 슬쩍 일러주는 게 사주이다. 최장 원장의 역술 원칙 또한 최대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능하면 많은 질문에 답을 주고, 상대가 원하는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사실 사주 풀이는 10분이면 할 얘기 끝나요. 명확하게 보이니까.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렇질 않잖아요. 물은 거 또 묻기도 하고 이야기하다 울기도 하고…. 왜 요새 사람들 힘들면 심리 상담 받고 그러지요? 여기 오는 분들도 비슷해요. 나이가 들수록 가족한테도 못하는 얘기가 많아지는데 그런 걸 저한테 와서 털어놓는 분들이 많죠.”

기억에 남는 손님도 여럿이다. 그 중에서도 수첩을 들고 와서 두 아들의 시험 합격 여부부터 아파트의 이름과 층수, 현관과 방문의 방향, 색깔까지 묻던 노부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단다.

“심지어는 어느 방을 어느 아들에게 주어야 하는 지도 물으시더라고요(웃음). 제 대답을 빽빽이 수첩에 적으시는데 말할 수 없이 심각해요. 다 답을 해드리고 제가 그랬죠, 어머니 그 수첩 이제 버리시라고. 그 연세 되도록 가족 위하느라 자기 삶이 없으시다고, 어머니가 도사시니 다른 도사 찾을 필요 없다고요.”

그러자 가만 생각하던 노부인이 수첩을 가방 속에 집어넣어버리더란다. “이제 일일이 사주 보러 다니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나가는 부인의 표정이 밝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제일 좋기로는 사주 안보고 사는 게 제일 좋겠죠. 정 보시고 싶으시면 1년에 한번, 신수 정도만 보시면 되요.”

최장 원장은 특히 젊은 세대들이 사주에 지나치게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되 정성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예정된 운도 달아나기 때문이다. 결국 삶 앞에 너무 자만해서도 지레 좌절해서도 안 된다는 뜻일 게다.

2005년 두 번째 새해가 밝았다. 최장 원장은 모두에게 자만하지도, 좌절하지도 않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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